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매각 비리 중간 수사 결과 발표되었으나 의아스러운 대목 너무 많아…먹튀 막는 압수보전 신청 등도 기대난망… 가장 큰 이득 보는 투자자 조사해야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절기로 ‘대설’이었던 12월7일. 오전 10시에 조금 못 미쳐 서울 서초3동 대검찰청 15층 기자회견장에는 두툼한 책자가 무더기로 배포됐다. 100쪽에 이르는 책자의 표지에는 ‘외환은행 매각 비리 등 사건 중간 수사 결과-대검찰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변양호, 혐의와 대가 사이의 불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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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에 맞춰 나타난 박영수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발표문을 읽어내려갔다. “외환은행의 매각 과정에서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변양호와 외환은행장 이강원 등이 론스타 펀드 쪽과 유착되어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와 반하여, 절차와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의도적으로 외환은행 자산을 저평가하고 부실 규모는 부풀려 정상 가격보다 최소 3443억원, 최대 8252억원의 낮은 가격에 매각했고,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을 부당하게 낮추어 금융감독위원회로 하여금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하게 한 사실이 확인됐다.”
뒤이어 관련자들에 대한 후속 조처가 발표되고,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이 바통을 이어받아 1시간가량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순서를 이어갔다. 지난해 9월 투기자본감시센터의 고발이 올 3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고발로 이어지면서 증폭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로써 사실상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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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중수부에 ‘특별전담팀’을 별도로 편성해 미진한 부분에 대한 수사를 계속한다고 밝혔지만, ‘몸통 변양호, 주범 이강원’이라는 수사 결과의 큰 틀은 바뀌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변양호 국장의 ‘윗선’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려온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론스타 펀드의 법률 자문사인 김&장법률사무소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론스타 펀드의 엘리스 쇼트 부회장, 스티븐 리 한국 대표, 마이클 톰슨 법률 고문 등 외국에 머물고 있는 론스타 쪽 핵심 인물들을 국내로 불러들일 길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번 검찰 수사 결과에서 가장 의아스러운 대목은 매각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된 변양호 국장의 ‘혐의’와 그에 상응하는 뇌물성 ‘대가’ 사이의 불균형이 너무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이다. 변 국장에 대한 혐의의 요점은 ‘론스타가 원하는 인수 가격에 맞춰 외환은행의 자산 평가 결과를 조작하도록 이강원에게 지시하고 BIS 비율 조작을 통해 무리하게 인수 자격을 부여해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위반(배임)했다’는 것이다. 변 국장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도와주는 대신 절친한 고교(경기고) 동문인 하종선 변호사(구속 기소)로부터 네 차례에 걸쳐 4174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는 게 검찰 쪽 주장이다. 거래 규모가 조 단위에 이르는 거대 은행을 사모펀드에 넘기는 과정을 진두지휘하면서 받은 것이라고 믿기에 4천여만원은 너무 적은 돈이 아닐까?
외환은행 400억원 투자의 수수께끼
검찰 주장에 따르면 변 국장이 받은 대가가 더 있기는 하다. 검찰도 바로 여기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검찰은 “(변 국장이) 금융정책국장 재직 때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부정하게 도와주는 대가로 보고펀드(변 국장 주도로 지난해 설립된 사모펀드)에 400억원의 출자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보고펀드는 갑자기 설립된 신생 펀드인데, 거기에 ‘외국계 은행이 되는’ 외환은행이 4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라며 “대가성, 뇌물성이 명확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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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쪽 주장대로 보고펀드에 대한 외환은행의 출자액 400억원은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의문이 남는다. 보고펀드에는 외환은행을 비롯한 15개 기관이 5110억원을 출자했으며 외환은행보다 많은 돈을 넣은 금융기관들이 즐비하다는 점이다. 보고펀드에는 대한생명, 동양생명, 신한은행, 조흥은행, 하나은행이 각각 500억원을 출자했으며, 우리은행은 무려 700억원을 보고펀드에 넣었다. 외환은행의 400억원 출자가, 론스타의 인수를 부정하게 도와준 대가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아니면, 외환은행보다 많이 출자한 금융기관들과 보고펀드 사이에 더 큰 규모의 검은 거래가 있었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변 국장의 혐의와, 그가 받았다는 대가 사이의 불균형은 론스타 쪽 핵심 인사들의 검찰 조사 회피 사실과 맞물려 더 높은 ‘윗선’의 개입 의혹을 쉽사리 떨칠 수 없게 한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이에 대해 “변양호, 이강원 그 윗선의 외압이나 지시와 관련된 흔적이나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사적인 이메일까지 모두 분석했지만 단 한마디도 외압이나 청탁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만약 변 국장 윗선에서 헐값으로 매각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면 경제 관료와 외환은행의 많은 임직원들 중 저항과 거부가 있었을 텐데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는 물증이 없다.” 검찰의 추가 수사 과정에서도 ‘고위층’ 의혹은 드러나기 어려울 것임을 엿보게 한다.
미궁에 빠진 윗선 개입 의혹에다 갑갑증을 더하는 대목은 외환은행 매각 과정의 불법성에 따른 후속 조처가 대단히 미진해, 매각 비리에 얽힌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되팔고 유유히 떠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론스타의 이른바 ‘먹튀’(먹고 튀는) 행태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는 대략 세 가지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검찰이 론스타 소유의 외환은행 주식에 대해 ‘압수보전 신청’을 법원에 내는 것이다. 2003년 당시 매각에 대한 법원의 원천무효 판결에 대비해 론스타가 지분을 사전에 처분할 가능성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거론되는 방안인데, 현재로선 기대난망이다. 검찰은 “수사 결과를 감사원에 통보하고, 감사원이 금감위에 통보하게 한다든지, 여러 조처를 취하겠다”고만 했을 뿐 압수보전 신청 뜻은 밝히지 않고 있다. 검찰은 “금감위가 참고해서 대주주 자격 등 여러 복잡한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며 금감위로 공을 넘기고 있다.
금감위가 나서야 할 두 번째 방안인 ‘매각 승인 직권 취소를 통한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박탈’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금감위가 스스로 내린 매각 승인 결정을 이제 와서 뒤집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금감위 쪽은 (언제 나올지도 모를)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겠다고만 밝히고 있을 뿐이다. 세 번째는 론스타의 인수 직전 외환은행 대주주의 하나였던 수출입은행이 주식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이다. 이는 전적으로 수출입은행의 감독기관인 재경부의 뜻에 달려 있는데 이 역시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장막 속의 투자자는 누구인가
초창기부터 투기자본감시센터에서 활동하며 외환은행 헐값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해온 이대순 변호사(법무법인 정민)는 “검찰이나 금감위, 재경부가 각각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면 문제는 간단히 풀린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와 함께 가장 중요한 점은 론스타 투자자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환은행 인수 뒤 재매각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볼 세력은 론스타 펀드의 ‘관리자’들이 아니라 여기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이란 점에서다. 검찰 쪽에선 “모든 자료가 미국 본사에 보관돼 있어 접근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미 우리나라 국세청에서 론스타 펀드에 대한 압수 수색을 벌여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검찰의 조사 의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장막 속의 투자자들은 지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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