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잘 기억 안난다”며 진술 바꿔 새 국면 맞은 석궁 사건…정치권·시민단체의 진상 규명과 구명 운동도 활발해질 조짐 보여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2년 전 이른 봄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는 미국에서의 유랑 생활을 접고 서울에 왔다. 오로지 2심 재판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김 전 교수가 법원의 항소 기각에 이은 ‘석궁 사건’으로 ‘수의’를 입고 있다. 그것도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경찰의 조사 결과에 따라 ‘살인미수’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런데 피해자인 박홍우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에서 “사건 당시의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을 바꾸면서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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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진술번복에 당황한 검찰
지난 2월2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성동구치소 면회실에서 만난 김 전 교수에게서는 8일 동안의 단식 후유증을 찾을 수 없었다. 김 전 교수는 자신이 쓴 ‘대법원의 재임용법 해석의 문제점’ 등의 책자와 서류 뭉치를 책상에 놓고 있었다. 주심 판사가 일독을 권했던 판결문을 읽은 소감을 묻자 “법원을 믿은 게 아니라 법을 믿었을 뿐이다. 주심 판사가 이달로 예정된 법관 심사를 앞두고 ‘재임용과 판결문을 바꾼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성균관대의 근거 없는 주장들은 전부 인정하고, 내가 주장한 것은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 동부지검은 2월2일까지로 예정됐던 20일(경찰 10일 포함)의 구속 기간을 10일 더 연장했다. 지난 1월29일까지 이뤄진 검찰 조사에서 살해 의도를 추궁받자, 김 전 교수는 “석궁의 관통력과 상처를 다시 살펴보라. 1.5m 거리에서 석궁을 쏘았다면 박 판사의 상처는 훨씬 깊어야 한다”고 반박했다고 밝혔다. “석궁을 조준하고 쏘지 않았고 박 부장판사에게 활을 잡혀 밀고 당기는 도중 우발적으로 발사됐다”는 초기 진술을 검찰에서 되풀이했다는 얘기다. 검찰이 제시한 현장 검증 사진에 대해서는 “사진을 계단 위에서 아래로 찍어 화살이 구부러진 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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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런 김 전 교수의 진술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보다는 두 차례에 걸친 경찰 조사에서 박 부장판사가 “김 전 교수가 아파트 안에서 기다리다 날 보자마자 석궁을 겨눈 뒤 쐈다”는 진술에 의지해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그런데 박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에서 “보자마자 겨눴는지, 어떻게 석궁에 맞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초기 진술을 뒤집자 당황해하고 있다. 석궁 사건을 수사한 서울 송파경찰서 조사과 이정기 강력2팀장은 “사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영장을 청구했다. 그런데 피해자가 진술을 바꿔 의아해하고 있다. 초기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면 지휘부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건 진상 규명에 국회가 나서야”
이에 따라 검찰은 살인 의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살인미수 혐의와 상해 혐의를 놓고 기소가 미뤄지고 있는 셈이다. 일단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의 진술 번복으로 석궁 사건의 실체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교수지위 확인소송’의 대법원 상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소송대리인을 통해 상고장을 제출한 김 전 교수는 “‘대법원장의 허위 공문서 작성 사건’(재임용법 해석 판례 변경 관련)의 실체를 밝히는 데 주력하려고 한다. 그것만 제대로 밝혀내면 대학에서 쫓겨난 교수들이 ‘해직교수구제특별법’ 같은 임시방편식 법률에 따르지 않고도 강단에 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의 김 전 교수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구명 운동이 활발히 벌어질 조짐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속한 임종인 의원(무소속)은 지난 1월25일 법제사법위원장 앞으로 ‘김명호 교수 관련 진상조사 소위원회’ 구성 제안서를 보냈고, ‘김명호 교수 구명운동’ 인터넷 카페(cafe.daum.net/henrythegreatgod) 회원들은 지난 4일 서울대 기숙사 글로벌하우스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김세균 상임공동의장)는 “‘김명호 교수 구명과 부당해직 교수 복직 및 법원과 대학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가칭) 발족을 위한 시민단체 대표자회의를 2월7일 문화연대 사무실에서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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