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예정보다 앞당겨 4월 중 특위의원에게 공개하기로 했으나…타결 직후 분야별 전문가가 연구하는 미국과는 천지차이</font>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문안을 확정짓는 과정을 거쳐 5월 중 전체 텍스트(협상문 전문)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4월5일 정례 브리핑) → “다음주에라도 협상문을 공개(열람 허용)할 수 있다.”(한덕수 국무총리, 4월10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한 답변)
비공개 자료실에서 전문가 대동 없이…
정부가 영문으로 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문 전문의 공개는 5월 중에나 가능하다고 버티던 데서 4월 중으로 앞당기겠다고 한발 물러서기까지는 웃지 못할 곡절을 겪었다. 빌미는 한-미 FTA 열성 지지파인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이 제공했다. 송 의원은 지난 4월5일 밤 문화방송 에 출연한 자리에서 ‘밀실 협상’이라는 반대편 토론자의 비판에 반론 근거를 대며 “한-미 FTA 타결 영어 원문을 봤다”고 실토(실언?)했다. 같은 토론회 자리에 참석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심 의원실은 같은 날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에 영문으로 된 협상문 원본을 요청했다가 ‘당장 열람은 곤란하다’는 답변을 듣고, 국회의원들에게도 공개되지 않는 것으로 믿고 있던 터였다.
심 의원은 4월6일 국회 한미FTA특별위원회 회의에서 “(한-미) FTA를 찬성하는 의원에게는 자료를 공개하고, 반대하는 의원에게는 안 주는 거냐”고 정부 관계자들을 추궁했다.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는 이에 “송영길 의원의 경우 TV 토론회에 나간다며 특별히 열람을 요청해서, 참고하시라고 ‘6줄’만 보여드렸다”고 털어놓기에 이른다. 정부 쪽은 그 뒤에도 한동안 심 의원과 공방을 벌이다 10일에야 국회 특위 위원들에게 공개하겠다고 마지못해 양보했다. ‘5월 전 공개’는 미국과 맺은 비밀유지 약속을 깨는 것이라며 펄펄 뛰었던 건 어찌된 일일까?
협상문 전문 공개는 반대 진영에서 일찌감치 내건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었다. 통상교섭본부가 협상 타결 직후인 4월4일 80여 쪽에 이르는 ‘분과별 협상 결과’를 보도자료 형식으로 내놓기는 했지만 전체 협상문(1천여 쪽)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분량이어서 협상 전모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를 띤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가 애초 내건 일정보다 한 달가량 앞서 공개하기로 했으니 반대 진영의 요구는 어느 정도 충족된 것일까?
정부의 4월 중 공개 방침에는 ‘조건’이 달려 있다. 국회 특위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국회 특위 비공개 자료실에서는 열람만 할 수 있고 복사나 필사조차 금지된다. 또 비공개 자료실에는 전문가를 대동할 수 없다. 국회 특위 위원은 30명 수준인데다 그나마 대다수는 한-미 FTA 찬성파다. 분야별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런 상태에서 방대한 영문 협상문을 한번 훑어보는 것으로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 미국의 사정은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다. 분야별 이해당사자들을 대표하는 33개 민간 자문위 소속 700여 명의 전문가 집단이 협상 타결 직후부터 협상문 전체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분야별 전문가들에겐 이미 협상문 전체가 공개돼 있는 것이다.
협상문 공개는 여론을 어떻게 바꿀까
한-미 FTA 반대 진영에선 ‘정부의 버티기’에 마땅한 대응책을 찾을 수 없는 갑갑한 처지다. 미국과 달리 협상문 전반을 이해당사자들에게 즉각 공개해 평가와 검증을 받도록 할 ‘법적 강제 장치’가 없다.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003년 FTA법을 만들 때 ‘협상 전’에 공청회를 통해 이해당사자들의 얘기를 듣는 데 초점을 맞췄을 뿐 ‘협상 타결 뒤’ 평가와 검증 절차는 미처 생각 못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미국만큼은 아니어도 이해당사자들에게 협상문 전반의 내용을 최대한 빨리 알려 대통령 서명(협정문 조인) 전에 평가와 검증 절차를 거치도록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은 ‘국민 여론’뿐으로 여겨지는데, 이 또한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협상문 원문을 공개하라’는 반대 진영의 요구가 여론의 비등으로 연결되는 분위기는 아직 형성되지 않고 있다. 협상 타결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듯 협상안에 찬성하는 기류가 우세하다.
앞으로 여론이 어떻게 흐를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크게 갈린다. 이미 타결된 협상이란 인식에 따라 찬성 여론이 추가로 높아질 것이란 의견과, 정부와 언론의 쏟아붓기식 홍보의 거품이 걷히면 반대 여론이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맞서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반대 여론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쪽이다. 홍 소장은 “계층별로 각론에 대한 반대는 있어도 FTA에 원론적으로 동의하고 이미 타결된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며 “(세부적으로) 조율되지 않은 건 (협상 타결) 이후의 문제로 여긴다”고 진단한다. 또 하나 국민들의 기본 정서는, 어쨌든 국가적인 에너지를 결집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국제 무대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라는 게 홍 소장의 분석이다.
반면,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협상 타결 직후의 찬성 여론을 ‘이벤트 효과’로 보고 있다. 이는 협상문의 세부 내용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협상 타결 직후 조사 결과들을 보면, 찬성이 높아졌다고 해도 55%를 넘지는 못한다. 나머지는 유보 또는 반대다. 상당히 팽팽하다고 볼 수 있다.” 김 소장은 이를 “국민들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데이터”라며 “타결 직후의 ‘이벤트 효과’ ‘성사 효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감안할 때 ‘55 대 45’라는 찬반의 기본 지형에 큰 변화는 없다”고 풀이했다. 김 소장은 향후 여론 흐름의 관건으로 ‘대중의 구심점’ 노릇을 할 ‘정치 세력’을 꼽는다.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얘기하는 찬반도 중요하지만, 어떤 정치 세력이 (FTA 문제를) 정확하게 들고 나오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대 운동의 중심인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4월10일 집행위원회를 열고 협상문 원문을 즉시 공개할 것과 함께 협정문 비준(대통령 서명) 전 국민투표 실시를 주장하고 나섰다. 또 13일 오후엔 국회의원, 각계 원로들이 참여한 전국 사회단체 비상대표자 회의를 열어 반대 진영의 외연을 확장했다. 정치권과 연계해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한-미 FTA를 핵심 쟁점으로 부각시키자는 전략에서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
반대 진영에 호재라면, 협상 타결 전부터 경계했던 일들이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는 점이다. 협상 과정뿐 아니라 협상 결과에 대한 평가와 검증 작업 또한 미국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 미국 쪽에서 일부 내용의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은 이미 사실로 드러났다. 국력의 차이로 미국에 밀릴 수밖에 없는 협상이었음에도 협상 뒤 ‘판정승했다’는 공식 전자우편을 살포하는 식의 무리수에 따른 부메랑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가 펴낸 책 의 부제는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였다. 협상문 공개로 조금씩 드러나게 될 각론 속의 ‘악마’가 장밋빛으로 채색된 본론의 주조와 여론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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