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센카쿠열도, 서쪽 독도, 북쪽 북방4도까지 3면이 영토 문제로 얽혀…공산당조차 피하는 자위대 강화와 분쟁의 연결은 동북아 미래의 큰 변수
▣ 홋카이도·오키나와=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
일본은 큰 나라다. 한국 사람치고 일본의 면적이 대한민국 영토의 4배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특히 바다의 주권 범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일본 영토의 최남단과 최북단을 답사한 것은 하나의 화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상당히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 일본이 왜 그토록 영토에 집착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영토에 대한 집착’과 ‘군사대국’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한꺼번에 고려한다면 문제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이어진다. 그 고차방정식은 일본의 영토분쟁과 자위대의 미래가 엮어지는 방정식이다. 해답은 다름 아닌 동북아시아의 미래다.
아열대에서 아한대까지 걸쳐진 섬
아시아 대륙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동아시아 전체가 일본의 주권이 미치는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냉전 이후 극동과 동아시아로 진출한 미국은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의 자위대를 언제든지 함께 전쟁터로 갈 수 있는 군대로 만들고 싶어했다. 이 점이 영토분쟁과 자위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견제를 일본이 독자적으로 해주는 상황’이야말로 21세기 동북아시아 정세에서 미국이 가장 바라는 구도다.
일본은 규슈·시코쿠·혼슈·홋카이도 등 4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일본 최남단은 규슈에서 약 1천km 더 내려가야 나온다. 오키나와에서 약 500km 아래인 야에야마 제도 맨 아래의 하테루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일본 최남단 지역인 하테루마섬은 행정구역으로는 오키나와현 다케토미초 하테루마로 돼 있다. 섬의 남동쪽 맨 아래에 일본최남단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선명한 일장기와 함께 ‘일본 맨 아래’라는 글씨가 두어 곳의 비석에 음각으로 세워져 있다. 이곳은 일본 최남단이라는 의미보다는 일본에서 가장 바다가 맑고 푸른 곳으로 이름나 있다. ‘섬 중의 섬’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주민들은 사탕수수 농사를 짓고, 민박사업도 한다. 하테루마섬에서 체감하는 일본 최남단이라는 공간의 정치적 의미는 무색하다. ‘영토’라는 정치적 함의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은 일본최남단비석 중에서 일왕 추종자들이 세운 기념비석 정도다. 대만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하테루마섬은 아열대 특유의 기후와 식생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홋카이도 최북단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비슷한 위도로 아한대 기후와 식생을 보이고 있다. 아열대부터 아한대까지 펼쳐진 나라가 지구에서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일본 영토의 실체를 일부나마 느낄 수 있다.
하테루마섬에 가려면 이시가키시를 거쳐야 한다. 이시가키 공항에서 내려 이시가키항에서 배를 갈아타야 하테루마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시가키섬의 이시가키시가 바로 중국과 영토분쟁이 한창인 센카쿠열도(중국 이름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의 전초지역이다. 일본은 센카쿠열도를 이시가키에 속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최남단 서쪽 지역의 국경이 중국이며 여기서 분쟁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하테루마에서 도쿄에 가려면 비행기를 두 번 타거나 배를 탔다가 다시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도쿄에서 다시 최북단인 홋카이도의 와카나이까지 가려면 비행기를 한 번 더 타거나 철도를 이용해야 한다. 신칸센을 포함해 최소 20시간 이상 가야 한다. 최남단인 하테루마에서 최북단인 홋카이도 와카나이시까지는 3500km 정도 된다. 홋카이도 와카나이시 소야미곶은 일본 최북단 지역이다. 와카나이는 일본 국내에서 관광지로도 제법 알려진 곳이다. 평일에도 관광객으로 붐빈다. 사할린이 4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도로표지판에도 러시아어가 있을 정도로 러시아와 가깝다.
100억엔 마련해 분쟁 거점 경제 도와
와카나이에는 냉전시절의 잔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일본 최북단답게 러시아의 코앞이기 때문에 자위대 정보·관제 기지가 주둔하고 있다. 육해공 자위대와 전자통신 특수부대도 있다. 와카나이 시내에서 254번 지방도를 따라 북서쪽으로 가다 보면 도로 옆에서 부대 시설들이 훤히 보인다.
홋카이도 북쪽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인 구시로에서 기차로 2시간30분을 가면 태평양과 오호츠크해 사이를 가로지르는 반도에 있는 네무로시가 나온다.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인 네무로는 일본 영토분쟁 지역 중 하나인 북방 4개 섬 현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일본 최동단 역이기도 한 네무로역에서도 마을 통근버스를 타고 25분, 20km를 들어가면 나오는 네무로 반도의 가장 끝인 노싯푸곶이다. 북위 43도 23부에 위치해 일본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곳이라 매년 새해를 제일 먼저 맞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일본과 러시아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북방 4개 섬’(러시아에서는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으로 부름) 반환 문제를 현장에서 알리기 위해 1980년에 지어진 것이 노싯푸곶에 있는 북방관이다. 의미에 비해 시설이나 규모는 작고 초라했지만, 일본 정부가 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교육하고 홍보한 영토반환 지역이 이곳 북방 영토 4개 섬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방 영토란 일본 북동단에 위치하는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섬, 구나시리섬, 에토로후섬 등 4개 섬을 말한다. 북방 4개 섬은 지난 45년 얄타협정과 전쟁 이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러시아(옛 소련)가 양도받았다. 4개 섬 가운데 노싯푸곶으로부터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하보마이 군도는 이곳에서 3.7km 떨어져 있다. 4개 섬의 총면적은 5036㎢로 오키나와의 2배 정도 크기다.
일본의 북방 4개 섬 반환 활동은 독도 분쟁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국가와 민간 차원에서 공동으로 반환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은 반환운동 60주년이었다. 81년 일본 정부는 내각회의에서 2월7일을 ‘북방 영토의 날’로 제정했으며 북방 영토 문제 해결 관련 법안도 만들었다. 일본 정부는 91년 북방 영토와 인접지역 관련 지원지금 100억엔을 마련해 영토 반환의 거점지역인 네무로의 경제 활성화와 지역 안정화 사업도 벌이고 있다. 65년부터 시작한 반환 요구 국민서명은 7천만 명을 넘어섰다. 중·고교생에 대한 역사 교육은 물론이고 92년부터는 북방 4개 섬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을 상대로 일본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2005년에도 23번의 일-러 상호 방문이 민간 차원에서 이뤄졌다.
이성으로 접근 못하는 역사의 지뢰밭
그런데 보통의 일본인들은 북방 4개 섬 반환 문제를 뺀 다른 영토분쟁에 대해 거의 모른다. 특히 국경의 3면에 영토분쟁이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른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영토분쟁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나라다. 그러면서도 자위대의 강화와 교전권 획득 논란이 자위대의 강화 현상과 연계되는 것에는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자위대에 가장 비판적인 공산당조차 영토분쟁과 자위대의 실체를 연결하는 것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오직 시민사회에서만 상당한 우려를 표명한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중국, 러시아는 상당히 긴장하면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영토분쟁은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역사의 지뢰밭이다. 전쟁의 역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일본의 자위대 문제와 영토분쟁은 지금 당장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미래의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의 주요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는 데 그 심각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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