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김영삼 정권 때 ‘통상’산업부 만들어진 뒤, 김대중 정권 때 외교부를 외교‘통상’부 개편하고 9년 동안 현 체제 유지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한국의 중앙정부 조직에서 ‘통상’이란 단어가 처음 나타난 것은 1994년 11월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세계화 선언’을 계기로 추진된 3차 조직 개편에서 상공자원부가 ‘통상’산업부로 개편된 게 그 단서였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쳐 재정경제원으로, 건설부와 교통부를 통합해 건설교통부로 출범한 때였다.
통상산업부 출범 이전까지 통상 교섭 업무는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부, 외무부 등 부처별로 분산돼 있었으며, 부총리 기관인 경제기획원의 ‘대외경제조정실’에서 이를 총괄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일개 부처의 곁가지 조직에 맡겨진 총괄 조정 기능은 약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비롯되는 부처 사이의 영역 다툼으로 웃지 못할 소동이 자주 벌어졌다.
94년 이전, 통상 업무를 여러 부처에서 분산 처리
조순씨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재직하던 1989년의 일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창설 회의에 한국 대표로 누구를 보내느냐를 두고 경제기획원과 외무부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기획원은 부총리 기관인데다 대외경제조정실을 두고 있다는 이유를 댔고, 외무부는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이라는 주장을 펴며 팽팽히 맞섰다. 사단이 벌어진 건 대통령 결재 단계에서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두 기관에서 올라온 보고에 모두 서명함으로써 두 명의 대표가 파견될 기묘한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당시 경제부총리 자문관이었던 이계식 박사(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는 “기획원에서 먼저 대통령 결재를 받았는데, (외무부에서) 장관을 들쑤셔 청와대 결재를 받아내는 바람에 ‘양쪽 다 가라’고 됐던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조순 부총리의 양보로 홍순영 외무부 장관이 회의에 참석하는 쪽으로 정리됐는데, 막판까지 양쪽 공무원들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고 한다.
통상 체제에 또 한 차례 큰 변화가 일어난 때는 김대중 정부 출범 시점인 1998년 2월이었다. 부총리제를 폐지하고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로 바꾼 당시 직제 개편에서 통상산업부는 통상 교섭 업무를 뺏기면서 산업자원부로 바뀌었다. 이때 통상 교섭 업무를 넘겨받은 외무부가 외교‘통상’부로 개편되면서 그 아래 통상교섭본부를 둔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전 정부조직개편위원회(위원장 박권상)에서 마련한 통상조직 개편안은 △미 무역대표부(USTR) 같은 대통령 직속의 무역대표부(KTR) 설치 △새로운 부처 설치 △외무부 안에 두는 방안 등 세 가지였다. 대통령 직속에 두는 방안은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부처 신설안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통상 기능을 외무부 쪽으로 이동시키는 세 번째 방안을 두고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외무부 조직의 폐쇄성 탓에 다른 부처 공무원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이다.
‘대내 협상’ 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으로…
당시 정부조직개편위 실행위원으로 일했던 이계식 박사는 “1998년 2월 초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조정으로, ‘(통상교섭본부를) 외무부 안에 넣되 헤드(본부장)는 외무부 사람을 안 쓰고 통상 전문가를 데려다 쓰기로 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직전까지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일했던 한덕수씨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은 배경이다. 이계식 박사는 “짐작건대 DJ(김대중 대통령)는 그때 이미 한덕수씨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통상 조직이 개편된 지 9년을 조금 넘긴 지금, 통상 시스템은 또 한 번 변화의 필요성에 맞닥뜨리고 있다. ‘대외 협상’ 못지않게 국내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대내 협상’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외교통상부라는 일개 부처의 내부 조직으로는 점점 한계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체제에 대한 국회의 견제 기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도 조직 개편의 주요 과제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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