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잇달아 사표내고 민간·공공기관 사장 공모에 도전하는 고위 관료들…‘퇴직 후 2년 이내 재취업 제한’한 공직자윤리법엔 단서 조항 주렁주렁</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재정경제부 박병원 제1차관이 지난 2월6일 마감된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에 응모했다. 물론 차관직 사표를 냈다. 박 차관은 퇴임사에서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었으면 그 자체가 큰 보람인 만큼 물러서야 한다는 공성신퇴(功成身退)를 좌우명으로 삼아왔다”고 밝혔다. 우리금융 회장추천위원회는 2월 말에 회장 후보를 선정할 예정인데, 황영기 현 회장과 박 차관의 양파전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박 차관이 과거의 관행처럼 회장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금융계에서는 “낙하산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많아서 겉으로 회장·사장 공모제를 갖춰 여러 사람을 후보로 데려다 경쟁하는 외양을 띠지만 결과적으로 현직 고위 공직자가 선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취업확인·승인 필요시엔 ‘특별한 사유’
이틀 뒤인 8일 이원걸 산업자원부 제2차관은 한국전력 사장 공모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차관 역시 유력한 사장 후보로 꼽히고 있다. 재경부 유재한 정책홍보관리실장도 7일 사표를 내고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에 도전장을 냈다. 이처럼 고위 경제관료들이 대거 사표를 던지며 민간 또는 공공기관 사장 공모직에 도전하고 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고위 공직자는 퇴직일로부터 2년 동안은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정 규모(자본금 50억원 이상, 외형 매출 연간 150억원 이상) 이상의 영리사기업체 또는 민간 법인·단체(협회)에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퇴직 뒤 부적절한 영향력 행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다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단서 조항을 달고 있다. 즉, 퇴직 뒤 2년 이내에 영리사기업체에 재취업하려면, 밀접한 직무 관련성이 없어서 취업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취업확인’을 받거나, 비록 직무 관련성이 있더라도 특별한 예외 사유에 해당한다는 ‘취업승인’을 받아야 한다. 물론 정부투자·출연기관 등 산하기관(이른바 ‘공직유관단체’)에 취업할 때는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 결국 박 차관은 민간 금융기관에 재취업하려는 것이므로 공직자윤리위로부터 취업확인 혹은 취업승인을 받아야 하는 반면 이 차관, 유 실장은 공직자윤리법과 상관없이 재취업할 수 있다.
재경부 감사관실 쪽은 “우리금융지주 회장 공모에 나선 박 차관의 경우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행정자치부에 설치된 공직자윤리위에 취업승인 의견서를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직자윤리위는 민간위원 5명, 정부위원 4명(차관급)으로 구성되는데 22일 심의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재경부 의견서에는 “비록 업무 관련성은 있지만 ‘특별한 사유’에 해당하므로 취업을 승인해주는 게 적절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다. 취업승인은 업무 관련성이 있어도 ‘퇴직 후 2년 이내 취업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데, ‘특별한 사유’가 인정될 경우에만 허용된다. 그 사유는 △국가 안보상의 이유 또는 국가의 대외 경쟁력 강화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취업이 필요한 경우 △직제와 정원의 개폐 또는 예산의 감소 등으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면직된 경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출자·재출자하는 영리사기업체의 경영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경우 등이다. 행자부 공직윤리팀 관계자는 “박 차관의 경우 특별한 사유 가운데 ‘국가 또는 지자체가 출자·재출자하는 영리사기업체의 경영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판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모호한 윤리법 vs 뚜렷한 권리 주장
여기까지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듯, 공직자윤리법의 ‘퇴직 후 2년 이내 재취업 제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퇴직 고위 공직자가 즉각 재취업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산하·공공기관은 공직유관단체(정부투자기관 총 14개, 지방공사 및 지방공단, 정부 또는 지자체 출연·보조를 받는 기관·단체 총 150개, 임원을 중앙 또는 지자체장이 선임·승인하는 기관·단체 총 181개)라는 이름으로 아예 취업 제한 대상에서 제외되고, 민간기업도 자본금 50억원 이상(행자부가 공고한, 취업이 제한되는 영리사기업체는 지난해 말 현재 2919개)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특히 공직자윤리법은 아예 ‘업무 관련성 적용에 있어서 퇴직 공직자의 자유와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뚜렷이(?) 밝히고 있다. 게다가 공무원 직제와 정원의 개편 등으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퇴직한 경우는 업무 관련성 여부를 따질 필요 없이 재취업을 승인해주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런 수많은 예외 조항과 함께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기에 실제로 취업 제한 조처를 받은 퇴직 공직자는 미미하다.
참여연대가 2001∼2006년에 퇴직한 경제관료(4급 이상)들의 재취업 현황을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283명 중 243명이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243명 중 중복 재취업한 경우를 개별 취업자로 반영하면 재취업자는 총 289명이 되는데, 이들 중 무려 274명이 퇴직 뒤 2년 이내에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연 퇴직 고위 경제관료들은 자신이 맡았던 직무와 관련성이 전혀 없는 일자리에 금방 재취업하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일까? 이종걸 열린우리당 의원이 행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9월까지 사기업체와 민간협회 취업을 위해 공직자윤리위에서 심사를 받은 퇴직 공직자는 모두 90명인데, 이 중 단 1명만 취업불가 판정을 받았을 뿐 모두 재취업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49명은 퇴직한 뒤 1개월 이내에, 32명은 퇴직 뒤 5일 이내에 재취업했다. 참여연대 변금선 간사는 “일자리를 보장받으려는 고위 퇴직 관료와 이런 관료를 영입해 이권을 챙기려는 민간 기업의 이해가 맞물리면서 퇴직 관료의 재취업이 일반화되고 있다”며 “퇴직 전에는 ‘감독대상’이지만 퇴직하면서는 ‘취업대상’으로 바뀌면서 고위 공직자와 기업 간에 부적절한 유착이 이뤄지고 정책 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퇴직->산하기관->민간기업’의 법칙?
흥미로운 건 퇴직한 고위 공직자가 일단 공직 유관단체(산하기관과 국책은행 등)를 거친 뒤 또다시 민간기업에 재취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공직 유관단체의 고위 임직원도 2년 이내 취업 제한 규정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일단 정부 부처를 떠나 공공기관을 거치면 직무 관련성을 걸러내기 쉽지 않다. 일종의 직무 관련성 ‘세탁’이 이뤄져 2년 이내라도 민간기업으로 옮겨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른바 경제관료의 ‘퇴직불패’다. 재경부 부이사관을 지낸 김아무개씨는 지난 2000년 퇴직하자마자 한국자산관리공사 이사로 갔다가 2003년 현대캐피탈 고문으로 옮겼다.
공직자윤리법은 취업 개시 15일 전까지 공직자윤리위에 취업확인 또는 취업승인을 요청해야 하는데,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우선 취업한 뒤 취업일로부터 15일 이내에 요청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물론 우선 취업하더라도 나중에 취업불가 판정이 내려지면 공직자윤리위가 재직하고 있는 기업에 해임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기업은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내면 해임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취업불가 판정이 나오면 이에 불복해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낸 뒤 확정판결까지 2년 이상 끄는 재취업 관료도 있다. 여전히 해당 기업에 재직하면서 월급을 받고, 소송이 끝날 때면 취업 제한 2년이 이미 지나버린다. 행자부 관계자는 “취업불가 판정이 적법한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나더라도 소급 적용하기도 어렵고 2년이 경과하면 실익이 없어지고 만다”고 말했다.
퇴직 관료의 재취업은 직업 선택의 자유나 전문인력 활용이란 측면에서 이해될 수도 있고, 퇴직 뒤 재취업은 그 사람에게 능력이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변금선 간사는 “공인인 관료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일자리 챙기기’라는 사적 이득을 취하는 데 활용해서는 안 된다. 국민 대다수가 실업과 조기퇴직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고위 퇴직 관료들의 재취업은 국민의 신뢰를 잃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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