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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EU 의회, 협상 지침 내려보낸다

등록 2007-05-04 00:00 수정 2020-05-03 04:24

언론 수준의 보고를 받는 한국 국회와는 수준이 다른 통상 시스템, 민간 의견 반영 통로도 법적으로 보장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미국·유럽연합(EU)과 한국의 통상정책 시스템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행정부와 의회의 관계맺음’ 방식이다. 협상 타결 뒤 최종적으로 추인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국회와 달리 미국과 EU의 의회는 협상 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법·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미국, 수시로 보고 받고 협상에 자문 자격 참가

미국은 연방 헌법 규정에 따라 관세 부과, 무역 규제 같은 통상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을 의회에 맡겨놓고 있다. 1934년 상호무역법 제정 뒤 대통령에게 의회의 권한 일부를 넘겨주고 있지만, 다양한 제약 장치 안에 묶어둔다. 의회는 지속적으로 통상 관련 법을 만들어 대통령 권한의 수위를 때때로 조절한다. 또 대통령 직속 무역대표부(USTR)로부터 수시로 보고를 받을 뿐 아니라 협상에 자문위원으로 참가하기도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전에 미 의회가 미국 쪽 협상단에 협상의 큰 틀인 분야별 ‘지침’을 내려보낸 사실은 의회의 권한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다.

1962년 무역확대법 제정 뒤 대통령 직속 USTR의 힘이 세지고는 있어도 의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행정부 독주와는 거리가 멀다. USTR는 미 의회위원회 위원으로 구성된 의회감독위원회(COG)에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하며, 상·하원의 각 5인은 통상정책에 관한 ‘공식적’ 의회 자문위원으로 위촉된다. 추가적으로 협상이나 구체적인 이슈에 관한 자문위원으로 미 의회 의원들이 위촉되기도 한다. 한국 국회의 경우 한미FTA특위를 통해 언론 보도 수준의 보고를 받는 데 그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한미FTA특위는 지난해 협상 개시 선언(2월) 한참 뒤인 7월에 출범한데다 의결권을 갖고 있지 못해 협상 과정에서 어떠한 구실도 할 수 없었다.

통상 협정의 이해당사자인 민간 부문의 의견을 반영하는 통로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는 점도 미국 시스템의 큰 특징으로 꼽힌다. 미국 통상 당국은 1994년 무역법 제정 뒤 제도적으로 정착된 민간 자문기구를 통해 정책의 수립과 통상 교섭에 관한 조언을 받고 있다. 30개 안팎 자문위의 700여 자문위원으로 짜인 민간 자문기구는 통상정책의 수립과 집행, 협상 시작 전 협상의 목표·전략에 대한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는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직후 USTR로부터 협정문을 넘겨받아 분야별 평가·검증 작업을 벌이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자문기구다.

EU, 노동조합·환경·농업 단체와 정기적인 협의

EU의 통상정책 시스템은 좀 복잡하다. 다양한 회원국들로 구성된 통합체이기 때문이다. 통상절차 법안 마련을 주도한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의 정책자료집을 보면, EU의 통상정책 결정권은 회원국 대표들로 구성되는 각료이사회(CEU)에 있다. 각료이사회는 집행위원회(EC)의 통상정책과 협상에 관한 건의를 심의 결정하고, 협상 지침을 내려보내 집행위 내 통상장관의 협상 과정을 통제한다. 각료이사회는 정기적으로 협상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협상 타결 때 승인할 권한을 지니고 있다. 집행위원회는 유럽의회에 협상 진행 상황을 보고하며, 또 유럽의회는 협상단의 일부로 참가하기도 한다.

EU의 통상 시스템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업계, 노조, 시민사회의 의견을 협상단에 반영할 통로가 확보돼 있다는 점이다. EU 회원국은 각료이사회의 각국 대표를 통해 자국의 이해를 전달하며, 각 분야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대변하는 100개 안팎의 위원회를 통해 정기적·지속적인 대화를 하도록 돼 있다. 또 집행위원회는 연 2회 개인과 관련 단체들을 초청해 총회를 열고, 노동조합·환경·농업 등 10개 안팎 분야의 단체와 정기적인 협의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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