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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에선 강아지도 헤즈볼라!

등록 2006-08-10 00:00 수정 2020-05-03 04:24

어린이도 안 가리는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학살극에 국제여론이 치를 떤다… 전선은 점점 넓어지고 전투는 격렬해지는 가운데 미국도 슬슬 ‘휴전’ 거론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MK-84 유도폭탄 BSU-37/B.’

지난 7월30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 카나의 한 아파트 건물에 폭격을 퍼부었다. 어린이 30여 명을 포함해 민간인 5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 이날 사건 현장에선 폭격에 사용된 폭탄의 잔해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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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언론보도와 달리 미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8월3일 현장조사를 거쳐 확인된 사망자는 어린이 16명을 포함해 모두 28명이며, 공습 당시 건물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13명이 실종됐다고 발표했다. 애초 숨진 것으로 알려졌던 22명은 건물을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는 게다.) 폭탄의 꼬리 부분으로 보이는 이 잔해에는 일련번호와 함께 영문으로 쓰인 글귀가 있어 폭탄의 ‘원산지’가 어디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게 해줬다.

1996년의 참극 뒤엔 휴전됐으나…

MK-84는 미군이 베트남전 당시 실전에 투입한 재래식 폭탄으로 평균 중량은 약 900kg에 이른다. 자유낙하 운동을 이용해 표적을 맞히는 비유도 무기지만, 미 보잉사가 개발한 통합정밀직격병기(JDAM) 등 유도장치를 장착하면 이른바 ‘스마트’ 폭탄으로 변환이 가능하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지난 2004년 6월 모두 3억1900만달러어치의 정밀유도 폭탄 5천 발을 이스라엘에 제공했는데, 여기에 2500발의 MK-84가 포함됐다. 미 는 당시 보도에서 “(이스라엘에) 제공되는 모든 폭탄은 통합정밀직격병기가 장착돼 미군의 위성항법장치를 통한 정밀 유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카나의 학살극은 지난 1996년 벌어진 잔혹극과 섬뜩하리만치 닮아 있다. 그해 4월18일 이스라엘군은 적어도 17발의 고성능 폭약을 장착한 박격포를 카나 외곽의 유엔군 기지를 겨냥해 퍼부었다. 이 기지에는 당시 레바논 민간인 800여 명이 피신해 있었는데, 이날 포격으로 이 가운데 102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의 절반 이상은 어린이였다.

이른바 ‘분노의 포도’ 작전으로 알려진 이스라엘군의 당시 공세 역시 남부 레바논에 근거지를 둔 헤즈볼라를 소탕하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사건 발생 직후 미 국무부는 헤즈볼라가 민간인을 방패물로 활용했다고 비난했고, 시몬 페레스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헤즈볼라는 유엔을 방패로 삼았고, 유엔도 이를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2006년 7월30일 새벽 1시께 이스라엘이 카나의 3층짜리 아파트를 강타했을 때 사망자 대부분은 잠을 자고 있었다.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던 ‘똑똑한’ 폭탄은 분명 목표물에 명중했을 터인데, 이스라엘 정부는 헤즈볼라를 상대로 전과를 올렸다는 발표를 내놓지 못했다. 참상의 현장을 목도한 저명한 중동전문 언론인 로버트 피스크는 “우리가 어떻게 이런 일이 버젓이 계속되도록 내버려둘 수 있느냐”고 탄식했다.

1996년 4월의 참극은 미국과 프랑스, 시리아 등의 주선을 통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휴전으로 이어졌지만, 2006년 7월의 학살은 아무런 변화를 불러오지 못했다. 사건 발생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되고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비난 발언 수위가 높아졌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즉각 정전’을 촉구하는 선량한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했다.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하기로 했던 회담을 취소하는 등 강력 항의했지만, 이스라엘군은 공습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까지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헤즈볼라다!’ 같은 날 레바논 야로운 마을에선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어린이 둘을 포함해 민간인 5명이 추가로 숨졌다.

베이루트도 1시간 여 만에 24차례 공습

카나 사건 뒤 스스로 내걸었던 48시간 공습 중단 약속도 저버린 채 이스라엘 육군 6개 여단 6천여 명이 박격포와 탱크,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튿날인 8월1일 밤 다시 레바논 국경을 넘었다. 하임 라몬 이스라엘 법무장관은 이날 방송에 나와 “헤즈볼라는 궤멸 위기에 처해 있으며 지상군 병력의 공세를 확대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결단을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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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8월2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대 페니키아의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는 베이루트 북동부 발베크의 한 병원에 헬기를 탄 이스라엘 특수군이 들이닥쳤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부상당한 헤즈볼라 고위인사를 붙잡는 것이 급습의 목적이었지만, 병원을 무대로 1시간여의 치열한 전투 끝에 5명의 전투요원을 붙잡아가는 데 그쳤다. 붙잡힌 이들 가운데 1명은 발베크의 식료품점 주인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스라엘의 공세가 거세질수록 이에 맞선 헤즈볼라의 반격도 불을 뿜었다. 야간 로켓공격을 자제해온 헤즈볼라는 8월3일 밤 이스라엘 북부에 로켓 200여 발을 퍼부어 민간인 8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쳤다. 또 레바논으로 진격한 이스라엘군을 겨냥한 기습공격으로 4명이 목숨을 잃는 등 이날 이스라엘은 지난 7월12일 침공을 시작한 이래 최악의 인명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그렇게 전선은 계속해서 넓어지고, 전투는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만약 베이루트를 공격한다면, 텔아비브를 보복 공격하겠다.”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의 경고에도 8월4일 새벽 1시께 이스라엘은 결국 베이루트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재개했다. 전날의 인명피해에 대한 명백한 보복공세다. 이스라엘군이 1시간여 만에 무려 24차례나 공습을 집중한 베이루트 남부 오우자이 지역에선 동이 터오면서 짙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아랍 위성방송 는 “(이날 오후 현재까지) 베이루트 남부를 중심으로 시내 전역에서 적어도 6차례 거대한 폭발이 이어졌다”며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시리아 국경으로 이어지는 베이루트 북부 해안도로변의 교량 4개도 파괴했다”고 전했다. 이들 다리는 이스라엘의 침공 이후 레바논에서 육로로 시리아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시리아와 연결된 육로조차 끊어버리다

이스라엘군은 이미 레바논 국경에서 6~7km 거리에 있는 마을 20여 곳를 점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군당국은 향후 1만여 지상군 병력을 동원해 국경에서 15km까지를 장악해 ‘안전지대’로 삼을 계획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작전목표 완수에 다가선 것인가?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새로운 중동질서’를 말하던 미국이 슬슬 “분쟁 종식 첫 단계로서의 휴전”을 거론하기 시작한다.



“〈BBC〉는 왜곡보도의 원흉”


의 생뚱맞은 언론비평

이스라엘의 유력 영자지 가 지난 8월2일 생뚱맞은 ‘언론비평’을 내놨다. 아랍권의 시각과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세계 언론이 ‘레바논 사태’를 왜곡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태 격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다.
왜곡 보도의 ‘원흉’으로는 단연 영국 공영방송 <bbc>가 꼽혔다. 는 이 방송이 “사실상 헤즈볼라의 선동기구로 변해가고 있다”며 “<bbc>는 이스라엘이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bbc>는 주의 깊게 취사선택한 ‘시청자 반응’을 통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으로 전세계에서 알카에다에 지원하려는 젊은이들만 늘어나고 있다”는 등의 보도를 하고 있다”며, “빈라덴과 그 일당들에게 새로운 인력풀을 대주는 게 있다면, 그건 이스라엘의 ‘방어적 행동’이 아니라, 선동적이고 지독하게 한쪽으로 편향된 보도를 일삼는 언론들”이라고 공박했다.
는 또 “비뚤어진 논평이나 인터뷰도 나쁘지만 영상 왜곡은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며 “전세계 텔레비전 방송들이 베이루트를 마치 2차 대전 때 대규모 공습으로 잿더미가 된 (독일의) 드레스덴이나 함부르크처럼 보이도록 보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일대 위성사진을 꼼꼼히 보면 헤즈볼라 사령부가 들어섰던 베이루트 남쪽 교외의 일부 건물만 특정해 파괴했음에도, 이들 건물만 반복해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마치 베이루트의 절반가량이 파괴된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고 있다는 게다.
이 신문은 이어 “헤즈볼라의 병력과 무기를 운반하는 데 사용되는 공항 활주로 등 전략적 요충지를 뺀 베이루트 대부분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헤즈볼라가 계획적으로 민간인들 사이에 숨어 있어 극히 어려움에도 이스라엘군은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해 극도로 노력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레바논 민간인 희생자들은 최근 벌어진 여타 국제분쟁과 비교할 때 다행스러울 정도로 적다”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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