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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을 밟아라, DSLR의 신세계로

등록 2006-12-01 00:00 수정 2020-05-03 04:24

‘쇳덩이’ 필름 카메라를 장농 속으로 밀어넣은 2000년대의 획기적 변화…“무겁고 어렵다”는 이미지를 벗은 DSLR에 여성들이 뜨겁게 화답하다

▣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지금으로부터 약 160여년전 사진이 발명되자 일부 화가들은 “이제 회화는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미술에서 회화의 비중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것 같진 않다. 지금으로부터 약 10여년전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한 이래로 필름카메라는 사양길에 접어 들었다. 그러나 필름카메라가 완전 소멸될 일은 없을 것이다. 2006년 현재, 디지털 카메라 시장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다. 그 하나는 콤팩트형 디지털 카메라의 증가 속도보다 DSLR(렌즈 교환형 디지털 카메라)의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DSLR를 선택하는 여성들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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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하나 왜 장롱 속엔 필름 카메라가 들어 있을까

아직 이 땅에 디지털 카메라가 발을 제대로 붙이지 못하던 시절, 렌즈 교환형 필름 카메라(이하 SLR로 통칭. 렌즈 교환이 되는 필름 카메라도 SLR이 아닌 것이 있으나 소수임)는 집안의 재산목록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던 고가의 품목이었다. 소풍갈 때 올림푸스 하프사이즈라도 갖고 올 수 있는 학생이 몇 명 되지 않던 그때, 렌즈가 보디 앞으로 툭 튀어나오고 가죽 케이스에 모셔진, 무게가 제법 나가는 쇳덩어리가 등장하면 친구들은 모두 경이의 눈길로 그 학생과 카메라를 바라보곤 했다. 그런 카메라는 고무신 한 켤레 사듯 ‘사는’ 것이 아니었고 ‘장만하는’ 대상이었다. 마치 아이스박스를 사용하다 어느 날 냉장고를 장만하듯, 선풍기 하나를 놓고 몸싸움을 벌이다 큰맘 먹고 에어컨을 장만하게 되듯, 렌즈 교환형 필름 카메라는 거금을 치르고 장만하던 장비였다. 렌즈까지 포함하면 웬만한 직장인의 한 달치 월급보다 더 비쌌다.

라이카처럼 작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진가도 있었지만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사진가는 대체로 크고 무거운 장비를 쓴다는 사회 통념도 한몫했다. 그러다 보니 렌즈 교환이 안 되는 콤팩트형 카메라는 약간 비싼 장난감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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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가 왔다. 1995년 어느 날 한 일간지에 “2MB 메모리카드를 이용, 한 번에 96장까지 촬영이 가능하고 가격도 약 64만원에 불과한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다. …화소 수가 25만 픽셀에 불과해 해상도가 낮다는 것이 약점인데 40만 픽셀의 제품은 100만에서 200만원대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전문가용 모델은 해상도가 140만 픽셀이지만 대당 가격이 1천만원을 넘는다” 라는 기사가 나온지 10년만에 당시 최고급 모델보다 해상도가 훨씬 높은 모델이 보급형으로 팔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초기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콤팩트형이 대세였던 이유 가운데 으뜸은 가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10년 안에 필름 카메라가 사실상 시장에서 사라질 것으로 내다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진은 여전히 필름 카메라로 찍는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2000년을 전후해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그렇게 ‘장만’했던 고가의 필름 카메라 장비들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가격이 저렴해지고 화질이 급속히 좋아지자 찍은 사진을 바로 볼 수 있다는 디지털 카메라만의 장점이 더욱 돋보이기 시작했다. 필름값이 들지 않는 것과 처리 과정이 빨라진 것은 원래부터 있던 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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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필름 카메라가 장롱 속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중고로 팔려고 해도 거의 고철값이라 억울했고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어서 다시 볼 기약도 없이 고이 모셔두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집 장롱에선 가끔 카메라가 발견된다.

렌즈 교환형 필름 카메라가 차지했던 지위를 이젠 렌즈 교환형 디지털 카메라(이하 DSLR로 통칭. DSLR 중에도 렌즈 교환이 안 되는 기종이 있으나 일부에 지나지 않음)가 대신하고 있다. 예전의 콤팩트형 디지털 카메라가 고가의 장난감 같은 성격이 있었던 것에 비해 DSLR는 당당히 개인 재산목록 상위권에 들어가는 ‘장비’에 속하게 된 것이다.

캐논코리아 컨슈머이미징의 정승택 과장은 “캐논의 경우 콤팩트 카메라와 DSLR이 모두 늘어나고 있다. 콤팩트는 월 3만대가량씩 판매되는데 이는 전년 대비 25% 정도의 상승률이며 DSLR은 월 6천대가량 판매되고 있어 전년 대비 40% 정도의 상승률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콤팩트형 디지털 카메라와 비교해 DSLR이 갖는 장점은 많다. 우선 DSLR은 여러 가지 조작을 해야 사용할 수 있는데 이는 단점이면서 장점이기도 하다. 렌즈를 교환할 수 있어 다양한 초점 거리와 접할 수 있고 셔터 지연이 대폭 줄어들었다. 전반적으로 동작이 빠르며 카메라의 모양도 필름형 SLR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외형을 중시하는 정서에도 부합한다. 이런 추세가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은 모든 카메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변화 둘 원래 카메라는 여성들에게 더 어울렸어!

서울 삼청동이나 인사동, 선유도 공원, 파주 헤이리등 이름난 출사지에선 DSLR을 든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그냥 DSLR 사용자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여성 DSLR 사용자를 떼어서 말하는 것은 사회적 함의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외적인 요소를 보면 결혼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고 독신생활자가 늘어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독신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 주요 변수로 보인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에 이르는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고 부양가족이 없어 자신에 대한 투자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생계를 위한 일(학생의 경우 학업, 직장인의 경우 직업) 외에 2, 3차적 개인활동을 모색하게 된 추세도 한몫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외적인 변수만으로 여성들이 DSLR에 빠지게 된 까닭을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 정치, 생활 모든 면에서 ‘이미지 지향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지 벌써 오래다. 필름 카메라 시절의 카메라는 촬영, 현상, 인화를 거치면서 최종 산물이 종이로 된 사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으나 디지털 시대에선 사진이 종이에서 탈출해 웹상에서 날개를 달게 됐다. 그래서 사진은 더 이상 종이가 아니고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으로 상징되는 인터넷의 대중화가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현재의 20, 30대는 (상대적으로 텍스트보다) 이미지를 추구하는 경향성이 극히 강하고 이미지에 의해 심각하게 영향받을 뿐 아니라 이미지를 생성하고자 하는 욕구가 표층화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이미지 관련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 등을 다루는 데 여성이 남성보다 소극적이거나 뒤처질 것이 없다. 과거, 해머로 상징되는 무거운 도구를 다루는 분야에서 여성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었다. 필름 시절, 무겁고 기능이 복잡할 것처럼 보이는 카메라들에 여성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려운 것처럼 위장되었던 카메라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무게와 외형에서 권위의 허물을 벗자 만만하게 보이게 된 것이다. 실제로 카메라는 어려운 기계가 아니다. DSLR이 가벼워지고 기능이 쉬워진 것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최근 디지털 카메라에서 필름 카메라로 회귀하는 남성 사용자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들의 기준에선 아무나(!) DSLR을 들고 다니게 된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고 그래서 외형만으로 권위가 먹히는 필름 카메라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필름 카메라로 돌아간다고 해도 예전의 멋을 되살리긴 힘들 것 같다. DSLR을 통해 카메라가(필름이든 디지털이든)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간파한 여성 사용자들이 필름 카메라에도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원래 카메라는 여성에게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던가? 팔뚝의 근육을 길러야 하는 것은 여전히 피곤한 노릇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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