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 아깝게 탈락한 표지 디자인, 도발과 타협의 흔적이여
▣ 장광석 디자인 팀장
시사지에서 그래픽디자이너는 기사를 시각화하는 일을 담당한다. 대중에게 뉴스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기능적 역할이 더 강하게 요구되는 편이다. 그래서 ‘파격’에 대해서는 인색해질 수밖에 없고 디자이너의 활동 폭도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의 전달’이라는 기능은 디자이너의 ‘시각적 욕심’과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매 호 작업을 할 때마다 그 속에서 크고 작은 타협을 해야 한다. 디자이너들이 작업한 결과물, 특히 표지 디자인에서 ‘만족스럽다’고 표현하기엔 늘 갈증을 느낀다. ‘타협’과 ‘도전’. 아래의 표지들이 그런 고민의 흔적들일 수 있겠다.
590호
2005년 연말은 황우석 파문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고 송년호였던 590호의 계획된 표지이야기 아이템은 교체가 불가피했다. 모든 매체들이 황우석에 집중했을 때이니 만큼 표지도 따로 고민할 필요 없이 황우석이라는 인물 이미지가 메인으로 가야 했다. 몇 가지 안을 작업했는데 가공하지 않은 클로즈업 사진, 진실 공방을 벌였던 노성일 이사장과 황 전 교수를 나란히 배치한 이미지, 그리고 색을 빼고 톤을 바꾸고 망점으로 황 전 교수를 드러내는 이미지, 이렇게 세 가지로 작업을 했다. 최종 결정 단계에서 세 번째 안이 채택됐는데 부제를 비롯해 기타 요소들을 버리고 심플하게 가기로 했다. 다른 내용들을 버린다는 것은 그간의 관행에서 보면 모험이었다. 개인적으로 적절한 결단이었다고 생각한다.
592호
592호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은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를 재고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그 담론을 이끌어낸 훌륭한 아이템이었다. 그래픽디자인을 하는 개인으로서도 비교적 만족스런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미지를 타이포그래피(활자의 글씨체나 글자 배치 따위를 구성하고 표현하는 일)만으로, 게다가 띄어쓰기와 행간을 조형적으로만 고려한다는 게 ‘시사지’에서는 적지 않게 실험적인 시도였다. 애초에 본문 메인에 썼던 인물을 표지컷으로 쓰자는 안도 있었지만 사실 진부한 느낌이 많았다. 내부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편집장의 최종 결단은 중요했고, 적절했다.
593호
유시민의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과 관련해 논란이 많던 시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 공동체로서의 유 장관을 다룬 593호는 개인들에게는 실례되는 이미지였다. 최종 표지가 다소 완화된 형태로 가긴 했지만 그래도 얼굴을 갖고 장난을 친 꼴이었으니 당사자들에게는 상당히 송구스런 경우였다. 운명 공동체로서의 노 대통령과 유 장관을 표현하는 것으로 두 사람을 적당히 합성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눈, 코, 입, 이마 등을 나눠서 합성하다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의 제3의 인물이 되고 만다. 작업한 이미지들을 보면 알겠지만 두 사람의 특징도 찾을 수 없는 게 됐다. 콘셉트에도 부합되지 못하는 ‘장난’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절반의 얼굴 사진이 포개진 느낌의 반반 합성인 안이 최종 결정됐다.
594호
국내 포털의 절대 강자 네이버를 드러내는 이미지가 필요했다. 우선 네이버의 아이덴티티 컬러인 녹색으로 전체적인 톤을 결정했고 정글을 점령한 절대자의 이미지를 생각했다. 일러스트 작업을 끝내놓고 보니 이미지도 약할뿐더러 읽기가 좀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네이버의 로고 타입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검색창을 만들어 제목을 다는 식의 인터넷 환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네이버 직원들을 찍은 사진컷 정도로 작업을 더했다. 최종적으로 검색창 느낌의 이미지가 결정됐다.
595호
언제나 특집호는 좀더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다. 595호는 설 합본호였다. 하지만 비교적 풀기 쉬운 아이템이었다. 복귀한 여당의 두 전직 장관이 벌이는 당권 경쟁에 관한 기사였으므로 두 사람의 사진으로 구성을 하면 그 것으로 끝날 수 있는 표지였다. 설 분위기에 맞게 제호를 꾸미는 정도의 손길만 더 타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좀 다른 표지가 되었으면 싶었고 편집장도 다른 이미지를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김홍도의 씨름도를 패러디한 그림을 그렸다. 나름대로 공을 들인 이미지였지만 최종적으로 채택되진 못했다.
602호
최종 결정에서 현장성이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 표지였다. 하지만 워낙 대중의 관심이 뜨거운 아이템이었던 만큼 역으로 사고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환호하는 선수들의 표정을 중심으로 한 번 걸러진 듯한 느낌의 일러스트가 차분하고 그래픽적이어서 개인적으로는 그 표지를 훨씬 마음에 두고 있었다. 최종 결정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시사지에서 사진이 가지는 생생한 현장성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604호
표지에 모델이 필요한 촬영의 경우 외부에서 섭외하는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604호 표지도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이미지 콘셉트를 정하고 별 고민 없이 “너 해” 하는 식으로 모델이 결정됐다. 당사자였던 안인용 기자는 로 직장을 옮긴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으므로 황당했겠지만 결과적으로 꽤 성공적인 비주얼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사진도 깔끔했고 모델의 표정도 자연스러웠다. 음식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대부분 이견 없이 모델컷을 지목했다.
609호
평택에 공권력이 투입됐던 긴박한 상황에 만들어진 표지였는데 사진 역시 충격적이면서 생생했다. 표지를 위한 몇 개의 컷이 추려졌다. 주로 경찰의 과잉 진압과 처절한 평택의 상황이 드러나는 사진들이었다. 생생한 현장감을 주는 사진이었지만 그중 표지로 최종 결정된 컷은 시적인 감수성이 느껴졌다. 평택의 상황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날것의 생생함을 관조하는 듯한 어떤 시선, 그런 게 있었다.
621호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르포로 다룬 621호 역시 현장을 고발하는 생생한 사진의 힘으로 표지를 구성했다. 폐허가 돼버린 베이루트시를 가로로 길게 펼치는 형식으로 그동안의 표지 관행에서 벗어나는 레이아웃, 그리고 현장 사람들의 긴박한 움직임을 포착한 이미지, 두 개의 안을 만들었다. 두 번째 안이 결정됐다. 가로로 가는 레이아웃의 표지 형식은 이후 추석 합본호에서도 쓸 수 있었다.
631호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보수단체들의 날 선 목소리는 기세가 등등했다. 단연 북한 핵 사태는 이슈였다. 남한·북한·미국 3자의 관계로 이미지를 풀어 나가려고 했다. 김정일 위원장과 부시 대통령이 마주 보는 사이로 노무현 대통령이 자리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보수단체의 움직임에 포커스를 두고 기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제목 역시 비주얼과 어긋나 있었다. 보수단체의 시위 장면 컷을 활용하기로 했는데 비주얼 요소가 많은 현장의 어수선한 이미지라 한눈에 들어오기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래서 타이포그래피에 힘을 주기로 했고 상대적으로 사진을 약화시켰다.
632호
632호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부운하 개발 주장의 오류를 밝히는 기사였고, 따라서 환경적인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이미지가 필요했다. 지도에 억지로 기름띠를 두른 이미지를 만들어보기로 했고 작업을 진행했는데 결과물을 놓고 보니 딱 떨어지는 느낌이 덜했다. 상투적이지만 이 전 시장의 얼굴이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었다. 거친 느낌은 있었지만 보트를 타고 있는 이 전 시장 사진이 있었고 그게 표지로 결정됐다.
640호
2006년에 이 뽑은 올해의 인물은 평택 대추리 사람들이었다. 인물 기사의 경우 인물컷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경우는 상황이 좀 달랐다. 수십 명의 사람들을 한 지면에 전부 넣어야 했고 현장감도 살아야 했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찍어온 사진은 역시나 어수선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본문에 사용할 컷을 보던 중 농부의 손에 가득 담긴 벼를 클로즈업한 사진이 있었다. 느낌이 좋기도 했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판단이 됐다. 농부의 손과 벼는 대추리를, 그리고 벼 한알 한알은 대추리 주민 하나하나를 상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안은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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