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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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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순교자’로 불렸다

등록 2007-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전쟁 끝나고 7개월, 길가 곳곳에는 헤즈볼라 무장대원 전사자의 초상화가…오늘 7월 파병되는 한국군 특전사 350명의 행보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 빈트 즈바일·키암(레바논)=글·사진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2006년 7월과 8월에 걸쳐 중동을 더욱 후덥지근하게 만들었던 이스라엘-헤즈볼라 사이의 전쟁이 끝난 지도 7개월이 흘렀다. 34일 동안 11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그 전쟁은 아직도 긴 그림자를 끌고 있다. 남부 레바논 일대 곳곳에는 전쟁이 남긴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그날의 포성을 메아리처럼 아스라이 들려준다.

이스라엘군의 포격으로 집을 잃은 90만 명의 난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잠자리가 불편하다. 먼 곳에 사는 친척집에 빌붙어 살거나 셋방살이 신세다. 헤즈볼라와 카타르를 비롯한 이웃 아랍 국가들의 현금 지원을 받긴 했지만, 파괴된 집을 다시 짓기엔 충분하지 않은 규모다. 이스라엘이 다시 쳐들어온다는 소문도 많은 사람들이 집을 다시 짓는 일을 뒤로 미루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래저래 복구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지난여름 전쟁 뒤 남부 레바논에는 전에 없던 풍경들이 생겨났다. 길가 곳곳에 전투 중에 사망한 헤즈볼라 무장대원들의 초상화가 내걸렸다.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레바논 시아파 사람들은 그들을 ‘순교자’로 부른다. 그들 가운데는 몸에 폭탄을 지고 이스라엘 탱크에 부딪쳐 죽은 대원들도 있다. 같은 시아파인 헤즈볼라와 이란의 동맹관계를 말해주듯,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와 이란 시아파 성직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초상화들도 남부 레바논 곳곳에서 눈에 띈다.

남부 레바논에는 이스라엘-헤즈볼라 정전 직후인 2006년 8월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01호에 따라, 2007년 2월 현재 1만2400명의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이 주둔 중이다. 이들은 레바논 남부 리타니강 남쪽과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의 잠정적인 경계선, 이른바 ‘푸른 선’(Blue Line)을 따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의 완충지대를 순찰 중이다.

레바논 사람들은 UNIFIL이 헤즈볼라의 활동을 제한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게 아니냐는 떨떠름한 생각들을 품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오는 7월쯤 한국군 특전사 병력 350명이 남부 레바논 티레(수르) 지역에 파병된다면, 한국군의 행보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레바논 사람들이 품은 한국의 이미지는 친미·친이스라엘로 굳어져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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