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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의 급한 불 끄기?

등록 2006-12-01 00:00 수정 2020-05-03 04:24

7조원에 달하는 외환은행 매각 계약을 파기한 이유는 무엇일까…일단 검찰 수사를 압박한 뒤 기회를 봐 재매각 협상에 나설 수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11월23일 론스타가 국민은행과의 외환은행 매각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7조원에 달하는 매각 계약을 파기한 초유의 사건이다. 론스타의 ‘벼랑 끝 전술’인가,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른 회심의 카드인가?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본계약 만료일인 9월16일까지 매각대금이 납입되지 않자 론스타는 이미 지난 8월부터 “계약이 위기에 처했다”고 매각 무산 임박설을 흘리며 검찰에 대한 불만을 표시해왔다. 사실상 수사를 종결하라는 ‘압력’이었다. 그러나 금융업계는 론스타가 진짜로 국민은행과의 딜을 깰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봤다. 해외 제3자 매각도, 또 다른 국내 은행에 매각하는 것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번 론스타의 계약 파기 선언은 전격적이다. 이제 론스타의 ‘4조5천억원 먹튀’ 논란은 다시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새로운 인수자 물색도 어려워

론스타가 계약을 파기한 의도를 둘러싼 일반적인 분석은 대충 이렇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한 법정 공방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자 투자자금을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는 제3자 매각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소수의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모아 3∼5년 동안 투자한 뒤 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분배하는 사모펀드의 속성상 가장 중요한 건 약속된 시간에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돌려주는 것이다. 론스타의 존 그레이켄 회장은 “검찰 수사가 끝나면 다시 전략적 선택을 고려할 것”이라고 했는데, 새로운 인수자를 물색하는 것도 밀실에서 제3자 매각을 마무리짓기도 쉽지 않다. 펀드는 외환은행을 인수할 대주주 자격이 아예 없고, 외국 은행 역시 검찰 수사와 금융감독원의 대주주 자격심사에 따라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이 박탈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런 리스크를 안고 외환은행 인수에 뛰어들기도 어렵다. 국민은행 외에 외환은행을 인수할 만한 또 다른 국내 금융자본으로는 지난 3월 매각 입찰에 참여했던 하나금융지주가 있으나 ‘먹튀’를 돕는다는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나서기도 어려운 처지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대주주 지분을 추가로 1∼2년 더 보유하면서 매각 대상을 물색하는 시나리오도 점칠 수 있다. 당분간 독자적으로 외환은행 배당 청구 등을 통해 일부 이익을 실현하고 투자자금을 회수한다는 구상이다. 외환은행의 연말 최대 배당 가능 금액은 2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율이 64.62%이므로 여기서 우선 1조3천억원 정도를 회수할 수 있다. 물론 외환은행을 보유한 채 우량 자산을 매각하거나 지분을 쪼개어 파는 방식으로 우회적으로 투자원금을 조금씩 회수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배당을 받거나 주요 자산을 매각하면 그만큼 기업가치가 하락해 매각 가격이 떨어지게 되고, 지분을 쪼개어 팔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길 수 없으므로 매각 차익은 훨씬 줄어들게 된다. 아무튼 론스타로서는 매각 협상에서 국민은행이 가장 유리한 파트너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검찰 수사가 끝난 뒤 론스타가 국민은행과 다시 매각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관료들에게 구상권 청구하라”

그렇다면 계약 파기라는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는 어떤 급박한 사정이 론스타에 발생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검찰이 최근 외환은행과 은행 대주주인 벨기에의 LSF-KEB홀딩스SCA를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개인이 아니라 법인이 기소됐기 때문에 론스타 본사가 있는 미국 금융당국에서도 “혹시 당신들 진짜로 불법행위를 한 것 아니냐”며 조사를 시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소 희망 섞인 관측이지만, 검찰 수사에서 론스타의 불법성이 어느 정도 드러났고, 이런 정보를 미리 입수한 론스타 쪽이 검찰을 압박하려고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 집행위원장은 “한국 경제관료들의 불법성은 이미 드러났으므로 이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 그러면 이들이 ‘무슨 말이냐, 론스타가 다 저지른 일이다’고 실토할 가능성이 있다”며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하종선 전 대표·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등이 검찰 수사에서 이미 뭔가 진술했을 수도 있고, 이런 정보를 론스타 쪽이 입수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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