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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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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값, 하락세가 대세인가

등록 2007-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완전히 꺾였는지 논란 있으나 가계 부채 부담 고려하면 ‘하락 초기 국면’ 분석에 힘 실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2년3개월 만에 서울,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주택 가격이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은 5월2일 “집값이 불안한 안정세가 아니라 완전히 하향 국면에 진입했다”고 주장했다.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도 빠뜨리지 않았다. 건교부는 그동안 상승세를 지속하던 서울 강북 14개 구의 집값이 처음으로 0.07% 하락했고, 서울은 0.06%, 수도권은 0.05%, 전국적으로는 0.03% 집값이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말이 아니라(!) 각종 부동산 가격 지표를 제시하면서 ‘부동산 불패신화의 종언’을 선언한 셈이다.

강남 고가주택만 떨어지고 있다?

실제로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개 구의 아파트 가격은 올 1월22일부터 14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재건축 아파트는 4월 마지막 주에 0.8% 하락해 최근 14주 동안 평균 하락폭이 5%대에 달했다. 양천구와 경기 용인시의 아파트값도 9주 연속 하락했고, 분당은 7주 연속 하락세를 지속했다. 건교부 서종대 주거복지본부장은 “과거 30년 동안 추세를 볼 때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면 4∼5년 정도 올랐고, 안정이 시작될 때는 6년 정도 지속됐다”며 “주택 가격이 전반적으로 꺾인 ‘의미 있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률(월평균 기준)은 2006년 4분기 4.2%에서 올 1분기에 0.7%로 크게 떨어졌는데, 국민은행경제연구소 조사(조사 대상: 전국 142개 시·군·구)에서 4월 아파트 가격은 전국·서울 지역 모두 0.0% 보합세를 보였다.

요즘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관심은 아파트 매매가의 하락폭보다는 주택 가격의 ‘추세선’이 하락세로 돌아섰는지 여부에 쏠려 있다. 물론 대다수 전문가들은 “가격을 상승으로 반전할 별다른 모멘텀이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 전까지 5∼6개월은 더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 매매가격이 하락 추세에 진입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지난 2003년 10·29 대책이나 2005년 8·31 대책이 나왔을 때도 집값은 한동안 하락세를 유지하다가 다시 크게 오르는 양상을 보였다. 만일 부동산 가격이 하락 추세에 접어들었다면, 앞으로 약간의 가격 상승 국면이 잠깐 나타날 수는 있어도 “전반적으로 볼 때 5∼6년간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건교부의 주장은 높은 확률로 지지될 수 있다.

올 2∼3월 집값만 보면 전국은 0.55%, 수도권은 0.91%, 서울은 0.77% 오른 반면, 강남 3구는 올해 1∼4월까지 0.92% 하락했다. 그래서 “전반적인 상승 추세가 꺾인 것이 아니라, 종합부동산세의 영향으로 강남 지역의 고가주택만 떨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평형별로 대형은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가 지난 3월 0.1%, 4월 0.2% 떨어졌고, 중형은 4월에 처음으로 0.1% 떨어졌다. 반면 전국적으로 소형 아파트는 4월에도 전달에 비해 0.2% 올랐다. 2003년 9월 각 평형별 아파트 기준 가격지수를 100이라고 할 때 지난 4월 대형은 140.4, 중형은 123.3, 소형은 116.5였다. 중·대형에 비해 소형은 덜 오른 편이라서 아직도 가격 상승 기대가 남아 있는 편이고, 중대형 아파트 가격은 종부세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경제연구소 쪽은 “일반적으로 4월은 봄 이사철에 따라 주택 가격 오름세가 큰 시기였으나 올해는 1986∼2007년까지 22년간의 4월 평균 주택 가격 변동률(0.5%)보다 낮은 0.1% 상승에 그쳤다”고 말했다.

세금규제·대출 규제의 영향력

물론 가격 상승 추세가 완전히 꺾였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지금의 가격 하락에 어떤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일시적인 하락인지, 추세적인 하락에 들어선 것인지 추정해볼 수 있다. 일단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담보대출 규제와 종부세로 대표되는 세금 규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규제 효과’라는 것이다. 또 올 초 1·11 대책에 따라 9월부터 원가공개,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돼 값싼 아파트가 쏟아지고 보유세가 강화되면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닥터아파트 이영호 리서치팀장은 “4월 마지막 주부터 서울의 노원구, 도봉구 등 비강남 쪽도 오름폭이 줄고 있다. 강남 쪽에서 매수는 끊긴 상태에서 급매물이 나오고 있고, 비강남 쪽도 이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며 “종부세 영향도 있고, 강남 재건축은 분양가 상한· 원가 연동제로 조합원 추가 부담이 늘어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다 보니 너도나도 물건을 던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들어 도입한 각종 부동산 규제가 누적됐기 때문에 규제 강도는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보유세 등 세금은 주택 매매가의 변동폭을 크거나 작게 할 수는 있지만 주택 가격의 장기 추세선을 만드는 데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보유세는 또, 고가주택을 소유한 가구에만 주택 처분 압박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에 대해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세금은 주택 가격이 오를 때는 별 부담이 없다. 주택 가격이 상승 추세일 때는 오히려 세금 증가분을 가격에 전가해 가격을 더 오르게 만들 수도 있다”며 “그러나 가격이 떨어지는 추세라면 집을 구입하려는 사람도 거의 없고 세금 부담의 영향은 더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가격이 하락할 때는 보유세 부담이 하락폭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114 김혜현 거래지원센터 부장은 “종부세 부과가 임박하면서 고가 아파트 위주로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전에는 가격이 떨어지면 잡으려는 매수세가 일어났지만 지금은 급매물이 나와도 매수세가 붙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덕 소장은 “어느 정도 떨어지면 주택 매수세가 다시 돌아올 것인지가 하락세의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용섭 장관은 “더 떨어질 것이란 예상 때문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 않지만 조만간 매수 희망자들이 이만하면 충분히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장관은 또 “참여정부 들어 강남 집값이 68% 올랐는데, 올 들어 고작 1%밖에 안 떨어졌다”며 “집값이 지금보다 훨씬 더 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시점을 어떻게 추정할 수 있을까? 국민은행에 따르면, 2003년 9월 각 지역별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를 100이라고 할 때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 지수는 지난 4월 138.3, 강남(11개 구) 아파트는 145.4(서초구 157.6, 양천구 154.4)였다. 또 강북구 아파트는 128.7(용산구 159.8, 성동구 152.5)이었고, 경기도 과천은 183.5, 분당 172.9였다. 상승 추세로 반전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한, 충분히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할 수 있다.

월급쟁이 가계의 대출 상황 부담 커져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세금 규제보다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최근 주택 가격 하락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김 연구위원은 “2003년에 일어난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올해 3∼5년 만기가 도래한 건이 많은데, 규제 완화를 기대하고 주택을 안 팔고 버텨온 사람들이 급매물을 내놓고 있다”며 “일단 급매물 중심의 하락세가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로 2건 이상 주택담보대출을 갖고 있는 가구는 만기가 도래하는 주택 대출을 1년 안에 상환하거나 해당 주택을 처분해야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계속 증가해 2010년에는 올해보다 3조원 늘어난 17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급증한 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상당수가 2009년에 거치 기간(이자만 내는 기간)이 끝나 원금을 함께 갚아야 한다.

2006년 말 현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14조원인데, 2009년에는 원리금 상환 압박이 가해지는 담보대출 금액이 무려 48조6천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표 참조). 거치 기간에 이자만 내다가 만기가 되어 원금 상환이 도래하면 대출 가계의 부담은 대폭 증가하게 된다. 예컨대 20년 만기, 3년 거치 원리금 분할 상환 조건으로 1억원(연 6.0%)을 대출받을 경우 거치 기간에는 월 50만원만 이자로 내면 되지만 거치 기간이 끝나면 원리금이 월 78만3천원으로 늘어난다. 원리금 부담이 커지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지급이자(원금 포함) 비율도 2005∼2006년 7∼8% 수준에서 2010년에는 9% 중반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계 소득이 갑자기 늘어나지 않는 한 보유 주택을 처분해야 할 압박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강남을 비롯한 ‘버블 세븐’ 지역의 주택 구입자라면 주택담보대출보다는 종부세·양도세 부담 때문에 보유 주택을 매물로 내놓을 공산이 크다. 반면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무리하게 은행에서 돈을 끌어대 서울 강북의 아파트를 구입한 월급쟁이 가구는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갈수록 커지게 된다. 최근 3개월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연 5.0%까지 올라 4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계속 뛰고 있다. 국민은행의 5월 주택담보대출금리는 최저 5.66%에서 최고 7.26%에 이른다. 구입한 주택의 가격이 상당 기간 오르지 않고 가계 소득 중 상당 부분이 매월 원리금 상환으로 빠져나갈 경우, 가계 살림을 계속 꾸려나가려면 집을 내다 팔아야 한다. 김선덕 소장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는 오히려 올라가고,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지기 전까지는 금리가 내려오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대출을 끼고 투자 목적으로 집을 구입한 사람은 더 죽을 맛이 된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되면 다시 오를 수도”

통계청의 가계 자산 조사에 따르면, 2006년 6월 현재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총자산은 2억8천만원이고 이 중 부동산 자산의 비중이 76.8%에 달했다. 이처럼 가계 자산이 대부분 부동산에 쏠려 있고, 2006년 말 기준으로 가계 대출의 58%가 주택담보대출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가계 부채의 위험도 진단’ 보고서에서 “가계 부채의 절대 규모가 늘지 않더라도 가계 대출 금리가 1.3%포인트 상승하거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구입한 주택 가격이 5.5% 이상 하락하면 가계의 신용 위험도가 2002년 카드 대란 당시로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택담보대출 쪽에서 위기가 터진다면 일시에 주택 매물이 쏟아지고 주택매매 가격은 큰 폭의 하락세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전문가들은 “주택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은 낮지만 가격 상승 기대는 시장에 여전히 남아 있다”며 “규제 완화 기대가 현실화되면 자금 조달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아파트 가격의 ‘장기 추세’를 결정하는 근본 요인은 세금·대출 규제보다는 아파트 수요·공급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 “아파트 가격이 전반적인 하락 추세의 초기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2003년 이후 어느 때보다 힘을 얻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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