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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의 주사위, 탈당이냐 차기냐

등록 2007-03-07 00:00 수정 2020-05-03 04:24

‘탈당설’ 솔솔 불지만 남든 떠나든 희망은 별로 보이지 않는 상황…당 안에서 당과 차별화하는 전략만 구사하기에도 시간이 너무 부족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차기는 없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캠프의 이윤생 비서팀장이 사석에서 기자에게 한 말이다. ‘탈당하겠다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탈당’이란 말은 삼가 달라”면서도 “한나라당 내부에서 길이 막힌다면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의 말은 단호했고 비장감마저 느껴졌다. 정말로 이제껏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되려고 달려온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나갈 가능성이 있는 걸까?

좀처럼 상승하지 않는 지지율

‘탈당설’은 손 전 지사 쪽 캠프 대변인인 정문헌 한나라당 의원이 “들러리 서는 경선 규정이 바뀌지 않으면 경선에 불참할 수도 있다”는 수위 높은 발언을 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현재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 방식인 ‘2(대의원 투표):3(당원투표):3(일반국민 투표):2(일반국민 여론조사)’ 대로라면, 당의 핵심 지지층인 당원과 대의원이 결정권의 50% 지분을 쥐고 있기 때문에 당내 기반이 약한 손 전 지사에게 불리하다. 지지율이 낮은 손 전 지사의 입장에서는 일반국민 투표와 여론조사의 비율을 늘리고, 경선 시기는 최대한 늦추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물론 박근혜 전 대표가 ‘6월 경선’으로 시기에 대한 이견을 좁혀가는 마당에 손 전 지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경선 시기와 방식이 바뀌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설사 경선 방식이 원하는 대로 바뀐다 하더라도, ‘이명박 대세론’과 박근혜의 두터운 고정표 속에서 이렇다 할 당내 지지 기반이 없는 손 전 지사가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손 전 지사는 민심대장정 이후 좀처럼 지지율 5% 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답답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 돌파구로 ‘탈당설’이 솔솔 부는 측면이 크다. ‘햇볕정책 지지’ ‘부동산 정책’ ‘정체성’ 등 한나라당의 주류와 크게 다른 그의 ‘센 발언’들도 탈당설의 실현 가능성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차기는 없다’는 이 비서팀장의 발언은 ‘탈당설’이 더 이상 ‘설’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조로 볼 수 있기에, 그냥 흘러 넘기기 어렵다. 탈당 논리로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보좌관은 노무현 후보를 지원하면서 차기를 꿈꿨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예를 들며, “지금은 3김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차기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인물 중심의 ‘보스 정치’가 통하는 시대가 아니라, 정치인의 비전이 시대정신과 맞아야 대업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손학규 전 지사가 와의 인터뷰(3월2일)에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그 시대를 노무현이 대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비서팀장은 “이승엽이 홈런왕이 될 수 있는 시기가 있듯이, 손 전 지사도 지금이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시대정신과 부합하기 때문에 이번에 대통령직을 가장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이 ‘적기’란 말은 다음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문제는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에 있는 한 구조적으로 ‘대통령의 꿈’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손 전 지사의 또 다른 참모는 “우리가 아무리 잘 해도 한나라당 내에 있으면 10% 지지율을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이미지를 가진 손 전 지사를 좋아하지 않는 반면, 반한나라당 세력들도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에 머물러 있는 한 손 전 지사를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느 쪽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까닭에 지지율이 낮다. 그래서 탈당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부산을 지역구로 하는 한나라당 의원의 한 보좌관은 “손 전 지사 캠프 내에서 당을 나가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중도개혁 세력이 출범하면 한나라당 정체성을 수구정당으로 몰아가면서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 나가서 이길 길 없다”

그러나 지금의 한나라당 구도에서 손 전 지사가 경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손 지사의 탈당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캠프 내 대다수 참모들이 탈당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수원 공보실장은 “저쪽(범여권)에서 판을 깔아준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경쟁력 있는 가정이 아니다. (당을) 나가서 이길 길이 없다”며 탈당설을 일축했다. 정문헌 의원도 “우리가 먼저 당을 깨는 일은 없고, 지더라도 깨끗하게 승복해야 한다”며 탈당설을 완강히 부인했다. 김성식 정무특보는 “여권 인사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계산에서 손 전 지사를 거론하는 것이지, 솔직히 손 전 지사에게 마음을 줄 뜻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탈당설’을 손 전 지사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캠프 쪽의 전략으로 해석했다. 정치 컨설팅 업체인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범여권의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 캠프 내에서 국회의원을 꿈꾸는 사람들이 탈당을 반대할 것이고, 승산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실제로 움직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어려운 손 전 지사가 여권 후보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부각시켜 판을 흔들고 숨통을 틔우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차기를 염두에 두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포석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캠프의 정책을 돕는 한 학자는 “지금 구도에서는 경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현실과 손 전 지사의 가치는 한나라당에 있을 때 더 빛난다는 것이 딜레마”라고 말했다. 당에 남자니 경선에서 이길 수 없고 당 밖으로 나가자니 명분이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손학규 캠프의 답답한 현실을 반영하는 말이다. 그는 또 “현재로서 최선의 방법은 당 안에 있으면서 당에서 나간 것과 같은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험부담은 최소화하면서 몸값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손 전 지사의 최근 강도 높은 발언도, 참모들의 탈당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당분간 손 전 지사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한나라당과의 ‘차별화’ 전략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잔인한 ‘선택의 3월’ 될 듯

그러나 ‘당 안에 있으면서 나간 것과 같은’ 애매모호한 상황만 연출하기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나라당 경선 후보 등록은 빠르면 3월 말에서 4월 초에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 달 내에 손 전 지사는 정치인으로서 운명을 선택해야 한다. 당에 남아 ‘차기가 없다’는 정치판에서 ‘차기’를 창조해나가든지,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서 탈당을 한 뒤 황무지 같은 범여권을 개척하든지.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러나 어느 쪽도 승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선택의 3월’은 손 전 지사에게 잔인한 달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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