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장악하는 새 의회 지도부는 대한반도 정책을 어떻게 바꿀까…북핵 문제엔 대화를 통한 협상 강조하나 FTA에는 보호무역 성향 보여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했다고 해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리란 보장은 없다. 민주당 정권인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오히려 ‘북폭계획’이 구체적으로 거론됐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지나친 낙관은 금물일 것이다. 미국 정가에서 한반도가 차지하는 위상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에 비해 우선순위가 매우 낮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결국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뿐이라는 것도 자명하다.
그럼에도 일정한 수준의 ‘변화’는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잘 알려진 대로 미 의회는 우리와 달리 다수당이 상임위 위원장직을 독식하는 구조다. 때문에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구성될 새 의회에선 상임위 위원장을 민주당 출신이 모두 차지하게 된다. 새롭게 구성될 미 의회 지도부의 면면은 부시 행정부가 기존의 정책 방향을 지속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한-미 간 양대 현안인 북핵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관련된 상임위를 중심으로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북한에 당근과 채찍 써야"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은 대안일 수 없다. …협상 테이블에 북한과 미국이 앉아 진지하고 긴급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다른 누가 협상 테이블에 앉느냐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고, 핵물질과 기술 또는 무기를 적들에게 이전하기 전에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활용해 이 위기를 끝내야 한다.”
민주당의 대표적 ‘국방 전문가’로 손꼽히는 미시간주 출신 칼 레빈 상원의원은 지난해 7월5일 에 힐러리 클린턴 의원과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상원 국방위원장 자리를 예약해놓고 있는 그는 이라크 침공에도 반대표를 던지는 등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앞장서 비판해왔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으로 레빈 의원은 북-미 직접 대화와 고위급 대북정책 조정관 임명을 줄기차게 강조해왔다.
지난달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도 그는 북-미 직접 대화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내놓은 성명에서 “부시 행정부가 지난 몇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은 또다시 좋지 않은 선택에 직면해 있다”며 “우방국인 한국과 중국의 요청에도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 틀 바깥에서 북한과 대화하기를 거부하는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고수해온 탓”이라고 비판했다.
하원 국방위원장은 민주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보수파’란 평가를 받는 미주리주 출신 아이크 스켈턴 의원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지나치게 이라크에 집중한 나머지 이란과 북한 등 다른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지난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스켈턴 의원은 “북핵이 동북아와 국제 안보에 끼치는 중요성에 비춰 이 문제에 더욱 우선순위를 둬야 할 것”이라며, 대북정책 조정관에 고위급 인사를 임명할 것을 촉구했다.
외교 분야에서도 북-미 직접 대화를 강조해온 이들이 새 의회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상원 외교위원장에 ‘복귀’하게 될 조지프 바이든 의원은 현 외교위원장인 공화당 리처드 루거 의원과 협력해 초당적 대북 협상론을 미 의회에 확산해왔다. 바이든 의원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도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불충분하다”며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은 북한에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고 추가 핵실험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거부하는 맥스 바커스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으론 캘리포니아주 출신 톰 랜토스 의원이 유력하다. 헝가리 출신으로 16살 때 나치 점령 치하를 겪었던 랜토스 의원은 이른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는 미 하원의원이 된 최초의 인물이다. 이런 개인사 때문인지 그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공공연히 밝혀왔다. 그렇다고 랜토스 의원이 ‘대북 강경론자’인 것은 아니다. 지난해 1월과 9월 두 차례나 북한을 직접 방문하기도 한 그는 북쪽 관계자들과 만나 “미-중 관계도 핑퐁외교에서 시작됐다”며 “평양교예단의 워싱턴 공연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랜토스 의원은 특히 ‘9·19 공동성명’과 관련해 지난해 10월6일 청문회에 출석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에게 방북외교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청문회에서 힐 차관보에게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북한을 방문할 것을 강력히 권한다”며 “방북외교는 북-미 간 의견교환을 더 활성화하는 한편 상호 신뢰감을 키울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포괄적이고 검증 가능한 6자 협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북정책에선 바람직한 변화의 기운이 느껴지지만, 한국 정부가 적극성을 보여온 FTA 협상은 이번 선거 결과 적신호가 켜졌다. 친노조 성향인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보호무역을 강조해온데다, 미 의회에서 무역정책을 아우르는 상원 재정위원회와 하원 세입세출위원회 지도부의 면면이 심상찮기 때문이다.
상원 재정위원장엔 맥스 바커스 의원이 유력하다. 오는 12월 제5차 FTA 협상이 열리는 몬태나주 출신인 그는 제1차 협상 직후인 지난 6월15일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KEI)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 △미 무역구제법 충실 반영 △자동차 시장 진입장벽 완전 제거 등 까다로운 협상 조건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바 있다. 그는 특히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해 “개성공단이 한국에서 왜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지만, 이는 FTA 협상 자체를 좌초시킬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며 “산적한 어려움이 많은 상황에서 개성공단 같은 문제를 협상 의제로 포함하지 않기 바란다”고 잘라 말했다.
현 의회 폐회전 비준 어려울 듯
하원에는 더욱 큰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하원의장이 될 낸시 펠로시 의원과 현 하원 총무인 스테니 호이어 의원은 물론 차기 세입세출위원장으로 예상되는 찰스 랭글 의원과 세입세출위 무역소위를 맡게 될 샌더 레빈 의원 등은 지난 6월5일 공동성명을 내어 “한-미 FTA 협상은 부시 행정부 무역정책의 결정적 시험이 될 것”이라며 “중요한 무역협정에서 부시 행정부가 미국의 제조업자와 농부, 서비스업 종사가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친노동계 인사로 분류되는 랭글 의원에 대해 미 최대 노동단체인 ‘전미 노동 총연맹 산업별 회의’(AFL-CIO)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노동 문제와 관련한 의회 표결에서 94%의 ‘올바른 표’를 던졌다”며 공식 지지후보로 선정한 바 있다. 노동단체들이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반대한다면, 랭글 의원으로선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미 FTA 협상을 가장 가까이서 챙기게 될 레빈 의원의 지역구는 미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미시간주다. 그가 지난 7월7일 찰스 슈왑 미 무역대표(USTR)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한국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으로 자동차 시장 개방 폭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 무역정책은 행정부가 아닌 의회가 주도한다. 새로 들어설 의회 지도부는 한-미 FTA에 우호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미국 쪽 협상단은 이런 상황을 ‘협상카드’로 활용할 것이다. 현 의회 폐회 전에 협상을 타결하고 의회 비준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 협상을 서두르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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