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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캐비닛에 처박힌 통상절차법

등록 2006-07-27 00:00 수정 2020-05-03 04:24

올해 초 권영길 의원 등 40명 공동 발의했지만 진전 전혀 없어… 비준동의권 넘어 체결동의권 적극 행사할 수 있는 발판 마련해야

한미 FTA와 협상의 미래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국회도 답은 알고 있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FTA 협상을 개시한다고 공식 발표한 지난 2월2일, 우연히 대한민국 국회에 법안 하나가 발의됐다. ‘통상협정의 체결절차에 관한 법’(통상절차법)이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대표발의했지만 여야 의원 40명이 공동발의자로 나섰다.

권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 FTA의 일방적 추진을 위해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및 스크린쿼터 축소 과정에서 드러난 통상협정 체결 관련 국내 절차 문제점의 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을 둘러싼 문제점을 정확하게 예견했던 것일까?

쌀 협상 비준안 처리과정의 뼈아픈 교훈

그러나 법안 발의 소식은 언론 등을 통해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무시됐다. 법안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캐비닛에 처박혀 있다. 통상절차법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전농, 민교협, 전국민중연대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국제통상협정체결조약 제정을 위한 시민단체 연석회의’와 권영길 의원실이 1년 넘도록 준비한 법안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쌀 협상 비준안을 처리하면서 나타난 문제점들이 크게 작용했다. 권 의원은 “국회 상임위의 심의는 무의미했다. A4용지 10여 쪽, 그야말로 제목밖에 없는 쌀 비준안을 상정하는 날이 돼서야 정부의 보고가 있었다. 상임위 토론이라는 것도 의원 1인당 10분씩 한두 번 물어보면 시간이 다 갔다. 전혀 협상 내용을 모른 채 비준안을 처리했다”고 말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는 ‘쌀 협정’ 비준 동의안 때처럼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도 철저히 배제됐다. 정부의 잘못도 있지만 통상절차법 등의 마련을 통해 자신의 책임과 권리를 행사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은 국회의 탓이 더 크다. 여전히 ‘통법부’(입법부가 아닌 정부의 법률과 정책을 무사 통과시켜주는 곳)라고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40명의 의원이 발의한 통상절차법의 내용은 한미 FTA의 추진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따져보면 그 중요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의원들은 통상절차법 제안 이유를 “통상협상 정보 등이 공개되지 않고 국회의 정부에 대한 견제·조정·감독이 매우 미흡하며 이해당사자 등 국민의 의사가 협상에 반영되지 않고 있고 통상 협상을 위한 관계 법률조차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법안의 내용은 △통상 정책 수립 등을 실행하는 국무총리 산하 ‘통상위원회’ 구성 △사회적 합의를 위한 민간 자문기구의 구성과 참여의 제도적 보장 △국회 내 통상특별위원회 구성 등 크게 3가지다. 특히 정부가 조약을 추진하려고 할 때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국회는 조약 추진 계획의 변경을 요구하거나 협상 추진 방향, 조약의 범위 등에 조건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가 협상의 진행 상황을 국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이해당사자 등 국민에게도 협상의 중요 진행 상황을 수시로 설명하도록 했다.

답답한 통상협상 현실을 뚫어라

현재 정부는 일방적으로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다. 통상절차법은 한마디로 이러한 문제점을 예방하자는 제안이다. 이는 헌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저절로 나오는 답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 60조1항은 “국회는… 우호통상항해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돼 있다. 국회가 그동안 보수적으로 비준동의권만을 행사해왔던 관행에서 벗어나 체결동의권 등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자신들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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