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출신 장관·국회의원 논문 조사결과 자기 표절 의심되는 사례들 발견… 논문 발표 숫자만 따지는 교수업적평가제가 ‘복제·유사 논문’ 확산시켜
▣ 김규남 인턴기자 paullife79@naver.com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타면자건(唾面自乾). 남이 얼굴에 침을 뱉으면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다. 국민대 교수 시절 논문 중복 게재 의혹 등으로 사퇴한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퇴임 직전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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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부총리는 논문 중복 게재가 학계의 관행이라며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고 떠났다.
머리말 첫문장부터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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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민대 교수협의회는 8월9일 김 전 부총리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교수협의회는 김 전 부총리에 대해 “동일한 논문을 외부와 교내 학술지에 중복 게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는 김 전 부총리의 발언은 학문적인 윤리를 엄격하게 지켜온 대다수 교수의 명예와 자존심에 심대한 상처를 입혔다”며 “전체 교수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복 논문 게재는 똑같거나 비슷한 내용의 논문을 다른 두 학술지에 싣는 것이다. 언론은 김 전 총리의 중복 논문 게재를 ‘자기 표절’이라고 공격했고, 김 전 부총리 쪽에서는 “언론이 만든 신조어”라고 응수했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 우선 은 연구의 ‘관행’과 ‘탈선’ 사이에서 한국 사회의 공인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교수 출신 장관과 국회의원 30명의 논문을 조사했다. 조사는 김 전 총리가 퇴임식을 치른 8월7일부터 국회도서관 검색 시스템을 이용해 비슷한 제목의 논문을 비교·대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일부에서 학문 윤리에 어긋나 보이는 사례가 드러났다. 특히 열린우리당 지병문, 안민석 의원에게서 중복 게재나 자기 표절로 의심되는 부분이 발견됐다.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신인 지병문 의원은 1998년 8월 에 ‘정부 개혁의 이론 배경과 실천 방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었다. 그리고 1998년 가을호에 ‘지방정부 개혁의 이론적 배경과 방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었다. 그런데 두 논문을 읽어보니, 머리말 첫 문장부터 똑같이 서술됐다. 먼저 출판된 논문은 1장 ‘머리말’과 2장 ‘政府 改革 運動의 起源’, 3장 ‘政府 改革의 具體的 內容’을 거쳐 4장 ‘結論’에 이른다. 논문을 읽어보니, 머리말에서 세 단락이 추가된 것 외에는 내용의 변화가 없었다. 반면 표기의 변화는 많았다. 한자가 한글로 바뀌고, 학술 용어에는 영어 설명이 붙었다. 하지만 내용은 앞선 논문과 판박이로 나아갔다. 다만 논문은 1장 ‘머리말’과 2장 ‘정부 개혁 운동의 기원’으로 나아가다가 바로 ‘결론’으로 이어졌다. 쉽게 말해 지 의원은 에 해당 논문을 실은 뒤, 이 논문의 3장을 빼고 다시 에 실은 것 같았다. 물론 두 논문의 결론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하나의 논문을 쪼개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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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지 의원 쪽은 “하나는 중앙정부를 다룬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정부를 다룬 것”이라며 다른 논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에 논문을 실었는데, 그 뒤 에서 요청이 와서 논문을 보내준 것”이라며 “당시 은 학술지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잡지는 해당 호에서 “국회 등록 연구재단인 한세정책연구원의 기관지로서 실용성 있는 정책연구 논문을 정선 심사하여 발표하는 학술지”라고 밝혔다.
중앙대 사회체육학부 교수였던 안민석 의원은 1999년 7월 에 공동저자 5명의 이름으로 ‘남북 체육교류 활성화 방안 연구’라는 글을 발표했다. 안 의원은 2000년 에 ‘남북 체육교류 활성화 방안’이라는 논문을 실었다. 그러나 두 논문을 읽어보면 같은 문장과 단락들이 상당수 발견된다.
정말 학계의 관행인가
두 논문의 머리말은 5단락 가운데 4단락이 거의 똑같고, 고갱이라 할 만한 ‘남북 체육교류 활성화 방안 제언’(2000년) 부분은 ‘남북 체육교류 활성화를 위한 정책 제언’(1999년) 부분과 일란성 쌍둥이처럼 똑같다. 2000년 논문에서 1999년 논문은 주석에 나와 있지 않았고, 참고문헌에도 없었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99년 당시에는 연구보고서를 요약해서 에 실었으므로 연구보고서와 는 동일한 것으로 생각했다”며 “당시의 는 학술지로 생각도 안 했다. 일반적인 학술지와는 다른 케이스로 봐야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를 찾아보면, 안 의원의 해명은 납득하기 힘들다. 이 책은 “본지는 국내 최고 권위의 체육전문 학술지로의 자리매김을 목표로, 학계 권위자들에 의한 엄정한 심사”를 거친다고 밝혔다. 또 “본지에 게재될 수 있는 원고에는 ‘고찰 논문’, ‘연구 논문’, ‘기술 논문’, ‘현장 적용 논문’ 등이 있다” “본지 논문은 다른 학술지에 재투고될 수 없다”며 학술지를 표방하고 있다. 이 학술지를 펴내는 체육과학연구원 관계자도 “는 학술지”라며 “연구보고서가 실리는 경우가 있지만, 논문 형식에 맞춰 실리기 때문에 논문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의원은 이에 대해 “은 친선 도모 성격의 논문집이며 학진 등재지도 아니다. 다른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중복으로 싣기도 한다. 무엇보다 두 논문은 내 연구 업적에 카운트 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강남훈 교수노조 사무총장(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은 “업적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그 논문을 읽는 사람들이 해당 학자의 논문 전체를 비교해보지 않는 한 그 논문은 새로운 것으로 읽히게 될 것”이라며 “학술지에 실린 것은 새로운 것이라는 믿음이 뿌리내리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친선을 위한 논문집이라면 학술지로 헷갈리지 않게 이름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번 취재 과정에서 일부 의원이 자신의 논문이 이미 학술지에 실렸음을 알리지 않고, 월간지나 계간지에 논문을 그대로 전재한 경우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는 학술지 게재를 연구 업적의 전부로 치는 한국의 연구 문화에서 좀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경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목원대 교수)는 “한국에서는 월·계간지 기고를 연구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중복 게재가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의 경우 수준 높은 월·계간지일수록 처음 발표되는 논문만을 받거나 기존 학술지에 이미 발표된 논문임을 알린다”고 설명했다.
“김 전 부총리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교수 자질에도 문제가 있는 겁니다. 자신의 연구 업적을 엉터리로 제출한 거니까 징계가 당연하지요. 실제로 그런 사례도 있습니다.”
강남훈 교수노조 사무총장(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은 중복 게재가 적어도 ‘학계의 관행’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광주고등법원은 2004년 중복 게재로 징계를 받은 교수가 제기한 소송에서 “논문 중복 게재는 교원의 본분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고려대 교원윤리위원회는 지난 6월 한 인문대 교수의 논문 중복 게재를 이유로 총장에게 징계위원회 구성을 건의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이 펴내는 은 올해 초 중복 투고가 밝혀지는 연구자의 논문 게재 자격을 박탈하기로 했다.
학회와 학술지 우후죽순 난립
자기 표절이 암암리에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정량적 교수 평가 시스템과 개인의 과욕, 표절에 느슨한 사회적 분위기가 중첩돼 있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부터 일반화된 교수업적평가제는 교수의 과욕을 부추기고 있다. 대학들은 한 해 학술지에 실린 논문 수를 교수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이에 따라 여러 진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은 학회가 급증했다. 학술지를 내기 위해선 학회가 필요한데, 논문을 많이 실어야 하는 교수들이 도처에 학회를 만든 것이다. 학회의 급증은 학술지의 난립으로 이어졌고, 바꿔 쓰고 쪼개어 내고 붙여 쓴 ‘복제·유사 논문’이 양산됐다. 학술진흥재단은 학술지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일정 수치 이상의 논문 탈락률을 유지하는 학술지만 인정해주는 ‘학진 등재지’ 제도를 시행했지만, 약발은 먹히지 않았다. 일부 학술지들이 있지도 않는 논문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한 뒤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높은 탈락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지라 1999년 257개였던 학진 등재지와 등재후보지는 지난해 1145개로, 6년 만에 4.5배가 늘었다. 매년 148개의 학술지가 새로 탄생한 것이다.
강 사무총장은 “대학 사회의 지나친 정량적 평가 시스템이 문제”라고 말했다. 평가 결과는 승진과 연구비 지원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좋은 논문을 썼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논문을 썼느냐’에 따라 교수가 평가되는 분위기에서, 교수들은 혼을 다해 양질의 논문을 써내기보다 다량의 논문을 생산해내기 위해 자기 표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지난 8월3일 교수노조가 연 ‘대학 및 학문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표절 감시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전문가들은 관료나 전문직들이 다니는 특수대학원을 조사하면, 표절 문제는 더욱 광범위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황우석 파동’에 이어 김 전 부총리 사건은 교수 사회의 윤리 불감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과연 이번 사건은 교수들의 학문 윤리를 곧추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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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표절은 사기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김병준 전 부총리의 학문 윤리 의혹이 불거질 즈음인 7월24일부터 8월4일까지 교육부에서 낸 해명 자료는 모두 11건이었다. 하루에 한 건씩 낸 셈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가장 철저한 학문 윤리를 제시해야 할 교육부가 스스로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적 학문 상황에서 다소 생소한 자기 표절을 교육부가 맘대로 곡해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7월29일 낸 해명 자료에서 “학술지 발행기관이 영세한 경우(특히 대학연구소의 학술지) 논문 제출이 미진하여 논문 투고를 독려하는 경우가 많으며, 외부에 발표된 논문을 교내 학술지에 다시 발표하는 사례도 많다. 선배 교수가 후배 교수에게 교육 홍보 차원에서 요청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풍토 또한 그 당시 실정”이라며 중복 게재를 정당화했다.
중복 게재는 자기 표절에 해당한다. 자기가 이미 쓴 논문을 다시 실으면서 새로운 논문인 양 위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표절이 ‘도둑질’로 비유된다면, 자기 표절은 독자에 대한 ‘사기’로 비유된다. 이 때문에 연구자는 자기가 쓴 논문이더라도 연구를 진전시키지 않고 다시 게재할 경우 출처를 밝혀야 한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논문들은 출처가 생략돼 있었다. 강남훈 교수노조 사무총장은 “교외 학술지에 실린 것을 교내 학술지에 싣는 것도 중복 게재”라며 “만약 중복 게재를 허용하는 대학이 있다면, 그건 대학의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했다.
왜 자기 표절은 금지 사항일까. 이는 연구자들의 상호 신뢰에 기반을 둔 협업 연구를 가로막아 학문의 발전을 더디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똑같은 논문이 제목을 달리해 다른 두 학술지에 실린다면, 선행 연구를 조사하는 연구자는 똑같은 논문을 두 번 찾아봐야 하는 헛수고를 해야 한다.
외국 대학에선 표절의 한 유형으로 ‘자기 표절’(self plagiarism)을 포함시키고 학생들에게 ‘윤리적 저술방법’을 교육하기도 한다. 자기 표절에는 △과거 논문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다시 게재하는 것 △한 논문에 들어간 내용을 잘게 쪼개 내는 것 △과거 저작물에 나온 문장·단락 등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전재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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