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부족분은 적어도 100만~200만 톤… 300만 명 아사한 1996~98년보다 심각할수도…2006년 남한은 약속했던 쌀의 5분의 1만 지원, 남북협력기금 예산액은 1500억원 삭감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2006년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12월28일 서울의 온도계가 영하 9도를 가리켰다. 반도 북쪽은 더 추웠다. 자강도 도청 소재지인 강계시는 이날 영하 24도까지 떨어졌다. 5천 년의 한 역사를 지녔다는 한반도에서 북쪽은 지리적으로 더 춥고 배고픈 계절을 보내야 할 때가 많았다.
“북한의 식량 위기는 매우 분명하다. 그런데도 북핵 등 정치, 군사적 이슈에 매달려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을 외면한다면 1995~98년의 대량 아사보다 더 심한 참사를 빚을 수도 있다….” 12월26일 북한 식량 위기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 토론회가 열린 자리에서 사단법인 ‘좋은 벗들’의 이사장 법륜 스님이 한 말은 토론이 아닌 호소였다. 북쪽 주민들이 이번 겨울을 어느 때보다 힘겹게 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쪽 사회에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날 토론회의 제목은 ‘북한의 대량 아사, 다시 오는가?’였다.
미사일, 핵, 홍수, 가뭄…
북한의 식량 위기는 사실 새삼스러운 뉴스가 아니다. 북한은 90년대 중반 이후 농업 생산력 저하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그나마 근근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깥의 지원이 있어서다. 하지만 2006년 나라 안팎에서 엄청난 변수가 생겼다. 가장 큰 변수는 외부의 식량 지원에 빨간 등이 켜진 것이다. 7월 미사일 실험 발사와 10월 핵실험은 대북 인도적 지원에도 커다란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내부적으로는 여름철 홍수와 가을철 가뭄으로 식량 생산량이 감소했다.
크게 이 세 가지는 2007년 북한의 대량 아사 위기를 경고하는 설득력 있는 근거들이다. 유엔기구들도 북한의 식량 위기가 임박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1995년부터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온 세계식량계획(WFP)의 사이먼 플루에스 대변인은 12월22일 뉴스 브리핑을 통해 “상황이 정말로 위급하다”고 말했다.
‘도대체 북한의 식량 사정이 어떻기에?’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는 2006년 11월 ‘곡물 전망과 식량 상황’이란 보고서에서 다른 나라들과 달리 북한의 2006년 생산량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진 않았지만, “전년에 비해서 낮을 것으로 평가된다. 2006~2007년 상업적 수입과 식량 지원을 포함한 총 곡물 수입량이 적어도 100만t 이상이 돼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식량 부족분이 최소 100만t 이상이라는 얘기다. 생산량이 떨어진 것은 경제 봉쇄와 홍수를 큰 원인으로 꼽았다.
결론에서 국내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농촌진흥청은 12월22일 “2006년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전년도에 비해 1.3%(6만t) 감소한 448만t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농촌진흥청은 생산량 감소가 북한의 작물 생육 기간(4~9월) 중 강우량이 521mm로 평년(902mm)보다 42% 적었고, 주요 식량 자원으로 집중 재배되는 서류(감자·고구마·토란 등)가 7월 산간 지역에 내린 집중폭우로 습해와 역병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북한의 곡물 생산량 감소만을 얘기하고 부족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농촌진흥청의 추청치를 놓고 봤을 때, 최소 소요량(520만t) 기준으로 90만~100만t이 부족할 것”으로 북한의 2007년 식량 수급을 전망했다. 최소 소요량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1인당 1일 섭취량인 2130㎈의 75%인 1600㎈를 말한다. 따라서 권장 칼로리를 기준으로 삼는 정상 소요량으로 치면 650만t이 필요하고, 170만~190만t이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장 큰손이었던 미국의 지원 ‘0’
북한의 식량 사정을 가장 비관적으로 보는 ‘좋은 벗들’이 최근 추산한 2006년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280만t에 불과하다. ‘좋은 벗들’은 여기에 중국으로부터 20만t, WFP의 7만5천t을 합해도 총 공급량은 307만5천t에 그친다고 분석했다. 법륜 스님은 “1996~98년 당시에도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250만~280만t 정도였고, 외부에서의 수입과 지원 곡물을 포함해 350만t 이상의 식량이 공급되었는데도 300만 명 이상의 아사자가 나왔다”며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더 심각한 식량 부족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북 인도적 지원 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는 ‘좋은 벗들’보다 조금 많은 350만t으로 생산량을 추정했다. 나라 안팎의 대북 전문가나 지원단체에 따라 북한의 곡물 생산량과 부족분을 계산하는 방식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2007년 식량 부족분은 최소 소요량으로 치더라도 대략 100만~200만t에 이를 것으로 종합할 수 있다.
북한으로선 외부의 지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처지다. 북한은 1995년 이후 남한을 포함해 외부한테서 연 평균 100만~200만t의 식량을 차관 또는 무상으로 도입해왔다. 하지만 북핵으로 조성된 외부 환경은 내부보다 더 나쁘면 나빴지, 좋을 게 없다. WFP가 2006년 5월부터 2008년 4월까지 1억달러를 모아 대북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PRRO)을 운용하겠다고 밝혔으나, 기부금은 2006년 2월26일 현재 15.8%밖에 모아지지 않았다.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1조7천억원을 낸 WFP의 가장 큰손 미국은 올 들어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북한의 핵실험 뒤 유엔의 대북 강경 제재를 외쳐온 일본도 마찬가지다. WFP는 2006년 10월26일 발표한 ‘긴급 보고서’에서 “가까운 미래에 새롭게 기부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2007년 1월 외부 지원에 심각한 차질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북한의 30개 지역에서 8개의 공장을 돌리며 190만 명을 지원하는 WFP의 프로그램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연합국제아동긴급기금(UNICEF)도 북한을 위한 2006년 모금 목표액 1120만달러의 절반도 채 거두지 못했다.
혼자서 외부 지원의 거의 절반을 맡아온 남한의 대북 인도적 지원의 정책 변화는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이다. 남쪽은 지난 9월까지 비료 35만t을 북쪽에 제공했지만, 쌀은 10만t 지원에 그쳤다. 북한이 요구했고 사실상 남한 당국이 약속한 50만t의 20%에 불과한 지원 규모다. 통일부가 WFP를 통해 옥수수 등 5만2천t을 지원하려던 계획도 대북 강경 분위기에 눌려 백지화됐다. 임종석 열린우리당 의원은 “겨울에 사람이 죽어나갈 판인데, 옥수수 보내는 것을 누가 반대하겠냐”며 “2006년 내에 하기로, 그것도 국제기구와 약속한 것이고 정부 당국이 북한에 직접 주는 것도 아닌 만큼 WFP를 통한 지원이라도 빨리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실험 뒤 대북 강경 분위기에 편승해 대북 사업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국회는 12월27일 새벽 4시에 2007년치 남북협력기금 예산액 중 1500억원을 삭감했다. 한나라당의 끈질긴 요구가 관철된 것이다. 애초 대북 인도적 지원 관련 예산 항목까지 손대지 않았으나, 최종 합의 과정에서 인도적 지원 항목 중 680억원이 감소됐다. 정부의 쌀 지원 예산 책정액은 1925억원에서 1565억원으로, 쌀 생산량을 좌우할 비료 지원액은 1400억원에서 1080억원으로 줄었다. 한나라당은 탈북자(새터민) 등 정치적 탄압으로 빚어지고 있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피를 토하듯 외치고 있지만, 배고픔에서 자유로워야 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소홀히 다루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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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희생양은 배급 후순위 주민
식량 위기는 지원 시기에 따른 영향도 크다. 2006년처럼 예산만 책정했다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대북 지원이 중단되거나 지연될 경우 위기가 확대될 수 있다. 이용선 우리민족서로돕기 사무총장은 “비료와 식량은 때가 있다. 죽고 나서 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늦어도 2월 안으로 남북 관계가 복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 식량을 지원하는데 남북 당국자들끼리 합의를 하더라도, 실제 북한 주민의 입으로 들어가는 데까진 몇 개월이 소요된다.
식량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식량 위기의 가장 큰 희생양은 어린이와 노인, 배급 후순위 주민 등 취약계층이다. UNICEF와 WFP가 2004년 10월 북한 9개 도의 6살 아래 어린이 48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려 나이에 맞지 않게 키가 왜소한 비율이 전체의 37%에 달했다.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구조적 식량 위기가 어린이들에게 집중되는 상황에서 또다시 위기가 찾아올 경우 이들이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일 것은 뻔하다.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배급제의 역할을 보완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장마당(시장)은 위기 상황에서 이같은 취약계층에 더 냉혹할 수 있다. 돈으로 작동되는 탓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상당수 주민들은 시장에서 식량을 직접 구입해왔으나, 최근 식량 원조나 수입이 줄어들면서 시장을 통한 식량 조달이 더욱 어려워졌다”며 “사회적 약자나 일반 주민들의 식량난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좋은 벗들’은 더 구체적으로 배급의 제일 후순위에 있으면서 식량 배급제 시스템에서 사실상 제외된 일반 주민 600만 명이 식량 가격이 폭등할 경우, 이들부터 대량 아사가 시작될 거라고 예상했다. 이들은 장사를 하지 못하거나 경작지가 없어 외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식량 문제의 취약계층으로서, 일반 기업소·노동자·교사·의사·서비스직 종사자들이다. 이 때문에 권태진 연구위원은 “같은 돈으로도 쌀과 옥수수를 병행하면 지원량을 늘릴 수 있고, 북한 주민들의 손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옥수수가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 손에 들어가는 데 옥수수가 효율적
북한의 식량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는데도 대북 인도적 지원이 준 것은, 인도적 지원이 미사일 발사와 북핵 등 정치적 논리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이용선 사무총장은 “식량은 그야말로 인도적 지원인데 우리가 식량 지원을 정치적 무기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 법륜 스님의 호소는 이렇게 이어진다. “북한 주민들도 인류의 일원으로서 생존의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어떤 이유로도 뺏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마땅히 보호되어야 한다.” 누구나 아는 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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