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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투혼’보다는 ‘개인기’다

등록 2006-07-06 00:00 수정 2020-05-02 04:24

개인 기술과 공간지각 없는 체력과 정신력은 강팀에게 통하지 않으리… 한국 축구의 근대적 정체성을 해체할 수 있는 새롭고 장기적인 전략을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기대와 희망을 안고 ‘2006 독일 월드컵’에 도전한 한국 대표팀은 아쉽게도 16강에서 탈락했다. 원정 첫 승과 아트사커 레블뢰 군단 프랑스와의 무승부 등 적잖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마지막 스위스전에서 분패함으로써 16강 고지를 넘지 못하고 말았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개최국의 이점을 안고 4강이라는 기적을 일궈냈지만,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 무대에서 16강에 진출한다는 것은 선진 축구로 가는 한국 대표팀의 또 다른 도전이자 목표일 법하다. 역대 월드컵 경기에서 초반 두 경기에서 승점 4점을 얻은 팀들은 대부분 16강에 진출했다. 이미 승점 4점을 얻은 한국 대표팀 역시 마지막 상대인 스위스가 난공불락의 막강한 팀은 아니었기에 어느 때보다 16강 진출의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결국 한국 대표팀은 스위스의 두터운 조직력을 넘지 못하고 2-0으로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질 경기를 지고 만 것

사실 스위스전 패배의 원인은 심판의 오심이나 스위스 선수들의 탁월한 능력보다는 한국 선수들 능력의 한계에 기인한 바가 크다. 미디어에서는 시종일관 불리한 판정을 하고 결정적으로 두 번째 골의 오프사이드를 인정하지 않은 심판의 오심이 한국의 16강 진출을 좌절시켰다고 애써 변명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은 질 경기를 지고 만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이 아닌 생생한 공간을 지각할 수 있는 경기장에서 직접 스위스전을 관전한 필자가 판단해보았을 때, 스위스전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선수들의 개인 능력과 대응 전술의 부족에 있었다. 스위스는 애초부터 한국의 좌우 윙포워드의 측면 돌파를 차단하기 위해 미드필더진을 폭넓게 포진시키고, 미드필더와 수비진의 간격을 좁게 형성했다. 측면으로 빠지는 패스를 차단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인방어를 했고, 패스 루트가 차단된 한국 수비진들과 미드필더들의 실속 없는 오픈 공격을 유도했다. 개인 능력을 통한 창의적인 그라운드 패스와 빈 공간으로의 침투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이 할 수 있었던 공격 루트는 일종의 요행을 바라는 오픈 공격밖에 없었다. 측면 크로스의 경우 대인방어가 있는 상황에서 목표가 설정되지 않은 채 시도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공간이 열린 상태에서 시도된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공간과 위치를 고려하지 않는 ‘뻥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가 재연되는 순간이었다.

스위스전에서 실점한 2골과 토고·프랑스전에서 실점한 2골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수비수들의 자신 없는 대인방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공격에서 공이 잘려 역습을 당할 때, 한국 수비수들은 지역방어를 위해 물러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을 갖고 있는 선수에 대한 적극적인 대인방어나 자신 있는 태클은 현저하게 부족했다. 스위스전에서의 두 번째 실점이나 프랑스전에서의 실점은 아쉽게도 한국 수비수의 발에 맞고 굴절되면서 노마크 상황을 만들어준 데 따른 것이지만, 그 과정을 복기해보면 결국 수비수들의 적극적인 태클과 대인방어 기술의 부족에 기인한다. 한국 수비수들의 지역방어는 전술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대인방어 기술의 한계에 따른 차선책이었던 셈이다. 또 이영표를 제외하고는 공격 라인으로 적극적으로 침투하려는 수비수들의 시도도 거의 없었다.

한국의 16강 탈락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이런 문제들이 왜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그 원인으로 해외 빅리그에서의 실전 경험 부족과 경쟁력이 부족한 국내 리그의 축구 환경을 지적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 역시 한국 사령탑을 떠나는 기자회견에서 풍부한 국제 경기 경험과 유망주들의 빅리그 진출을 한국 축구의 대안으로 꼽았다. 그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한국 축구의 유망주들이 ‘성장 멈춤’이라는 현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유럽리그로 진출해 실력 있는 선수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빅리그 진출이 하고 싶다고 해서 자명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섣부른 빅리그 진출이 화를 부른 선수들의 경우도 종종 있다. 문제는 유럽 빅리그로의 진출이나 세계 유수의 팀들과의 A매치 경험을 쌓는 기회를 어떻게 만드는가에 있다.

일본 우익신문이 부러워했지만…

한국 축구의 특징과 정체성을 규정하는 오랜 명제들이 있다. 강인한 정신력, 강한 승부 근성을 유지하는 투지, 지칠 줄 모르는 체력 그리고 강한 애국심. 독일 현지에서 만난 세계 축구팬들에게 한국 축구의 장점을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빠르고 투지가 넘친다고 말한다. 거기에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각별하다고 부연하기도 한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도전사를 보면 세계 선진 축구에 대항해 온몸으로 안간힘을 썼던 가슴 아픈 구절들이 떠오른다. “경기장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열심히 뛰겠다.” “몸을 사리지 않는 붕대 투혼.”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태극전사.” 사실 이런 구절들이 한국 축구의 능력을 평가하는 모든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한국 축구의 경쟁력을 말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숙명적인 정체성이 되고 말았다. ‘2006 독일 월드컵’을 홍보하는 모 이동통신사의 구호가 되어버린 ‘투혼’이라는 말 역시 한국 축구의 월드컵 도전 정신을 압축적으로 대변해준다.

그러나 과연 투지, 정신력, 애국심, 투혼으로 한국 축구가 선진 축구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물론 정신력과 투혼은 월드컵 선전을 위한 중요한 요인이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일본 우익 신문의 한 스포츠 칼럼니스트는 한국 축구의 강한 정신력과 애국심을 거론하면서 일본 축구가 본받을 점으로 말한 바 있다. 그는 일본 축구 영웅 나카타에게 경기 직전에 행해지는 국가 연주에서 일본의 기미가요를 우렁차게 불러줄 것을 요구하면서 한국 선수들처럼 일본 선수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비장하게 기미가요를 부르면 일본 축구는 훨씬 더 강해질 것이라고 강변했다. 한국 축구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자 정체성이 되어버린 이 특유의 ‘정신력’과 ‘투지’라는 근대적 언어는 이제 한국 축구의 글로벌화와 선진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축구가 유격훈련이 아닌 이상 정신력과 체력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탈근대 시대의 축구에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승리를 위해 체력 훈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2002년 히딩크의 전술 역시 한국 축구의 기술적인 문제들은 단기간에 보완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체력과 정신력이 축구 경쟁력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2010 남아프리카 월드컵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무엇보다 한국 축구의 근대적 정체성을 해체할 수 있는 새롭고 장기적인 전략이 구상돼야 한다. 그 핵심은 개인의 기본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기술 연마’와 공간과 위치를 이해하는 반복적인 훈련에 있다. 물론 체력을 소홀히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 능력과 공간지각이 없는 체력과 정신력은 강팀을 만날을 때 통하지가 않는다. “아깝게 16강 탈락했다”는 통설 안에 자명하게 언급된 바로 이 ‘아깝게’라는 한국 축구 도전사의 반복적인 결과는 주술적 저주라기보다는 기술적 능력의 한계라는 과학적인 근거에 기인한 것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 “기술이 없으면 정신력”이라는 집단적인 호명 이데올로기는 이제 한국 축구의 경쟁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운명의 비타민, 감각과 창의력

한국 축구는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회장의 언급대로 정말 아쉽게 16강에 탈락했다. 아드보카트의 덕담대로 분명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지긋지긋한 “아쉽다”라는 말과 결별하기 위해서는 축구의 기본기에 충실한 개인 능력과 창의적 사고력 향상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애국심’이라는 집단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축구를 즐기면서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고, 패스와 침투의 공간 미학을 이해하는 감성적·감각적 에너지가 충전돼야 한다. 한국 축구가 정신력과 투지라는 필요조건 속에 감각과 창의력이라는 충분조건을 채워넣는 능력이야말로 한국 축구를 업그레이드할 ‘운명의 비타민’이지 않을까?



왜 이을용 선수는 벤치를 지켰나요

떠나신 아드보카트 감독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묻고 싶은 몇 가지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떠난 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님, 스위스전에서 왜 이을용 선수를 쓰지 않은 것입니까? 스위스전 선발명단이 나왔을 때, 무언가 허전하다 했습니다. 갑자기 박주영의 얼굴이 보이는데, 그러면 누군가 빠졌는데 누군지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조재진, 이천수, 박지성, 감독님이 애용하는 공격수 트리오는 모조리 선발로 나와 있었습니다. 김남일과 이호 선수도 있으니 도대체 누구인가, 곰곰이 생각하니 이을용 선수가 빠진 것 아니겠습니까. 토고전, 프랑스전에서 남부럽지 않은 활약을 했던 이을용 선수가 왜 빠졌나 의아했습니다. 혹시나 부상인가 싶었습니다. 아니면 ‘을용타’로 불리는 이을용 선수의 타격술을 염려해서 벤치에 앉힌 것인가, 별의별 생각이 스쳤습니다. 다행히 교체 선수로 나온 이을용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부상은 아닌가 보다 했습니다. 언젠가는 쓰겠지 했습니다.
감독님께서 애지중지하시던 이호 선수는 스위스전에서 그저 그런 플레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감독님의 감식안을 믿었습니다. 한국이 전반에 한 골을 먹었으니 후반에는 공격력을 강화하겠지, 더블 볼란테 중 한 명은 빼고 이을용을 넣어서 공격을 강화하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70분이 흘러도, 80분이 지나도 이을용은 끝내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반면 이호 선수는 세 경기 모두 선발로 나와서 거의 풀타임에 가까운 248분을 뛰었습니다. 스위스전 전?후반?이영표 선수도 교체되는데, 이호 선수는 끝까지 뛰더군요. 이호 선수야말로 아드보카트호의 왕자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드보카트호의 또 다른 왕자도 있습니다. 김동진 왕자님 말입니다. 사실 첫 경기에 송종국 선수가 나왔기에, 흥미진진했지만 반신반의했습니다. 정신없이 토고전 전·후반이 지나고 한국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곰곰이 그라운드를 살펴보니 22번의 활약이 새삼 눈에 들어왔습니다. 잊었던 22번 송종국이었습니다. 송종국은 토고 공격의 맥을 끊는 역할을 준수하게 소화해냈습니다. 이렇게 괜찮은 활약을 했던 송종국이 프랑스전, 스위스전에서는 1분도 뛰지 못했습니다. 감독님의 선택은 김동진이었습니다. 김동진을 왼쪽 윙백으로 쓰면서 이영표는 오른쪽 윙백으로 이동했습니다. 조 본프레레 감독 시절,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영표의 오른쪽 윙백 기용 말입니다. 다행히 이영표는 오른쪽에서의 활약이 괜찮았지만, 과연 김동진을 기용하기 위해서 그런 모험까지 해야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감독님의 용병술을 해석하면, 김동진은 절대적인 주전인데 경고 누적 때문에 첫 경기에 나올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송종국을 기용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동진이 다행히 괜찮은 활약을 했지만, 이영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송종국을 완전히 배제할 만큼 빼어난 활약을 펼쳤는지는 의문입니다.
한국은 세 경기 모두 답답한 전반전을 보냈습니다. 전반이 끝나면서 관중석에서는 “안정환! 안정환!”을 외치는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안정환은 토고전에서 역전 중거리 슛을 넣으면서 해결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안정환을 ‘슈퍼 서브’로 활용하는 전술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슈퍼 서브에게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토고전에서 안정환은 하프타임에 교체됐지만 프랑스전에서는 후반 27분, 스위스전에서는 후반 17분에 교체됐습니다. 20분, 30분은 무언가를 보여주기에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토고전에서 안정환이 나오면서 공격의 연결이 원활해졌던 것을 감안하면, 너무 늦은 교체 타이밍이었다는 아쉬움을 떨치기 힘듭니다. 더구나 안정환은 스위스전에서도 괜찮은 슈팅 하나를 날렸습니다. 물론 월드컵 등 주요 경기에서 안정환의 골이 대개 후반 20분 이후에 터져나왔다는 사실도 압니다. 하지만 안정환이 기용되지 않는 시간에 안정환처럼 골을 터뜨려주는 다른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안정환의 기용을 그렇게 미뤘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안정환의 체력이 문제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감독님의 용병술에 훌륭한 점도 많았습니다. 토고전 안정환의 골, 프랑스전 설기현의 어시스트는 감독님의 마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의문도 적지 않았습니다. 모두 보내는 마음에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분위기라 답답한 마음에 여쭤보았습니다. 물론 아무리 외쳐 물어도 떠나신 님의 침묵은 계속되겠지요. 참, 감독님이 가시는 러시아의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호, 김동진 선수도 함께 가더군요. 가시는 길마다 행운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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