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을 지지하거나 관심이 많은 20·30대 9명의 표적집단좌담회(FGI)… 대표 공약은 ‘구호’일 뿐… 지지자 4명 중 3명 “대선 지지 안 할지도”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보통 사람들’ 눈높이에서 바라본 민주노동당은 어떤 모습일까.
은 5·31 지방선거 이후 위기의 수렁에 빠진 민주노동당을 집중 조명하면서, 민주노동당에 관심이 많은 이들과 표적집단좌담회(FGI·Focus Group Interview)를 열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거나, 현재는 다른 정당을 지지하지만 한때 민주노동당을 지지했거나, 최소한 민주노동당에 대해 관심이 많은, 서울에 살고 있는 20·30대 ‘장삼이사’ 9명이 마주 앉았다. 2시간 가까이 격론이 벌어졌다.
인기 끌 만한 히트상품이 없다
주로 사무직에 종사하는 회사원과 대학생들이 참석했다. 전문가들 좌담과는 달리, 이들의 입에서는 생생한 삶의 언어들이 튀어나왔다. “이젠 더 이상 참신하지 않다”는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뼈아픈 비판이 있는가 하면, “유독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만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가혹하다”는 반론도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사람으로 치면 ‘고집 센 20대 청년’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했는데, 이는 ‘젊다’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신뢰하기 힘든’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담겨 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공약인 부유세 도입과 무상교육·무상의료 실현에 대해 민주노동당 지지자조차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좌담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플러스가 7·26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직전에 진행했다. 참석자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먼저 민주노동당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이유를 물었다. 민주노동당은 5·31 지방선거에서 기초 13명, 광역 4명이 당선돼 2002년에 비해 지방의회에 많이 진출했다. 그러나 지지세가 강한 울산에서 동구·북구 구청장을 잃었다.
2002년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다가 현재는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정연천(38·회사원)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때는 참신했어요. 영국 노동당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처음으로 좌파 성향의 정당이 얼굴을 내민 터라 눈길을 끈 거죠. 그런데 요샌 비정규직 얘기만 해요. 그러다 보니 의사협회나 한의사협회 같은 이익단체 같아요. 다른 정당은 환경이나 국방처럼 전체적인 얘기를 두루 하잖아요. 민주노동당은 국민들에게 인기를 끌 만한 히트 상품이 없어요.” 민주노동당의 고군분투는 정씨 가슴에 별로 와닿지 않은 것 같았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 국회 처리를 힘으로 저지한 장면만이 깊이 남아 있었다.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곽현성(32·회사원)씨는 다른 측면에서 ‘히트 상품 부재’를 지적했다. 곽씨는 “어쨌든 민주노동당이 10석을 확보했는데, 뭘 했는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떠난 거 아닐까요? 민주노동당을 알게 된 계기는 권영길 의원 때문이었어요. 2002년 대선 때 토론회에 나와 중산층 이하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죠. 노회찬 의원도 총선 때 토론회에 나와 많은 지지를 받았고요. 그런데 두 사람 빼고는 아는 사람이 없어요.” 정책뿐만 아니라 인물 면에서도 대표 상품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민노당에만 왜 높은 잣대 들이대나”
현재의 위기가 일시적이며 ‘큰 선거’ 때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는 반론이 나왔다. 김길연(39·회사원)씨는 “이번 선거는 무조건 당을 보고 찍은 거 아니냐”며 “대선이나 총선 같은 큰 선거 때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민주노동당 지지자인 전수정(33)씨는 민주노동당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여당의 실정 탓에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한나라당 쪽으로 쏠렸다고 말했다.
당원은 아니면서도 민주노동당의 속사정까지 깊이 알고 있는 듯한 이현(34)씨는 새로운 각도의 문제를 제기했다. “다른 정당과 달리 민주노동당이 민주적 공천 시스템을 갖춘 것은 좋은데 과도하게 절차적인 데 집착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지역에서 신망 받고 인기가 좋은 사람이라도 막상 당원들에게 인기가 없으면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될 수 없죠. 그러다 보니 당내에서 당원들이 뽑은 후보가 막상 본선에서 경쟁력이 없을 때도 있지요.” 당원 중심의 정당 운영이 민주적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당심’과 ‘민심’의 괴리 현상에 대한 대비책도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평가 시기를 더 넓혀봤다. 유권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의 존재를 널리 알린 2004년 이후의 민주노동당의 활동에 집중됐다. “자기 색깔을 유지해온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한지연·25)는 대답부터 “변했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게 아니라 민주노총만을 대변한다”(정연천)는 응답까지 편차가 컸다. 한씨는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 기본에서 많이 벗어나는 행동을 해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면서 민주노동당이 약간 다른 모습만 보여도 변했다고 비난한다”며 “유독 민주노동당에만 관대하지 않고 높은 잣대를 들이댄다”고 반박했다.
이현씨는 △노회찬 의원의 삼성 X파일 폭로 △심상정 의원의 론스타 의혹 제기 △주민소환제 입법 등을 구체적으로 꼽았지만, “정당득표율 13%를 안겨준 국민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며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고 점차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부유세·무상교육, 기억속에 가물가물
좌담 참석자들은 민주노동당의 대표적 공약인 부유세와 무상교육·무상진료를 가물가물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거의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부유세는 부과의 정당성에, 무상교육·무상진료는 재원 조달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지 정당에 따른 차이가 없었다. 이현씨만이 “처음엔 당혹스러웠는데 6억원 이상의 주택을 가진 이들에게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는 것을 보면서 그보다 더 엄격한 기준에 따른 대상자에 대해 부유세 부가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재산 많은 사람이 세금을 더 내서 나라를 위해 쓴다면 존경받는 부자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지지자 가운데도 “나름대로 노력해서 모은 건데 부자라고 무조건 나눠야 하는 것은 옳지도 않을뿐더러 공정하게 될까 회의가 든다”(전수정)는 반응이 나왔다. 민주노동당이 나름대로 참신한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관심 끌기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구호 수준에 머물 뿐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어 현실 적용 가능성을 높여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민주노동당의 미래에 관해 물었다. 민주노동당 지지자 4명 가운데 1명을 제외하고는 2007년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당 혹은 후보 간 합종연횡 등 정계 개편이 점쳐지는 상황이라 섣불리 대답하기 힘든 질문임을 감안하더라도, 민주노동당은 비교적 이런 흐름에서 비켜서 있다. 누가 후보가 될지는 불투명하지만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리라는 점을 의심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답을 유보한 이들은 2002년 대선 때처럼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민주노동당의 지지 기반이 튼실하지 않아 외풍에 시달릴 수 있다는 방증이다.
다른 정당과의 길항 관계에서도 이런 흐름이 읽혔다. 좌담 참석자는 지지 정당을 가리지 않고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층이 많이 겹친다고 했다. 가장 먼 곳에 한나라당을 두었다. 한지연씨는 “골수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근접한 평행선을 유지할 것”(곽현성)이라거나 “평행선처럼 보이지만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사안에서 보듯이 두 당의 철학이 다르고 결국은 갈등관계로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2년 집권? 무기력증 턴다면…
민주노동당이 설정한 ‘2008년 다수당, 2012년 집권’이라는 로드맵에 대해서는 참석자 모두 비관적이었다. 지지자조차 “어느 당이나 목표는 크게 잡는 것 아니냐”(한지연)거나 심지어 “집권당이 될 만한 역량이 없다”(전수정)고 냉혹하게 평가했다. 이현씨는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면 확실히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은 아직 없다”면서도 “새로운 변화의 발판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고려해보면 어쩌면 10년 뒤쯤이면 가능할 수 있다고 덧붙였지만, 나머지 참석자들은 두 가지 전제를 달아 그 이후로 전망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된다면.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고질적인 병폐와 무기력증을 털고 다시 일어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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