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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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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네오콘 몰락의 서막

등록 2006-11-18 00:00 수정 2020-05-03 04:24

럼즈펠드 경질하고 후임으로 게이츠 지명한 부시의 절박감
네오콘 대신 실용주의자들 기용해 이라크에서 탈출하나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오는 화요일(11월7일) 이 사설란에 지지후보 명단이 실리게 될 때, 공화당 후보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기로 공화당 후보가 1명도 지지후보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 정책에서 민주당 쪽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온건한 공화당 후보에 대해서도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양당 체제를 가능한 한 활력 넘치고 책임성 있게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정치적 소신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올해는 상황이 전과 같지 않은 이유다.”

미국 중간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11월5일 는 메인 사설을 이렇게 시작했다. 신문은 지난 6년 동안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무능력과 부패를 통박한 뒤, 조지 부시 행정부의 실정에 대한 비판과 견제능력을 상실해버린 의회에 대해 ‘뇌사상태’라고 질타했다. 이날치 사설은 “부시 대통령이 선거 다음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도 공화당이 여전히 상하 양원에서 다수당일 수도 있다는 점에 생각이 이르면 끔찍하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석연찮은 경질의 ‘전격성’

‘229 대 196(하원), 51 대 49(상원).’

의 ‘악몽’은 현실화하지 않았다. 11월7일 치러진 선거에서 공화당은 12년을 이어온 다수당의 지위를 민주당에 빼앗겼다. 232석이던 하원에서 36석을 잃었고, 55석이던 상원에서도 6석을 빼앗겨 상하 양원 모두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현역 의원 재선율이 80~90%에 이르는 미국 정치의 특성을 고려할 때, 가히 ‘유권자 혁명’으로 부를 만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공화당의 선거 패배 원인을 분석하는 데는 ‘이라크’ 한 단어로 족했지만,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주당이 선거 승리를 만끽할 겨를도 없이 이튿날인 11월8일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장엔 두 사람이 자리를 함께했다. 부시 행정부 최장수 장관이자 이라크 침공과 점령정책을 주도해온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 텍사스 A&M대 총장이다. 부시 대통령은 망설임 없이 럼즈펠드 장관을 경질하고 게이츠 총장을 후임자로 지명했음을 밝혔다. 공화당의 선거 참패보다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 회견에서 “이라크 정책이 원하는 만큼 빨리 기대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관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선거 참패로 부시 대통령이 느꼈을 ‘절박감’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이상 ‘조기 레임덕’을 피할 묘수가 긴요했을 것이다. 럼즈펠드 장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내년 1월 새 의회가 소집되는 대로 민주당 지도부는 그를 줄기차게 소환해 이라크 관련 부시 행정부의 ‘실정’을 낱낱이 파헤치려 들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에도 럼즈펠드 장관 경질 시점의 ‘전격성’은 여전히 석연찮다. 이라크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심지어 이라크 침공에 찬성했던 이들까지 럼즈펠드 장관 해임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터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선거 직전까지도 “럼즈펠드 장관과 임기를 함께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뭔가 다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이라크도 주변국에 맡기고 슬슬 철수?

안보 문제 전문 컨설팅업체 ‘스트랫포’는 이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이미 상당 기간 준비돼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부시 행정부 내부에서 이라크 정책 변경이 준비되고 있다는 점을 뜻한다”고 진단한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부시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선거 이틀 전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게이츠 총장을 만나 이라크 정책 관련 대화를 나눴고,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됐다”며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게이츠 총장을 국방장관에 지명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오랜 기간 각별한 관계를 맺어온 게이츠 지명자는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리 해밀턴 전 하원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이라크 스터디그룹’(베이커-해밀턴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미 의회의 결정에 따라 지난 5월15일 민주·공화 양당 추천인사 각 5명씩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점령정책을 분석하고, 대안을 담은 보고서를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중간선거에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보고서 발표 시점이 늦춰졌지만, 그 내용의 일부는 이미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등이 보도한 내용을 종합하면, 위원회가 제시할 대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안정화 우선’ 정책이다. 치안 안정화 작전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집중하는 한편 저항세력의 정치 참여를 적극 유도해나간다는 전략이다. 얼핏 현재의 정책과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과정에서 이란과 시리아 등 이라크 주변국의 ‘개입’을 적극 이끌어내기 위해 외교 노력을 기울인다는 게 이 대안의 핵심이다. 두 번째 대안은 민주당 일부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이른바 ‘재배치 및 봉쇄’ 전략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줄여 궁극적으로 철수를 완료하고, 재배치된 병력은 이라크를 포함해 테러조직 소탕작전이 필요한 곳이면 전세계 어디든 ‘유연하게’ 투입한다는 전략이다.

게이츠 지명자, 네오콘과 대립각

는 지난 10월16일 위원회 참여 인사의 말을 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중요한 것은 현 이라크 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으며,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커 전 장관은 개인적으로 첫 번째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몇 차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리아도 이란도 혼란스런 이라크를 원치 않기 때문에 이들 나라를 활용할 방안이 있을 수 있다”며 “우리가 제안할 방안 가운데는 행정부 내부에서 달가워하지 않을 만한 것도 포함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제임스 도빈스 랜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란과 시리아를 개입시키기 위해선 ‘민주주의’보다는 ‘안정’을 강조해야 한다”며 “특히 이들 국가에 대해 ‘정권교체’ 운운하는 것은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고스란히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좌우해온 ‘네오콘’ 진영을 염두에 둔 지적이다. 민주당의 압승과 럼즈펠드 장관의 해임, 그리고 이라크 정책 변화 조짐이 결국 지난 6년 세월 워싱턴 정가에 군림해온 네오콘 진영의 영향력 쇠퇴와 맞물리고 있는 것이다.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자문위원을 지낸 게리 식 컬럼비아대 교수는 상황을 이렇게 분석한다. “부시 대통령 두 번째 임기의 전반적인 경향이 네오콘 이데올로기에서 실용적 현실주의로 미세하나마 180도 회전을 지속해왔다. 럼즈펠드 장관 해임 결정은 이 과정의 절정인 셈이다. 어찌 보면 럼즈펠드 장관 경질은 지난 6년 동안 보여온 미국 외교정책에서 가장 큰 변화일 수 있다.”

럼즈펠드 장관의 후임으로 게이츠 전 중앙정보국장을 지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993년 중앙정보국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게이츠 지명자는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등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일했던 ‘실용적 현실주의자’ 그룹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어왔다. 이들 그룹은 딕 체니 부통령과 럼즈펠드 국무장관을 축으로 한 네오콘 진영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특히 게이츠 지명자가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함께 지난 2004년 미 외교관계위원회(CFR)가 조직한 이란 관련 태스크포스 의장직을 맡아 내놓은 보고서를 두곤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당시 게이츠-브레진스키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에 이란과 외교·경제 분야에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는데, 네오콘 진영에선 이를 ‘나약한 유화정책’이라고 비난했다.

홀로 남은 체니 부통령에 공세 ‘예약’

베이커-해밀턴위원회가 구상 중인 ‘이라크 안정화 방안’ 역시 네오콘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해 보인다. 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이라크 내전상황 종식을 위해 이란·시리아 등 주변국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은 네오콘 진영에서 강력히 반대해온 접근법인 탓이다. 윌리엄 로더백 전미보수연맹(ACU) 부총재 등 일부 네오콘 인사들이 럼즈펠드 장관 해임 결정을 두고 아버지 부시 행정부 출신 인사들이 자신들을 겨냥해 결행한 ‘사실상의 쿠데타’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정책에 대해 미 유권자들은 중간선거를 통해 ‘총체적 파산’을 선고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경질됐고, 이라크 정책을 포함한 미국의 중동정책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를 두고 시사주간지 는 11월8일 인터넷판에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은 이제 정치적 법정관리에 접어들었다”며 “아버지 부시 행정부 출신의 실용주의자들이 파산 절차를 주도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네오콘의 ‘성채’를 지키고 선 건 체니 부통령이다. 민주당 주도의 새 의회에서 그는 공세의 표적이 될 게 뻔하다. 지난 3년여 동안 체니 부통령이 회장을 지낸 핼리버튼이 이라크 전후복구 과정에서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음을 추적·폭로해온 헨리 왝스먼 의원이 하원 정부개혁위원장을 예약해둔 상태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거침없이 타올랐던 네오콘의 불길이 잦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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