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분뇨와 농작물로 바이오가스 만드는 독일 헤센주의 축산농가…농가 수입 늘어나고 찌꺼기도 비료로 활용… 플랜트 진화에 ‘기대’
▣ 헤센=글·사진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독일 중부 헤센주의 아이터펠트에 사는 폴케르 힐파르트가 소유한 축산농장 겸 ‘전력회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만일 내비게이션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아이터펠트 일대를 한참 헤맸을 것이다. 여러 시골 주택이 있는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목적지가 있었다. 멀리서 고급스런 전원주택이 눈에 들어왔을 때 축산농가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다른 농가주택과 달리 고급스러운 자재를 사용한 집이었다. 젖소 170마리를 포함해 모두 350여 마리의 소를 키우는 축사를 보고서야 ‘전기사업자를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는 축사에서 나오는 가축의 분뇨와 농작물로 ‘바이오가스’를 만들어 ‘떼돈’을 벌었던 것일까.
그런 상상은 이내 깨지고 말았다. 11살인 큰아들(헨드릭 힐파르트)과 함께 탐방객을 맞은 힐파르트는 “농사만으로 고급주택을 지을 수는 없다. 부모님과 사업을 하는 형제들이 도와서 8식구가 함께 살 집을 지은 것일 뿐”이라며 “바이오가스 설비를 갖춰 전기를 생산한 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결산도 하지 않은 상태다. 우유를 짜서 얻는 소득과 전기를 만들어 얻는 소득이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그가 연말에 바이오가스 플랜트의 실적을 숫자로 확인하려면 골머리가 아플 것이다. 전기를 전력회사에 팔아 얻은 소득에 부산물로 나온 액체비료가 화학비료를 대신한 것까지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테리아의 방귀가 메탄가스로
현재 헤센주에만 50여 군데에 농가형 바이오가스 플랜트가 설치돼 있다. 주로 헤센주 헤이스펠트에 있는 아이쇼프농업연구소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뒤 농가 수익을 올리려고 설치한 것이다. 힐파르트도 “가축 분뇨를 처리해 만든 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는 말을 귀담아듣고 100만유로(약 12억원)라는 거금을 쏟아부었다. 25만유로를 가족들이 모았고, 나머지 75만유로는 연리 4%의 이자율로 은행에서 융자받았다. 그는 대출금 원금과 이자를 감당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지 “바이오가스 플랜트 업체로부터 7년6개월이면 투자금을 뽑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농장에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들으려면 축사 뒤에 있는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살펴봐야 한다. 축사를 빠져나가자마자 농작물 저장고와 대형 발효탱크가 시선을 붙들었다. 여기엔 축사에서 나오는 가축 분뇨가 들어가는 주입구와 옥수수와 밀 같은 농작물을 밀어넣는 탱크가 딸려 있었다. 발효탱크에서 처리하는 가축 분뇨가 하루에 15~18t이나 되고, 옥수숫대나 밀짚을 잘게 자른 농작물도 2시간에 1.3t씩 자동으로 주입된다. 그가 전기사업자로서 하는 일은 소를 돌보는 직원이 농작물을 탱크로 옮기는 것을 거드는 것뿐이다. 가끔 플랜트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를 모니터로 확인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렇게 외부에서 공급받은 유기물 1500여t을 처리하는 발효탱크는 섭씨 40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요란한 생명현상을 돕는다. 여기엔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박테리아들이 득시글거린다. 이들은 유입된 분뇨와 농작물을 먹어치우면서 쉼없이 방귀를 뀌어댄다. 메탄가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모아서 저장소로 보내 태우면 발전기가 돌아가면서 전기와 열을 생산하게 된다. 옥수수나 밀 2.5kg이 발효탱크에서 메탄가스 1t으로 바뀐다. 이는 1ℓ의 석유에 맞먹으며 에너지로 환산하면 9.94kWh나 된다. 박테리아의 먹이 구실을 끝낸 유기물은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질 좋은 비료로 거듭난다. 그야말로 일거다득의 발전 설비인 셈이다.
밀이 바이오가스가 되면 수익도 두배
어쩌면 힐파르트 일가가 외진 곳에 둥지를 튼 것도 행운이었다. 만일 여러 농가가 있는 곳이었다면 발전기 소음에 ‘민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오가스 플랜트 반대쪽의 축사 들머리에만 있어도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물론 거대한 화력발전소에 견주면 ‘개미 허리 앓는 소리’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루에 한두 차례 농작물을 넣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박테리아라는 자원봉사자가 가스를 만들어 발전 터빈을 돌리니 따로 직원이 필요 없다. 고온발효에 들어가는 열도 별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메탄가스에서 나오는 열을 공급해주면 된다.
놀랍게도 힐파르트가 소유한 농지는 200ha(약 60만 평)나 된다.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이나 되는 농지를 소유한 ‘부농’인 셈이다. 그 많은 농지에서 생산하는 농작물로 바이오가스를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옥수수나 밀을 파는 것보다 수익이 많기 때문이다. 밀 1t을 팔면 100유로지만, 이것을 바이오가스로 만들면 200유로를 받을 수 있다. 독일 농가에서 재배하는 옥수수는 식용으로 쓰이지 않는다. 품질이 좋지 않아 가축 사료로 쓰일 뿐이다. 당연히 제값을 받을 수 있기에 바이오가스 원료로 공급하는 게 낫다. 물론 1kW에 6유로센트를 지원받아 17유로센트에 전력회사에 넘기는 전력매입법 덕분이다.
하지만 모든 농가가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구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설치 비용을 일반 농가가 감당하기 어렵다. 농사를 짓는 처지에서 은행 융자를 손쉽게 받을 수도 없다. 더구나 200ha의 농지를 소유한 힐파르트조차 모자라는 농작물을 외부에서 충당하는 처지다. 힐파르트는 “웬만한 농지를 가지고는 경제적 이익을 얻기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연간 1ha의 농지에서 60t의 농작물을 수확하는데도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완전 가동하려면 30%가량은 주위에서 사거나 얻어야 한다. 농장에서 반경 35km 이내에 바이오가스 플랜트가 3곳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헤센주에 첨단영농을 보급하는 아이쇼프농업연구소는 바이오가스 플랜트의 경제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의 기술로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설치할 수 있는 농가는 독일 전역에 1만여 곳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2천 농가 남짓만 농장에서 나오는 분뇨를 농작물로 충당할 수 있다. 나머지는 유기물을 조달하는 데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빨리 자라는 작물을 개발하고 씨앗을 쉽게 이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농업연구소 책임 연구원인 폴 바그너는 “곡물 씨앗을 태울 때 단백질 성분에서 오염물질이 나와, 별도의 오염방지 설비를 갖춰야 한다. 이를 기술적으로 극복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벌써부터 힐파르트는 바이오가스 플랜트에서 곡물 씨앗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다. 씨앗까지 태운다면 농작물 조달이 한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씨앗 소각에 관련된 기술적 문제가 풀리기만 하면 40만유로를 더 투자해 270kW 규모의 발전 용량을 500kW로 늘릴 예정이다. 1년 가까이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운용하면서 수익성 모델을 여러 군데서 찾기도 했다. 이전에 40~45t 사용하던 화학비료를 20%가량 줄이는 성과도 있었다. 앞으로 시설을 확충하면 절반 가까이 줄일 수도 있다. 가축 분뇨가 발효되는 과정에서 부피가 줄어들어 노동력도 크게 줄었다.
대우건설도 소규모 농가에 시범보급
앞으로 바이오가스 플랜트는 더욱 진화할 것이다. 아직까지 축산 분뇨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 우리도 바이오가스 플랜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우건설은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개발해 시범보급사업을 벌이고 있다. 물론 힐파르트네처럼 대형 설비는 아니다. 소규모 농가에 걸맞게 시간당 5kW의 발전을 하는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유기성 자원의 순환 고리를 만들어 고온발효한 액체비료로 병원균을 잡거나 수질 오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옥수수로 빵을 만드는 것보다 바이오가스를 만드는 게 경제적인 독일, 그 현실이 국내에 적용되려면 농업과 환경, 에너지 정책이 맞물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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