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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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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3개국 르포 ① 레바논] 적대감은 블루라인을 넘었다

등록 2007-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21세기 지구촌 화약고 중동 3개국 르포 ① 레바논, 잠정 경계선 너머는 수복해야 할 땅…미국만 쳐다보는 정부보다 피해 상황 기록하고 보상금 건네는 헤즈볼라 훨씬 신뢰

중동은 불타고 있는가? 발칸이 20세기 지구촌의 화약고였다면, 중동은 21세기의 화약고이다. 핵에너지 개발을 둘러싸고 미국의 군사행동이 거론되는 이란, 2006년 여름 34일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의 재침공설이 나도는 레바논,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정권 교체’를 간절히 바라온 시리아…. 이 세 나라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더불어 21세기 격동의 중동 정치에서 언제 폭발할지 모를 강한 휘발성을 지녔다. 특히 레바논은 오는 6~7월께 유엔평화유지군 자격으로 한국군 특전사 부대의 파병이 예정된 곳이기도 하다. 은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를 최근 23일 동안 현지로 특파해, 긴장감 넘치는 이 세 나라의 현황과 향후 중동 정세를 집중 취재했다. 이를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베이루트·나쿠라·티레(레바논)=글·사진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베이루트에 닿은 시각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 7시 무렵. 숙소로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시내 중심가의 몇몇 건물들이 파괴된 채로 흉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연결망을 지닌 ‘홀리데이 인 호텔’도 그 가운데 하나다. 운전기사에게 물으니, “파괴돼 저런 상태로 있은 지가 20년이 넘었다”고 대꾸한다. 그렇다면 지난여름 전쟁으로 부서진 건물이 아니란 얘긴가? 1975년 이래 15년 동안 지속된 피가 피를 부르는 내전과, 이스라엘군의 잇단 침공을 겪으면서 레바논은 만신창이가 됐음을 새삼 깨달았다.

지난해 7, 8월에 걸쳐 무려 11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이스라엘-레바논 헤즈볼라 사이의 34일 전쟁도 레바논 파괴에 한몫을 했다. 바로 그때 베이루트 국제공항도 이스라엘 미사일 다섯 발을 맞아 활주로가 파괴되는 바람에 한동안 폐쇄됐다. 그 전쟁이 끝난 지 7개월, 베이루트 국제공항 활주로야 서둘러 고쳐졌지만, 수도 베이루트의 헤즈볼라 거점인 남부 지역은 물론 격전이 치러졌던 리타니강 이남 남부 레바논 곳곳의 마을들은 아직도 전쟁의 상흔을 걷어내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곳곳에 파괴돼 버려진 건물과 끊어진 다리는 언제 복구될지 모른다.

△베이루트의 남부 헤즈볼라 거점지역 베이르 알아베드의 파괴 현장. 지난해 여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건물은 사라지고 기둥만 남았다. 전쟁의 포화가 멈춘 지 7개월여가 지났지만, 수도 베이루트 일대는 물론 격전이 치러졌던 리타니강 이남 남부 레바논 곳곳의 마을은 아직도 전쟁의 상흔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형 폭탄이 파놓은 엄청난 웅덩이

헤즈볼라의 거점이 자리한 시내 남부 베이르 알아베드 지역으로 가봤다. 무엇보다 10층은 넘어 보이는 고층 아파트 건물들이 무너지고 파괴된 데 놀랐다. 그 속에 살던 주민들은 이스라엘에서 쏘아올린 미사일이나 F-16 전폭기의 폭격에 잠을 자다가 죽었다. 요행히 살아남은 사람들도 크게 다치고 집을 잃었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을 병원에서 깨어난 뒤에 듣고 깊은 슬픔과 절망을 느껴야 했다.

베이르 알아베드 지역의 한 곳엔 10여m 깊이의 거대한 웅덩이가 파였다. 때마침 내린 비로 흥건히 물이 고였고, 주인 잃은 신발들과 모자들이 웅덩이가에 어지럽다. 도대체 이스라엘군은 어떤 폭탄을 썼기에 저런 엄청난 웅덩이가 생겨났을까. 헤즈볼라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셰이크 코도르 누르 에딘(헤즈볼라 정치위원)은 “이스라엘이 콘크리트 벙커를 파괴하는 데 쓰는 대형 폭탄인 벙커버스터와 열화우라늄탄(DU)을 민간인 주거지역에 퍼부었다”고 주장했다.

베이르 알아베드 지역의 파괴 현장에서 한창 취재를 하고 있는데, 3명의 레바논 젊은이들이 다가와 시비를 건다. “사진 찍을 허가를 받았느냐”는 것이다. ‘허가’라니…. 이게 무슨 군사보안 시설이라도 된단 말인가. 개중 나이든 보안요원이 양해를 구한다. “이스라엘 첩자들이 헤즈볼라 간부들의 동향을 사진으로 찍어 보고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으니 이해해달라.” 헤즈볼라 간부들이 이스라엘의 표적사살 움직임에 적지 않은 신경을 쓰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헤즈볼라 사이의 소리 없는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인 게다. 이스라엘 정부와 군 지휘부는 “헤즈볼라 간부들을 찾아내 처단하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헤즈볼라의 형식상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마즐리스 알 슈라’(평의회)지만, 지도부의 정점은 헤즈볼라 사무총장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다. 나스랄라는 헤즈볼라의 실질적인 지도자로서 1992년부터 지금껏 헤즈볼라를 이끌어왔다. 1960년생인 그는 ‘젊지만 카리스마가 강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군이 개전 초기부터 베이루트 남부 지역을 강타한 공습도 나스랄라의 은거지로 의심되는 곳들을 노린 것이었다. 이스라엘군은 휴전과는 관계없이 나스랄라 제거 작전을 계속 펴나가겠다는 태세다.

“한국은 친미 국가, 친이스라엘 국가”

다음날 지중해를 끼고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따라 레바논 남부 지역으로 향했다. 먼저 베이루트에서 40km 떨어진 시돈(또는 ‘사이다’) 지역을 지나자 리타니강이 나온다. 이제부터가 레바논 주둔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이하 유엔군) 관할 지역이다(2007년 2월 현재 각국에서 파병한 1만2400명을 클라우디오 그라지아노 이탈리아군 중장이 지휘하고 있다). 가다 보니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파괴된 도로를 차단하고 길 밑으로 임시 도로를 만든 곳이 나타났다. 유엔군 관할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가 베이루트에서 80km쯤 떨어진 티레(일명 ‘수르’)다. 오는 6, 7월쯤 파병될 350명 규모의 한국군 특전사 부대가 주둔하게 될 곳은 티레 동북쪽 5km 지점이다. 지중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구릉지대에 기지가 들어설 것으로 전해진다.

티레 시내에 들어서니, 한국으로 치면 작은 지방도시 분위기가 느껴진다. 지중해 해변으로 난 간선도로를 따라 3~4층짜리 나즈막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티레 사람들은 시아파가 다수여서, 헤즈볼라를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편이다. 지난날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해 들어올 때마다 이곳이 점령당한 까닭에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감정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점심을 먹을 겸 아랍식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에 들어간 김에 주인을 붙잡고 “한국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이곳 티레 가까이로 온다는데…” 하고 말문을 뗐다. 그러자 주인은 어느 외국군이 오든 그들이 장사(약간 범위를 넓히자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에 더 관심을 쏟는 눈치였다. 잇단 전쟁에 지친 레바논 서민들에겐 평화니 국제질서니 하는 추상적 주제보다는 생존 문제가 현실적으로 더 절실하게 다가서는 것이다.

티레 음식점 주인의 반응이 현실적인 이해타산에서 비롯됐다면, 그 며칠 뒤 베이루트에서 만난 한 신문기자의 반응은 그와는 딴판이었다. 레바논에서 발행되는 유력 영자신문 의 한 기자는 ‘과연 한국군이 레바논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를 두고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레바논에서 반이스라엘 감정은 시아파나 수니파, 기독교도 사이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한국의 이미지는 아랍인들 사이에 친미 국가, 따라서 친이스라엘 국가로 굳어져 있다. 한국군이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온다 해도 사람들은 그리 곱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자칫 이스라엘 편을 든다는 오해를 하기 십상이다.”

티레 남쪽 30km 지점에 자리한 나쿠라 마을은 이른바 ‘블루라인’(Blue Line)에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그곳 지중해변에 유엔군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다. 블루라인은 지난 2000년 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한 뒤 유엔이 그은 잠정적인 경계선이다. 많은 레바논 사람들이 블루라인 너머 남쪽 땅도 레바논 영토라 여긴다. 이를테면 레바논 동남부 ‘셰바 농장지대’도 헤즈볼라 시각에선 수복돼야 할 영토다.

마침 내린 비로 도로는 진흙탕이다. 더러 포장도로가 나오긴 했지만, 아주 오래전에 포장했는지 거의 비포장 수준이다. 그런 도로에서 진흙탕을 뒤집어쓴 유엔군 장갑차량들과 마주치곤 했다. 이들은 블루라인을 따라 주기적으로 순찰을 돈다. 때때로 레바논 정부군과도 마주쳤다. 그러나 헤즈볼라 무장요원은 만날 수 없었다. 헤즈볼라 주력군은 레바논 동부 시리아 접경지대에 가까운 베카 계곡에 주둔 중이다.

정부군도 전보다 공세적

블루라인에서는 지난해 8월 휴전 이래로 긴장이 이어져왔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정부군 사이에 짧은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유엔군 병력이 긴급 출동해 상황을 가라앉혔다. 레바논 정부군은 이스라엘군에 대해 전보다 공세적인 모습을 보인다. 지난여름 전쟁 전만 해도 헤즈볼라와는 달리 대이스라엘 투쟁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모습에 견줘 눈에 띄는 변화다.

레바논-이스라엘 접경지대의 마을들 가운데 어떤 곳은 파괴 정도가 심했고, 어떤 곳은 멀쩡했다. 시아파 이슬람 신자로 티레에서 태어났다는 통역 하킴은 “수니파가 주로 몰려 사는 마을들과 기독교도들이 사는 마을들은 이스라엘군의 포격을 받지 않았고, 헤즈볼라 지지 기반인 시아파 마을들은 포격을 받거나 이스라엘 지상군의 공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유엔군 사령부가 자리한 나쿠라에서 10km쯤 떨어진 야라인 마을이나, 20km쯤 떨어진 알마샤 마을은 수니파 주거 지역이다. 그 마을들은 이스라엘 접경지대와 거의 붙었는데도 전쟁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알마샤 마을에서 동북쪽으로 10km쯤 떨어진 시아파 마을인 빈트 즈바일은 달랐다. 마을 들머리부터 여러 종류의 초상화들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초상화들은 헤즈볼라 전사자들을 그린 것이다. 현지 사람들은 헤즈볼라 전사자들을 ‘순교자’라 부른다. 레바논을 침략한 이스라엘군에 맞서 싸우다 숨을 거둔 영웅들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헤즈볼라 전사들은 빈트 즈바일 마을에서 이스라엘 병사들과 격전을 치렀다. 그런 까닭에 마을 대부분이 파괴됐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빈트 즈바일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친 사람들은 레바논 정부 관리들이 아니라 헤즈볼라 요원들이었다. 이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피해 상황들을 꼼꼼히 기록해가선, 얼마 뒤 빳빳한 미국 달러로 보상금을 건넸다. 헤즈볼라와 더불어 빈트 즈바일 마을 사람들을 돕는 아랍국가는 카타르다. 한 마을 사람은 “카타르에서 장관급 고위 관리가 직접 와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부패한 레바논 정부 관리를 믿고 돈을 맡길 수 없어 직접 와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카타르는 아랍의 친미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슬람 형제애를 내걸고 시아파 마을 재건을 돕고 있다.

피해 주민들은 헤즈볼라나 카타르 정부 둘 가운데 어느 한쪽에서 현금 보상을 받으면 다른 쪽에선 받지 않기로 통보받았다. 한때 영국에서 살았다는 한 마을 주민은 “우리 집값이 3만달러쯤인데, 헤즈볼라로부터 1만달러 보상을 받았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돈으로는 집 지을 엄두를 못 내고 남의 집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옆에 있던 다른 주민이 끼여들었다. 그는 “그래도 헤즈볼라가 친미 레바논 정부보다 훨씬 낫다. 시니오라 총리는 피해복구 지원에 손 놓고 있다. 그저 미국만 쳐다본다. 그가 우리를 위해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며 목청을 높였다. 그는 “집을 다시 지을 만한 충분한 돈이 있다 해도 이스라엘이 다시 쳐들어온다는 소문 때문에 집 짓기가 망설여진다”고 덧붙였다.

남부 레바논 마을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또 있다. 이스라엘이 전쟁 끝 무렵 대량으로 살포한 집속탄이 곳곳에 널려 있다는 점이다. 무너진 집터에 무심코 발을 들여놓았다가 불발 집속탄을 건드리면 목숨을 건지기 어렵다. 영국의 대인지뢰 관련 비정부기구인 ‘랜드마인액션’ 조사에 따르면, 남부 레바논에서 폭발하지 않은 집속탄을 모두 없애는 데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2001년 아프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은 집속탄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국제인권단체들로부터 “전쟁의 일반적인 규범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이스라엘군이 사용한 집속탄은 미국제 M42, M77과 이스라엘제 M85. 이스라엘군은 휴전이 곧 이뤄질 것임을 알고 있던 사흘 동안 전폭기를 이용해 집속탄을 집중적으로 남부 레바논에 뿌렸다. 베이루트에서 만난 사미 살하브 레바논대 교수(국제법)는 “민간 주거지역에 집속탄을 마구 뿌려대는 행위는 전쟁범죄”라고 잘라 말했다.

“전쟁범죄 현장을 없애려” 파괴된 키암 수용소

남부 레바논을 둘러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곳을 꼽으라면 키암 수용소다. 지난날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을 점령하고 있을 때 헤즈볼라 전사들과 그 지지자들을 재판도 없이 무기한 가둬놓고 고문을 저질렀던 곳이다. 2000년 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할 무렵 140명이 갇혀 있었다. 그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내일을 내다볼 수 없는 절망 속에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남부 레바논 일대와 멀리 동남쪽으로 이스라엘이 차지한 셰바 농장지대를 내려다보는 고지에 자리잡은 이 수용소의 거대한 철문은 그대로이지만, 수용소 건물은 모두 파괴된 상태다. 이스라엘군이 물러난 뒤 헤즈볼라가 기념관으로 운용해왔으나, 지난여름 전쟁 때 이스라엘군이 폭파시켰다. 현장은 벽돌 부스러기들로 어지럽다. 키암 지역의 한 주민은 삼촌이 그곳에서 ‘순교’했다고 밝히면서 “이스라엘은 지난 2000년 그들의 전쟁범죄 현장을 남겨두고 물러난 것을 후회하다가, 이번 전쟁을 이용해 현장 자체를 없애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키암 수용소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이미 어둠이 낮게 깔리기 시작했다. 이중 철조망 너머 300m쯤 떨어진 이스라엘 정착촌과 나란히 난 도로를 달리던 레바논 운전기사 쿠사마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묻어난다. 정착촌에서 총탄이 날아들어 목숨을 잃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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