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3월 보고서’의 조작 의혹 제기한 권영길 의원실 정책보좌관 기고… 한미 FTA 체결 직후 GDP 0.42% 상승한다는 주장도 시연 결과 믿기 힘들어
▣ 이승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 정책보좌관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구호에 익숙한 우리는 정부의 갑작스런 한미 FTA 추진 소식을 듣는 순간, 이것이 가져올 무역흑자 증가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게 된다.
수출이 늘면 공장도 잘 돌고, 무역흑자가 늘면 그만큼 우리의 월급봉투도 두둑해질 것이라는 70년대 장밋빛 환상이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73억달러가 47억달러로 둔갑
환상은 지난 2월2일 갑작스레 참여정부가 한미 FTA 추진 공식 선언과 함께 제시한 경제효과였다. “중국위협론 대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업종 전환” “최고의 서비스업 미국과의 경쟁, 확실한 외부 충격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는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았지만, “1.99% 국내총생산(GDP) 증가와 고용 10만 명 증가” 수치는 양극화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건국 이래 최대 경제협상인 한미 FTA의 매력은 무엇에 근거한 것일까? 한미 FTA 경제효과에 대한 정부 주장은 국가 최고 싱크탱크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보고서를 인용한 것이다. 비록 무산됐으나, 2월 한미 FTA 공청회에 제출된 KIEP 보고서는 GDP 상승과 고용 창출을 비롯해 후생 수준과 생산의 일정한 상승을 포함한 경제적 효과를 예측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대미 무역흑자 증가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오히려 대미 무역흑자가 한미 FTA 체결 직후 42억달러 감소, 향후 51억달러 감소에까지 이른다고 밝혔다. 참고로 한국무역협회의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는 107억5700만달러를 기록해 1998년 24억달러 대미 무역흑자 이후의 증가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KIEP 설명대로라면 한미 FTA 체결 뒤 우리 대미 무역흑자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다. 나아가 흑자전환 연도 다음해인 1999년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 보고서는 10만 고용 창출 또한 긴 시간이 필요하며, 체결 직후 오히려 8만5천 명이 감소하고 GDP도 단기적으로 0.42%라는 평균 수준의 증가 추세 유지에 불과함을 말해주고 있다. 원하는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연구자의 심정이 어느 수의학자만큼이야 하겠는가만, 이미 서둘러 한미 FTA 추진을 선언한 정부를 제대로 지원 사격하지 못한 국책 연구기관의 심정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사전영향 평가·피해대책 수립 등 기본 선행 연구는커녕, 얼마 안 되는 보고서에만 의존해 한미 FTA를 추진하는 정부의 섣부름에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한미 FTA 경제효과에 대한 유일한 판단 근거인 KIEP 보고서조차, 그 내용이 어떤 근거와 방식에 기반했는지 알 수 없었다. 전문가 자문을 통해 직접 검증하고 싶었으나, 검증 불가능한 것이었다.
궁금증 하나는 풀렸다. KIEP 보고서는 1월18일 KIEP 홈페이지 ‘오늘의 세계경제’란에 사전 발표된 것이다. 보고서에는 연구 결과가 일반균형연산(CGE·Computable General Equilibrium) 모형에 기반하고, 이를 위해 KIEP가 미국 퍼듀대학에 고가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거의 독보적으로 사용하는 세계무역분석프로젝트(GTAP·Global Trade Analysys Project) 프로그램이 동원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CGE’ ‘GTAP’. 우리에게 생소한 이것들에 과연 국가의 장래를 맡겨도 될까?
프로그램의 신뢰도는 50% 정도
지난 2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회의에서 권영길 의원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이 프로그램의 제출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KIEP는 라이선스와 지적소유권을 이유로 거절했다. 여러 차례 설전 끝에 3월 말경 KIEP 쪽은 의원실에 찾아와 CGE와 GTAP를 전문가적 식견을 동원해 설명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신뢰도에 대한 질문에 연구원들은 국가 간 무역효과를 총량적으로 도출하는 프로그램이 GTAP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있고, 신뢰도 또한 50%정도밖에 되지 않아, 학계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학자적 고백을 했다.
이로 인해 오히려 한미 FTA 경제효과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풀리지 않는다. 더욱이 GTAP 프로그램상의 통계수치는 전문가가 도덕성을 문제 삼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마사지’(통계수치 조작을 일컫는 은어)를 할 수 있다는 연구원들의 푸념 섞인 발언은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결국 부득불 라이선스 문제로 이 프로그램의 의원실 대여가 힘들면 연구원 방문 사용을 허락해달라고 부탁했다. 연구원들은 이를 약속했다. 물론 KIEP 쪽의 연구보고서에 대한 조작 의혹을 제기한 4월11일 이전의 상황이었다.
조작 의혹의 전말은 간단하다. 만족스럽지 못한 2월 보고서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KIEP가 야심차게 준비한 3월 보고서(3월3일 ‘한미 FTA 의의와 영향에 관한 세미나’)에 핵심 사항인 무역수지가 빠진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다. 그 설명 과정에서 73억달러 대미 무역수지 흑자 감소 수치를 47억달러로 축소하고, 이조차 공개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월간 5월호 관련기사 참고). KIEP 쪽은 여러 해명을 했으나, 그 해명 또한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고가의 GTAP 프로그램과 KIEP 자체 데이터가 없는 한 KIEP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권영길 의원실은 조작 여부의 검증을 떠나, 정부의 한미 FTA 경제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약 500만원을 내고 GTAP 프로그램을 구입했다. 그러나 구입한 고가의 프로그램은 한동안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KIEP가 프로그램에 입력한 데이터가 KIEP 쪽의 지적재산권 주장으로 인해 입수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문 세계에서 통용되는 ‘객관적 검증 가능성’이 KIEP의 독점화된 지식권력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한미 FTA 협상이 ‘반론과 검증을 통해 발전하는 과학의 영역’이 아닌, ‘질문이 불가능한 신성한 신념의 영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은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핵심이 누락된 일부 KIEP 데이터만으로 GTAP 프로그램을 자체 시현하는 과정에서, 가정 설정의 임의성에 의한 이 프로그램의 여러 한계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이후 권영길 의원 정책보고서 발표 예정). 또한 같은 연구 결과에 대한 KIEP의 설명이 제출한 자료에 따라 차이가 나는 점도 적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답답한 조건과 한계 속에서, 우리는 한미 FTA 체결 직후 0.42% GDP 상승이라는 KIEP의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GDP가 -0.32% 감소할 수 있다는 예상외의 결론이 나와 KIEP에 문제를 제기한 바도 있다. 그러나 KIEP에서는 0.42%는 실질GDP이며, -0.32%는 경상GDP이므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했다. 경상GDP 0.15% 증가조차 -0.32%로 나타난 부분이나, 경상GDP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구입하자 원데이터 제공 거절
얼마 전 KIEP는 자신들의 원데이터는 ‘지적재산권’으로 인해 제출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의원실로 전했다. 공문에는 우리가 요청한 공개 검증에 응한다는 소식이 포함돼 있기는 했다. 물론 KIEP가 제안한 방식을 통해 당일 현장에서 검증을 완료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의혹을 제기한 것은 의원실이고 궁금해하는 것은 국민이다. 모든 자료가 공개되어도 부족한 것이 한미 FTA 연구다. 그런데 KIEP는 가장 중요한 핵심 데이터의 공개를 차단했고, 자신들에게 검증해도 될 것과 안 될 것을 스스로 규정하고 있다. 지식권력의 깊은 늪에 빠진 정부와 KIEP가 조작 의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 개인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차단되는 현실에 비애를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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