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하면 당내 경선의 액세서리로 전락할 수도 있는 손학규의 딜레마… 한나라 이미지 희석시키고 열린우리당의 장점 흡입할 파괴력도 충분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다리가 두 개인 의자는 없다. 혹 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균형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의자로서 제 구실을 하려면 다리가 3개 이상 돼야 한다. 삼발이가 그렇다. 그 이상이면 금상첨화다.
‘저평가 우량주’라는 꼬리표
‘의자 균형론’은 한나라당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나라당엔 걸출한 두 명의 대선 후보가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1위와 2위를 달리고 있다. 두 인물을 중심으로 2강의 대선 경쟁 구도가 짜여 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2강 구도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다. 2강의 당사자들도 마찬가지다. 국회 내 이명박 ‘대리인’인 정두언 의원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지지율이 오르면 좋다. 지지율이 한 15% 되면 (이명박과 박근혜 중) 누구 하나 튀어나가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 전 지사가 대권 후보 경선의 안전판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여기에 덧붙는 것들은 적어도 3자 구도는 돼야 경선이 흥행몰이에 성공할 수 있다는 공감대다. 나쁘게 말하면 ‘액세서리’로서 손 지사가 있으면 좋다는 것이다.
이는 손 전 지사가 대선 후보감인지를 떠나 그에 대한 당내 관심이 지속될 수 있는 현실적 조건들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당내 이회창 전 총재의 1인 독주가 안긴 쓰라린 패배의 경험이 준 교훈이 당을 지배하고 있다. 경쟁자들이 많을수록 좋다는 사고방식은 공식처럼 통용된다. 쏠림 현상을 피하려는 에너지 작용이 손 전 지사한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셈이다.
대권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역학구도와 셈법만이 지금의 손학규를 만든 것은 결코 아니다. 손 전 지사 자신이 가진 상품성이 그를 주목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에겐 늘 꼬리표처럼 ‘저평가 우량주’란 증시 용어가 따라다닌다. 실제 그가 저평가됐는지 아닌지 아직 충분한 검증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에겐 다른 한나라당 후보에게서 볼 수 없는 몇 가지 독특한 장점들이 있다.
그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불린다. 생각이 다른 진영과도 말이 통할 것이라는 포용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당 밖에서, 특히 열린우리당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다른 한나라당 후보들보다 더 후하다. 열린우리당에서 손 전 지사가 상대하기 제일 까다로운 후보라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의 후보가 된다면 열린우리당 쪽 후보의 이미지와 중첩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의외로 파괴력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열린우리당이 가진 장점마저 흡입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한나라당을 혐오하는 층이 여전히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그의 주가가 높게 평가되는 측면도 있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조사에서 29%였던 한나라당에 대한 절대적 혐오층은 2006년 8월 32%로 되레 3% 늘었다. 김형준 국민대 교수(정치학)는 “이런 상황에서 손 지사는 부패·기득권·수구 등 보수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중도를 선점하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의 취약한 부분을 보충해줄 수 있는 그의 장점들이 경선 경쟁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당의 후보가 된 상황에서도 ‘러닝메이트’로 짝을 이루면서 발휘될 수도 있다. 그의 장점은 제한적이긴 하나 지난 5월 이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손 전 지사가 24.6%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손 전 지사의 측근들이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며 가능성 제로라며 대꾸조차 않는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오픈 프라이머리’ 참여나 언제 있을지 모를 정계 개편 과정에서 한나라당을 뛰쳐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도 합리적 보수로 정의되는 그의 정치적 성향이 제공하는 자연스러운 정치적 상상력들이다.
내놓고 밀어주는 사람들이 없다
이번 ‘100일 민심대장정’은 그를 재평가하게 한 또 다른 실험이었다. ‘정치적 실험’이라고까지 할 순 없겠지만 기성 정치인들이 보여주지 못한 ‘진정성’을 보여준 것이다. 경기도지사로서 도정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행정 경험과 정치적 공백기를 거치면서 여의도 정치인의 이미지를 많이 탈색시킨 것도 그의 장점이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과거 경력에 보태 흠잡을 만한 도덕적 약점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그를 ‘바람직한’ 지도자로 비치게 한다. 이같은 요인들이 뭉쳐 그의 지지율은 오랫동안 1~2%의 의미 없는 수치로 머물다가 최근 4%대로 올라섰다

하지만 손학규 하면 떠오르는 뭔가가 없다는 것은 그의 결정적 한계다. 이명박 하면 청계천과 샐러리맨의 신화, 박근혜 하면 박정희의 딸과 한나라당 대표, 행정의 달인 고건처럼 자신의 최대 상품이나 이미지가 곧바로 떠올라야 지지도를 확 끌어올릴 수 있다. 정두언 의원은 “손 전 지사에겐 확 떠오르는 ‘스토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대중성도 떨어진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손 전 지사를 뜯어보면 괜찮은 인물이란 얘기는 나오지만 확 떠오르는 게 없다”며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적 정신, 정치적 감각, 콘텐츠 제시, 대중적 호소력의 네 가지 요소 가운데 그에게 대중적 호소력과 정치적 감각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민심대장정을 시작한 뒤 많이 나아졌지만 경기고-서울대-교수-보건복지부 장관-경기도지사 등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이미지의 경력도 대중적 친화력에 걸림돌이다.
당의 지형은 그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넘기 어려운 벽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2강 체제가 2년 가까이 이어져오면서 당내 판이 거의 굳어졌다. 한나라당 당원과 대의원, 당직자들의 정치적 사고도 양강 체제로 짜여진 틀에 익숙해져 있다. 의원을 포함해 당 안팎의 적지 않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미 어느 한쪽에 줄을 섰다.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은 당 인사들을 나누는 고정적 잣대가 돼버렸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지난 7월 전국의 한나라당 지지자 7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하냐”는 질문에 박근혜(43.2%) → 이명박(36.2%) → 고건(10.1%) → 손학규(3%) 순으로 응답이 나왔다.
자기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다. 남경필 의원은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손 전 지사에게 ‘다 걸기’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당이 집권하는 데 뭐가 좋으냐는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 남 의원이 소속된 소장개혁파들의 모임인 수요모임에서조차 손 전 지사와 철학이 비슷한 편이지만 대놓고 그를 밀어줘야 한다는 얘기를 할 수 없는 구조다. 대선을 앞두고 특정 후보에 줄서기하지 않겠다는 대원칙을 마련한 탓이다. 더군다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생각도 경선 흥행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후보의 다다익선이 좋다는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을 뿐이다. 수요모임의 이성권 의원은 “현재로선 내년 경선 기간에 손 전 지사를 지지하면서 선거운동을 같이 할 의원이 몇 명이나 될 것인지에도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당장 손 전 지사의 사람이 없으니 당내 손 전 지사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해줄 통로도 막혀 있는 셈이다.
‘지역적 연고 없음’도 핸디캡
이쯤에서 지지율이 낮고 당의 정치 지형이 좋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한나라당이 과연 손학규를 대선 후보로 원할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한나라당의 패권은 지역적으로 영남이 쥐고 있다. 아직까지 박근혜가 최고의 지분을 갖고 있다. 대구 달성을 지역구로 할뿐더러 경북은 그의 아버지의 고향이다. 포항이 고향인 이명박도 크게 밀리지 않고 경부운하를 통해 상당한 점수를 따고 있는 형편이다. 내세울 만한 지역적 연고가 없음은 그것이 극복돼야 할 대상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대선 경주에서 그에게 가장 불리한 여건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당의 주류적 정서와 거리감도 크다. 국가보안법에서부터 사학법까지 그는 여야의 대치 전선이 형성된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에 좀더 유연한 자세를 촉구했다. 그는 분명 한나라당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인물 중 하나다. 정창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손 전 지사를 한나라당의 주류가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는 보수와 진보의 중간, 한나라당과 비한나라당의 경계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그는 호남에서 무당층이나 열린우리당 지지층 일부에서 호감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나라당 후보답지 않은 게 당 밖에서 볼 때 그의 장점이자 역으로 당내에서 큰 단점으로 작용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다양한 기회들이 놓여 있다. 당장 ‘체험 삶의 현장’ 뒤 뭘 내놓느냐에 따라 다소나마 상승 탄력을 받은 그의 지지율이 재도약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성권 의원은 “지금까지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개인적 체험을 국가 운영과 관련해 구체적인 대안과 비전을 자신의 정책을 통해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경필 의원도 손 전 지사가 ‘애피타이저’(식전 음식)를 내놨을 뿐 아직 자신만의 ‘메인 디시’(주요리)를 내놓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각도에서의 주문도 있다. 김형준 교수는 “대장정 이후 다른 후보와 차별화할 수 있는 콘텐츠를 내놔야 한다. 단순히 당의 대의원들을 향한 것이라면 손 전 지사는 실패할 것이다. 당을 잊고 국민이 원하는 것을 내놔야 한다. 당의 발전적 해체를 요구할 만큼 강도 있게 해야 추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도 고려할 수 있는 젊음
하나의 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한나라당에까지 파급을 미치는 정계 개편이 일어난다면 그에게 새로운 역할이 요구될 수도 있다. 이명박과 달리 쉰아홉인 그에겐 ‘다음’도 고려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일관된 행보를 통한 신뢰를 쌓아나가는 게 필요하다. 재수 끝에 경기지사가 됐지만 그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일궈낸 것이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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