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예선이 곧 결선” 자신만만한 한나라당이 떠올리기 싫은 97년의 대선 악몽…두 캠프가 경선에 ‘올인’하면서 자칫 함께 가기 어려운 파국을 맞을 수도</font>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해 12월29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고급 중식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경기지사, 원희룡 의원 등 한나라당의 대선 주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자리를 마련한 강재섭 대표가 먼저 입을 뗐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경선 과정에서 갈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다. 어떤 경우에도 아름다운 경선을 해, 이에 승복하고 분열이 없도록 다짐해달라.” 이날 당 지도부와 대선 주자들의 공식 간담회는 ‘정권 교체 다짐’이 아닌 ‘대선 주자들의 경선 승복 다짐’의 자리로 비쳤다.
한 달 뒤 1월24일 당 상임고문단 오찬에서도 같은 얘기가 나왔다. 김수한 상임고문단 대표는 “최선의 공약은 후보 경선 과정에서 절도와 금도를 지켜나감과 동시에 경선 승복을 천명하는 것”이라며 대선 주자들에게 “확실한 다짐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며칠 뒤 인명진 당 윤리위원장은 “(주자들이) 당과 국민을 생각한다면 좀더 명확하고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며 상임고문단과의 오찬에서 후보들이 보인 태도가 뭔가 개운치 않은 듯 말했다.
“경선 승복 확실히 해주오”
한나라당이 대세론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 뭐가 그리 불안하기에, 강재섭·김수한 대표까지 나서서 대선 주자들로부터 경선 승복 ‘서약서’를 받으려는 걸까? 언뜻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명박·박근혜·손학규 세 후보의 지지율을 단순 합산하면 80%(한국사회여론연구소 2월6일치 조사)에 이르고, 정당 지지율도 47%에 달한다. 지금 시점에서, 이번 대선이 ‘한나라당의, 한나라당에 의한, 한나라당을 위한’ 대선이 될 거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물론 범여권 진영이 재편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물이 떠오르고, 대선이 크게 봐서 한나라당과 반한나라당(또는 비한나라당)의 구도로 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 밖의 변수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좀 먼 일이다.
당장 경선을 앞둔 한나라당의 가장 큰 근심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안’의 걱정거리는 어느 한 후보, 대선 후보군의 1, 2위를 다투는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가 당을 뛰쳐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월9일 개헌 발의 카드를 던져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한나라당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국회가 개헌안을 부결시킬 경우 대통령이 중도 사퇴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렇게 되면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을 해야 하고, 이명박과 박근혜 두 후보가 경선 없이 독자 출마하면서 당이 결국 패배할 거라는 불길한 얘기들이 당 안팎을 떠돌아다녔다.
한나라당의 이같은 불안 심리를 이해하려면 우선 1997년 대선을 봐야 한다. 당시 이인제 후보는 신한국당(현 한나라당)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한 뒤 독자 후보로 나서 492만 표를 얻었다. 한나라당은 이인제 때문에 이회창(993만 표)이 떨어지고, 김대중(1032만 표)이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박 전 대표나 이 전 시장이 당을 깨면 97년의 패배가 재연될 수 있다는 ‘97년 학습효과’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고 있다. 지금은 이인제 의원처럼 경선 불복 뒤 대선 출마는 불가능하다. 바뀐 선거법이 “정당이 당내 경선을 실시하는 경우 경선 후보자로서 당해 정당의 후보자로 선출되지 아니한 자는, 당해 선거의 같은 선거구에서는 후보자로 등록될 수 없다”(57조 2항)고 못박아놨기 때문이다.
“경선 조기 과열은 정권 교체의 독약”
하지만 아예 경선에 불참할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박근혜 전 대표가 “국민이 당에 거는 기대를 어기고, 딴생각을 할 수 있는 후보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사람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문제”(2006년 11월21일)라고 말하고, 이명박 전 시장은 “누가 후보가 되느냐보다는 당이 정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2006년 10월1일)고 말했지만, 당내에서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 밖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1월28일 미디어리서치가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1.6%가 “경선 전에 갈라서 각각 출마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44.5%가 두 사람이 독자 출마할 거라고 내다봤다.
대중들마저 왜 이렇게 보는 걸까? 97년의 학습효과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말을 들어보자. “각 후보들이 전국을 돌면 조직이 거대해지고, 후보가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없다. 새 정당을 만들 만한 인적 자원을 갖고 있으면 정당을 하나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는 ‘한나라당 대세론’과 함께 ‘후보 분열’을 당의 정권 교체에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누구도 쉽게 후보가 분열할 거라고 얘기할 수 없지만, 동시에 후보 분열이 100% 없을 거라고 자신할 수도 없는 복잡한 현실을 보여준다.
“예선이 곧 본선이다.” 한나라당 안팎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경선을 통과하면 대선은 이긴 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그래서 강재섭 대표가 “경선 열기가 조기에 과열되는 것은 오히려 정권 교체의 독약이 될 수 있다”고 경고음을 내지만,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은 본선에 앞서 1차 관문인 경선에 ‘올인’했다. 경선 시기와 방식을 둘러싼 긴 싸움은 ‘검증 논란’과 ‘정체성 논쟁’까지 겹치면서 감정적 앙금까지 싹텄다. 경쟁자로서 두 사람의 대립과 갈등은 불가피하겠지만, 점점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둘의 관계가 대선 조기 과열로 자칫 함께 가기 어려운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의 경쟁으로 인한 대립과 갈등, 반목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이른바 ‘이명박계’로 분류돼온 이재오·김문수·홍준표 의원은 ‘반박’(반박근혜)으로 찍혀 2004년부터 비주류로 지내왔다. 2005년 당 혁신위에서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문제에서부터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리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박근혜가 대표를 지낸 200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상당 기간 ‘박근혜 대세론’이 당을 지배했다.
그의 대표 임기 끝 무렵인 2006년 1월 이재오가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리전을 거쳐, 원내대표가 되면서부터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보수화로 치닫던 당내 주류, 즉 박근혜에 대한 견제 심리가 이명박의 지지기반을 넓혔다. 물론 청계천 효과로 이 전 시장이 고건 전 총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지지율 1, 2위를 다툴 만큼 정치적으로 부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김무성 의원은 그즈음 “이명박 세력이 득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5·31 지방선거에선 오세훈 전 의원이 이 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지원 속에 당내 경선을 통과한 뒤 시장에 당선됐다. 이명박 대세론이었다. 하지만 5·31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박근혜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다시 보여줬다. 7·11 전당대회에서 대리전으로 치러진 당 대표 경선에서 이명박에 완승했다. 대표에서 물러난 뒤 사정은 또 달라져, 이명박이 지지율 40~50%로 대세론을 만들어가는 동안 박근혜는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찾지 못했다. 경선은 짧으면 4개월, 길게는 7개월 내에 실시될 것이다. 이제 박근혜가 조급한 처지가 됐다.
이제껏 대리인을 통한 갈등이 둘의 직접적인 갈등으로 표출된 것은 최근에 검증론이 나오면서다. 정책에 대한 견해가 확연히 갈렸던 것은 기껏해야 2004년 이명박 서울시장이 박근혜 대표보다 행정수도 이전에 좀더 강경하고 근본적인 태도를 취했을 때, 단 한 번뿐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1월15일 “후보가 당의 이념, 정책, 노선과 맞는지 당에서 당연히 검증해야 한다”며 검증론을 들고 나왔고, 이 전 시장이 “후보 간 검증은 정치공세”라고 되받아치면서, 양쪽 캠프는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박근혜 캠프의 한 참모는 박 전 대표의 ‘검증’ 및 ‘정체성’ 등 강경 보수 발언엔 “2인자로서 좀더 우리의 존재를 나타낼 수 있는 전략의 일환이자, 당내 지지율의 하락과 이탈하는 당내 지지세력을 붙들려는 두 가지의 절박함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검증론에서 박 캠프가 얻는 것
짧게 보면 검증론을 제기한 박근혜가 얻은 게 많다. 경선 준비 기구인 ‘2007 국민승리위원회’는 결과적으로 박 전 대표 쪽의 요구를 받아들여 별도의 후보 검증 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당이 이명박 대세론으로 급격히 쏠리는 것을 차단한 효과가 크다. 이 전 시장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박 전 대표 입장에선 당심을 머뭇거리게 만든 긍정적 효과를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캠프 관계자들을 사석에서 만나면 거의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이 하나 있다. “이명박?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 거의 주술처럼 말한다. 박 전 대표가 검증론을 공격적으로 제기해 주도해나가고, 이 전 시장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이 전 시장이 약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박형준 의원은 “이회창 전 총재는 청렴한 ‘대쪽’ 이미지였기 때문에 반대되는 팩트(사실)들이 나오면 하루아침에 50%에서 20%로 지지율이 추락했지만, 대쪽 이미지가 아닌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인 이 전 시장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심’과 ‘민심’의 큰 괴리도 한나라당의 경선 구도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은 최근 평균 45%를 웃도는 지지율을 보인다. 박 전 대표는 평균 20%에 불과하다. 거의 배 차이다. 하지만 당심은 딴판이다. 지난해 10월 이미 대세론을 형성한 이 전 시장은 한길리서치가 대의원 82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5%의 지지율을 얻어, 37%를 얻은 박 전 대표에 뒤졌다. 앞서 7·11 전당대회 직전엔 27.5%로 박 전 대표(51.8%)에 거의 배 차이로 밀렸다. 이 전 시장 쪽은 최근에야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자체 조사에서 46% 대 38%로 박 전 대표에 앞섰다고 주장했다. 이런 당심과 민심의 괴리에 대해, 이 전 시장에 가까운 이성권 의원은 “일반 당원의 70%가 옛 민정당 출신으로 보수 성향인데다 대의원은 특히 더 그렇다”고 말했다.
당심과 민심의 큰 괴리
당심이 결국 민심을 따라가는 추세를 보이긴 하겠지만 시차가 있다. 대표를 맡아 2년 넘게 당권을 틀어쥐었던 박근혜는 일찍부터 당심을 잡고 있었고, 이는 지금의 불리한 국면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박 전 대표의 경선 전략은 본선 전략과 다를 수 있다. 이 전 시장의 기획 분야를 맡고 있는 권택기씨는 “본선과 경선 전략을 달리 가져가는 것은 실수”라고 강조했지만, 현실적으로 박 캠프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박근혜 캠프의 이진우 보좌역(전 편집국장)은 “경선과 본선 전략이 궤를 같이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박 전 대표가) 보수 이미지가 강한데 이를 중도로 가져가야 한다. 하지만 경선 때까지는 중도 이미지를 강조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당심에 초점을 맞춘 경선전략을 펴나겠다는 것이다.
2월7일 여의도 엔빅스 빌딩 5층에 위치한 박근혜 캠프는 비교적 한산했다. 반면 종로구 견지동 서흥빌딩 11층의 안국포럼(이명박 캠프)은 이 전 시장을 만나려는 인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명박 대세론을 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명박이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가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선에서 누가 웃을지 모를 일이다. 그에 앞서 두 사람이 경선 무대에 같이 오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지금은 치열한 투쟁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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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심’인가 ‘민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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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큰 격차로 지지율 1위를 달린다고 해서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100%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대선 후보를 뽑기로 한 열린우리당의 경우 여론조사와 당의 경선 결과가 거의 일치할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당원 및 대의원과 일반 국민의 참여 비율이 50 대 50이다. 열린우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당심’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02년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를 뽑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참여 폭은 여론조사란 방법을 통한 20%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제란 경선 방식에 자극받은 것이다. 하지만 2002년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당 안팎의 여론에 밀려 2004~2006년 당 혁신위의 논의 등을 거쳐 일반 국민의 참여 폭을 더 넓혔다. 구체적인 비율은 2(대의원 투표) : 3(당원 투표) : 3(일반 국민 투표) : 2(일반 국민 여론조사)로 정해졌다. 경선 시기는 대선 180일 전으로 못박았다. 전국선거인단의 전체 수는 여전히 5만 명에 묶여 있다.
2002년처럼 또다시 외부의 자극이 왔다. 여권이 완전국민경선제를 하면서 한나라당에서도 국민의 참여 폭을 넓히거나, 현재의 비율은 유지하더라도 전체 선거인단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명박 캠프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은 지난해 말 ‘전당원 + 국민 + 여론조사’로 경선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선거인단 규모를 최소 100만 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오 의원은 “전 당원과 더 많은 국민이 경선에 참여해야 정당정치의 취지도 살릴 수 있고 민의 수렴 확대라는 시대 흐름도 반영할 수 있다”며 “대선 후보에 의한 당원 줄세우기나 상대 정당의 ‘역투표’(방해 공작) 가능성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정성도 있는 주장이다. 여권은 많게는 수백만 명을 동원한 이벤트를 펼치는데 한나라당은 고작 체육관에서 후보를 뽑는다면 국민적 관심을 덜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캠프는 또 경선이 예정대로 6월 이전에 치러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늦췄을 경우 자칫 과열 경쟁의 장기화로 후보 분열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이 전 시장이 당원 및 대의원 지지율에서 박근혜 전 대표에게 밀리거나 비슷하게 나오기 때문에 전체 선거인단의 구성을 좀더 유리한 쪽으로 바꾸려는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투표인단 수가 늘어나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로 거의 수렴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박근혜 캠프의 계산은 다르다. 박 전 대표는 “개개인의 사정이나 유불리에 따라 (경선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당원 및 대의원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확보한 상황에서 기득권을 순순히 포기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박 캠프에서도 경선 시기를 좀더 늦출 필요가 있다는 요구는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도 “상대편 후보가 누구인지 정해지고 나서 그에 필적할 경쟁력 있는 후보를 뽑는 게 맞다”는 순수한 의도가 있다. 하지만 현재 이 전 시장과의 격차가 큰 만큼 지지율의 간극을 좁힐 시간을 좀더 벌어야 한다는 필요성도 반영돼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경선의 시기와 방법을 조정할 당의 경선준비기구는 오는 3월10일 안으로 결론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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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의 ‘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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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하여 증명함.” 검증은 객관적 중립적 용어다.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어떤 맥락으로 쓰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나라당에선 검증은 대선과 관련해 상당히 복잡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김대업(이회창 전 총재의 아들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한 인물) 같은 사람 10명이 나오더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당선될 사람을 한나라당 후보로 내야 하지 않냐”(박근혜)는 말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모두가 공감했다.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리다가 두 번이나 낙마한 이회창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교훈 때문이다.
하지만 경선을 앞두고 이명박 전 시장과 경쟁관계에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입에서 ‘검증’이란 말이 나온 것은 다른 의도를 내포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래서 당 안팎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이 전 시장이 “정치 공세”라고 무시했지만, 박 전 대표는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예방주사나 백신을 맞는 기분으로 미리 우리가 자체적으로 거를 것은 거르고 의문점이나 궁금한 것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정두언 의원은 지난해 8월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명박에 관한 7가지 거짓말’이란 글을 올렸다. 아들 병역 문제를 비롯해 △재산 형성 과정 △종교적 편향 △숨겨진 자식 등에 관한 내용들이다. 의혹에 대한 답변은 누가 요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인터넷이란 공간과 풍문을 통해 이 전 시장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들이 확산돼 곤혹스러운 처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는 지난 2월호에서 “이명박 대세론의 뇌관 ‘X파일’ 관련 철저 검증”이라는 표지 기사를 내보냈다. 출생지 논란부터 △이름(창씨개명) △선거법 위반 △청계천 복원 등 20여 건의 의혹을 따져보는 식이었다. 올 초 인터넷 포털에서 이 전 시장의 출생지가 일본 오사카나 경북 포항으로 등록돼 있던 것이 모두 삭제돼 그 배경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박근혜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의 약점을 23가지 정도 갖고 있다. 박근혜가 잘나서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라, 이명박이 약점이 너무 많아서 이명박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캠프는 의혹 제기에 맞설 대응팀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의혹이 있다는 설만 있지 아직 사실로 다툴 만큼 크게 문제될 만한 의혹이 제기된 것은 없다. 검증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의혹을 제기하는 ‘네거티브’(부정적) 방식은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는 검증으로부터 자유로운가? 2월5일 당 홈페이지에 ‘박근혜 의원과 당 지도부는 유승민을 격리하라’는 제목의 A4용지 8장짜리 문서가 떴다. 인천시에 사는 이아무개씨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고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등 박 전 대표의 사생활과 관련된 갖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이같은 질 낮은 문서들은 여의도 정치권에서 입에서 입을 타고 떠돌다가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인터넷에서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갖가지 의혹으로 얼룩진 검증은 아직 누구에게 독이 될지 모른다. 둘 다에게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68.6%가 검증에 대해 “국민들이 후보를 제대로 알기 위한 것이므로 찬성한다”고 답했다. 또 검증이 본격화하면 이명박(20.6%)보다 박근혜(24.3%)가 되레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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