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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같은 재벌 회장, 무엇을 믿은 걸까

등록 2007-05-04 00:00 수정 2020-05-03 04:24

자기 아들 ‘보복 폭행’ 나선 한화 김승연 회장 앞에서 세상이 숨죽인 까닭은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결국 ‘김승연’이라는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했다.

3월9일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50일 가까이 시간이 흐른 4월27일에서다. 언론이 ‘모 대기업 회장’이라는 익명으로 첫 보도를 한 건 4월24일이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내용은 ‘조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재벌 회장이 연출한 ‘야간 활극’이었다. ‘북창동 룸살롱 괴담’으로 업계를 떠다녔던 소문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김승연(55) 한화그룹 회장이 자신의 둘째아들이 서울 청담동의 한 가라오케에서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과 시비를 벌이다가 얻어맞자, 직접 경호원들을 데리고 가 ‘보복 폭행’을 했다는 소문은 실제상황이었다.

재벌 회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선정적 소재’인데도 무슨 이유에선지 경찰은 서둘러 사건을 종결했다. 그리고 뒤늦은 언론의 익명 보도가 더해졌다. 세상이 숨을 죽인 셈이다. 도대체 왜 세상은 숨을 죽인 것일까.

“아들이 눈을 맞았으니 너도 눈을”

이 사건은 4월24일 가 처음 보도함으로써 일반에 공개됐다. 는 “모 대기업 회장이 자신의 아들이 술집에서 폭행당하자 경호원 등을 동원해 보복성 폭력을 휘둘렀다는 첩보가 입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언론은 적극적으로 취재 전선을 형성하지 않았다. 국내 굴지의 재벌 회장이 연루된 폭행 사건임에도, 언론은 사건이 주는 사회적 함의와 공인의 사회적 책임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했다. 기사는 나오지 않거나 작게 취급됐다. 한화그룹 쪽은 언론사들과 접촉하면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명으로 보도하면 기업 이미지가 실추된다”며 실명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모기업 회장, 대기업 A회장, H그룹 회장, H그룹 K모 회장 등으로 폭행의 가해자는 익명 처리됐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현장을 지켜본 목격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의 ‘보복 폭행’은 3월9일 김 회장의 둘째아들과 ㅅ클럽 직원들과의 실랑이에서 비롯됐다. 이날 새벽, 업무를 마친 ㅅ클럽 직원 8명은 서울 청담동의 ㄱ가라오케로 술을 마시러 갔다. 계단을 지나가던 직원 일부가 둘째아들의 어깨와 부딪혔다. 서로 주먹이 오갔으며, 둘째아들의 눈이 찢어졌다. 여기까지만 해도 신문의 1단 기사 정도였다. 하지만 이튿날 아들이 폭행당했다는 사실에 격분한 김승연 회장이 사건에 개입함으로써,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이튿날 오후 ㅅ클럽 직원들에게 ‘한화 쪽에서 만나고 싶어한다’는 연락이 왔다. 8명 중 5명이 ㄱ가라오케로 갔고, 사람 수가 모자라 ㄱ가라오케 직원 3명을 끼워넣었다. 하지만 김 회장 아들을 때린 사람은 8명 중에 없었다. 이들은 ㄱ가라오케에서 김 회장 일행을 만나 서울 강남의 공사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김 회장은 자신의 아들을 때렸다고 대신 나선 사람에게 “내 아들이 눈을 맞았으니 너도 눈을 맞아라”면서 눈만 계속 때렸다. 하지만 그가 아들을 때린 사람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김 회장 일행은 ‘진범’을 잡기 위해 북창동 ㅅ클럽으로 향했다.

회장 아들이 자신을 때린 사람 때려

당시 목격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이 일행과 함께 ㅅ클럽에 들어오자마자 사장의 빰을 때렸고 이어 방으로 들어가서 때린 사람을 데려 오라고 했다. 당시 폭행 사건과 연루된 직원들이 방에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한 목격자는 “위압적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 회장을 때린 사람을 불렀고, 김 회장의 아들이 그를 때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술을 마신 것처럼 보였”고, 폭행은 종업원들에게도 이어졌다. 경찰이 도착한 시간은 폭행 직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몇 개 방을 열어보다가 사장이 말리니 그냥 나갔다. 목격자들은 경찰이 김 회장이나 아들을 찾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사실은 4월27일치에 보도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왜 경찰은 서둘러 자리를 떴을까. 그리고 한 달이 지날 동안 아무런 수사도 하지 않았을까. 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은 “당시 술집 종업원 6명만 있었고,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였지만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해 이들을 해산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종료했다”고 해명했다. 그 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3월 중순께 관련 첩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3월25일 서울경찰청에 첩보보고서를 보내 결재까지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은 3월28일 이를 다시 남대문경찰서로 이첩하라고 지시했다. 단순 폭행 사건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광역수사대가 첩보를 입수해 다룬 사건은 해당 부서에서 수사까지 진행하는 게 관례다.

한화 쪽에서 경찰에 로비를 시도했다는 정황도 나오고 있다. 한화그룹 고문을 맡고 있는 최기문 전 경찰청장은 사건 발생 2~3일 뒤, 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화그룹 폭행 건이 있느냐”고 물었다. 최 전 청장은 광역수사대가 첩보를 얻어 내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사실을 문의했던 것이다. 이미 경찰 차원에서 수사를 진행했고, 사건의 얼개를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장 서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 전 청장의 질문에) 나는 ‘없다’고 답했고, 외압성 요청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만약 한화의 로비가 사실로 드러나면, 이 사건은 김 회장의 ‘기행’을 넘어 기업과 경찰의 유착 문제로 번지게 된다.

뒤숭숭한 한화그룹, 확대되는 수사

총수의 일탈을 목도한 재계 순위 9위의 한화그룹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올해 1월 새 기업통합이미지(CI)를 선보이며 혁신을 다짐했던 한화는 대외적 이미지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일단 경찰 수사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연 회장은 4월27일 성명을 내어 “개인적인 일로 물의를 일으켜 매우 송구스럽다”며 “현재 제기되는 사안들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4월27일 밤 언론은 일제히 태도를 바꿨다. 익명을 고집하던 언론은 실명으로 ‘한화그룹’과 ‘김승연 회장’을 집중 보도하기 시작했다. 남대문경찰서도 뒤늦게 수사팀을 2개 팀에서 4개 팀 24명으로 보강하는 등 수사를 확대했다. 야간 활극의 피해자들의 진술이 이어지면서, 엇갈리는 진실도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김 회장 일행이 △흉기를 사용했는지 △조직폭력배와 함께했는지 △한화 쪽에서 경찰에 로비를 했는지 여부가 진실의 핵심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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