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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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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FTA 프리미엄’

등록 2006-07-27 00:00 수정 2020-05-03 04:24

김현종 본부장이 말하는 한미 FTA의 필요성…을사늑약의 교훈을 잊었는가… 미국시장을 다시 공략하고 서비스 산업의 선진화를 이루는 절호의 기회

한미FTA 논쟁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인 조선 말, 한반도에는 개방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개화파와 수구파 간의 알력으로 국론은 분열됐으며, 결국 조선은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을 통해 수동적·굴욕적인 개방을 강요당한다.

이후 조선왕조는 열강에 의해 좌우되는 비참한 쇠락의 길을 걷다가 결국 을사늑약을 통해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한다. 만약 당시 우리 선조들이 개방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혜안이 있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듯 역사는 개방을 택한 국가가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지만, 쇄국을 하면서 성공한 나라가 없다는 것을 거듭해서 보여준다.

캐나다·멕시코의 고용 증가를 보라

대외의존도가 70%를 넘는 우리에게 개방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이 있다면 그것은 적극적으로 개방을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수동적으로 개방에 휩쓸려 갈 것인가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일 뿐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정부는 전략적으로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한-미 FTA가 있다.

그럼 왜 미국이고, 왜 지금일 수밖에 없는가. 미국 시장은 1조7천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고의 규모로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모두 합한 것보다 크다. 또한 미국은 각국의 경쟁력이 여실히 판가름 나는 최대의 ‘테스트 마켓’(test market)으로 미국 시장에서 자국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 값에 팔 수 있어야만 진정한 경쟁력을 갖춘 경제강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미국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큰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상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계속 하락해 1995년 3.3%에서 2005년에는 2.6% 수준까지 떨어졌다. 수출증가율 감소는 더욱 심각한데 지난해 중국과 인도가 대미 수출을 각각 23.8%, 20.9% 늘린 반면 우리의 수출은 역으로 5.2% 감소했다.

만약 우리가 미국의 관세를 철폐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미국 시장에서 그만큼 경쟁국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는 ‘FTA 프리미엄’을 갖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미 FTA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국 시장을 다시금 공략하고,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세계 수준의 기술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해법인 것이다.

물론 관세 인하를 통한 수출 확대만이 FTA 효과의 전부는 아니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의 성장기반을 확충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과 FTA 체결시 고용이 10만 명 내지 55만 명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됐는데, 청년 실업이 90만 명에 달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한미 FTA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FTA의 고용창출 효과는 이미 체결된 FTA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뒤 10년 동안 캐나다와 멕시코의 고용은 각각 315만 명과 993만 명이 늘었다. 물론 양국 고용 증가의 원인을 모두 NAFTA에 돌릴 수는 없겠지만, NAFTA가 두 나라의 경제적 역동성을 증가시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을 가져왔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물가 하락, 국가 신용도 상승…

한미 FTA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만, 미국과의 FTA가 결코 수출업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한미 FTA는 무엇보다 소비자를 위한 것이며, 국민 개개인의 소비생활에 손에 잡히는 혜택을 가져온다. 우리나라의 식료품 물가 수준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쇠고기가 1kg당 43.7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비싸며, 감자와 사과는 각각 세계에서 두 번째, 세 번째로 비싸다. 이렇듯 비싼 식료품 가격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장바구니 물가를 낮춰 서민의 숨통을 틔우고 소비자의 후생을 높인다는 사실도 한미 FTA를 추진하는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다.

또한 한미 FTA는 우리 사회 전반에 ‘글로벌 스탠더드’(세계 표준)를 도입해 산업과 제도의 선진화를 가져올 수 있는 호기가 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서비스업은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외 경쟁에 노출된 적이 없어 효율성이 주요국에 많이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취약한 서비스 부문으로는 우리 경제의 선진국 진입이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할 때, 국내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미국과의 FTA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미 FTA는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에 기여해 경제 전반의 고부가가치화를 가져올 것이다.

월마트 코리아를 인수하고 중국에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해 토종 할인점의 매운 맛을 보여주고 있는 이마트나, 매직 퍼레이드로 대표되는 소비자 눈높이의 볼거리를 개발해 세계 6위 테마파크로 도약한 에버랜드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개방과 경쟁은 국내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특히 그 자체로 중요할 뿐 아니라 제조업의 경쟁력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가진 금융, 물류, 법률 등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은 한미 FTA를 기회로 삼아 우리가 전략적으로 성장시켜야 할 분야이기도 하다.

한미 FTA는 더욱 중요하고 광범위한 보이지 않는 긍정적 효과도 가져온다. 우선 국가 신용도가 상승해 216억달러 내지 319억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물론 외채에 대한 이자 부담을 187억원 내지 374억원 경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칠레의 경우에도 미국과의 FTA 체결로 국가 신용등급이 ‘A-’에서 ’A’로 상승했고 이에 따라 외국인 직접투자(FDI)도 44억달러에서 76억달러로 2배가량 증가했다.

사회안전망에 최선을 다할 것

한미 FTA는 개방을 통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주도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 정부는 협상 타결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되, 우리가 지켜야 할 부분은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다. 또한 협상 과정에서 국회와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최대한 반영해나갈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미국과의 FTA에 수반되는 분야별 문제점에 대해 보완 대책을 마련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농업 분야에는 119조원 규모의 농업농촌기본대책이 마련되어 있으며, 제조업의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최근 무역조정지원법을 제정했다. 우리가 추진하는 성장은 과거와 달리 단순한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 수준까지 높이는 동반 성장이다. 정부는 FTA를 통해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동시에, 소외 계층을 돕고 더욱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짜내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먼저 변하지 않으면 변화를 강요당하는 시대이다. 구한말 우리는 도도한 세계의 조류에 애써 눈을 감고 쇄국이라는 순간적인 만족에 젖어 을사늑약이라는 치욕적인 변화를 강요당했다. 조선 말 역사의 교훈을 잊고 또다시 변화를 강요당하겠는가, 아니면 우리 손으로 우리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나가겠는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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