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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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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 대의명분을 믿었지만…

등록 2006-07-06 00:00 수정 2020-05-02 04:24

배철은 민단 선전국장이 말하는 ‘역사적 화해가 백지가 된 과정’…“파장이 이렇게 커질 줄 예상 못해… 일본 내 반응은 충격적”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총련과의 화해를 두고 사전에 내부 논의가 전혀 없었나?

=민단과 총련 양쪽 중앙위원회 차원에서 회의나 교섭 등은 이전부터 해왔다. 그러나 ‘5.17 공동성명’에 대해선 5월15일 지방본부 단장들로 구성된 ‘중앙집행위원회’(중집위)에서 사전 협의가 없었다. 규모가 비교적 큰 11개 지방 및 산하단체인 상공회, 체육회, 부인회, 청년회 간부로 구성되는 중집위는, 최고결정기관인 연차 중앙대회 다음으로 의사결정권을 지닌 단위다. 여기에 15일까지도 아무 말이 없다가 16일 석간신문에 “다음날 ‘공동성명’이 나올 것”이라고 보도되니까, 지방본부 단장들이 당혹스러워했다.

일본 언론의 오보로 혼란 가중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서만 불만인가?

=공동성명 내용에 그동안 민단의 기본적 활동인 △지방참정권 △탈북자 지원제도 △모국 방문 등 세 가지 사항이 들어가지 않았다.

6·15와 8·15 행사가 주목적으로 돼 있으니, 그건 ‘민단 주도’가 아니라 ‘총련 주도’라는 의견이 있었다. 민단이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거다. 이건 민단이 앞서 말한 세 가지를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총련과 화해했다고 왜곡 보도한 일본 언론에 문제가 있었다. 오보가 혼란을 가중시켰다. 6·15 행사를 겨냥해 5월17일 졸속으로 합의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런 반응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나?

=‘대의명분’이 있다고 믿었다. 조국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 분단조국의 통일이란 민족적 과제 말이다. 같은 민족의 두 단체가 왜 이를 위해 하나가 되지 않고 대립하느냐는 문제의식이었다. 본국에 앞서 통일돼 ‘통일 모델’이 되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 단장님 마음까진 모르니 내가 뭐라 단정할 수 없으나, 단장님도 파장이 이렇게까지 크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취임 3개월 정도였고….

그래도 일본 내에서나 언론이 “총련과 똑같이 되는 거 아니냐” “총련 산하단체 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건 좀 충격적이었다. 기자회견에서 단장님은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총련을 설득해 해결을 위해 협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일본 사회의 현실은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건가?

=‘백지 상태’ ‘백지화’란 말은 어디까지나 구두로 이야기한 것이다. 해석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민단도 총련도 공동성명 정신은 남아 있다. 함께 논의하는 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런 것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사안에 대해 임시 중앙대회에서도 애매하게 맺어져 불만이 더 커졌다. 공동성명 찬성파도 반대파도 모두 민단 단원이고 간부다. 민의를 받아들여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는지를 중앙본부가 보여줘야 한다.

중앙대회 소집 건은 확실히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48개 지방본부의 인구 비례별 배정 구성원 총 530명 가운데 과반수의 서명으로 가능한데, 반대파는 대회를 열어서라도 집행부 총사퇴를 요구하려 한다. 이게 과연 과반수의 서명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최 여부가 빨리 결정돼야 한다. 오는 10월21일로 예정된 창립 60주년 행사 준비도 그렇고, 이런 상황에선 실무가 안 된다.

일본 사회가 민단과 총련의 화해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일본 사회 전체가 고이즈미 총리 집권 이후 완전히 보수화됐다. 우파 세력이 강해졌다. 일본의 국민감정을 볼 때 납치·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해 북한에 대한 나쁜 감정이 보통이 아니다. 그 감정을 총련에 대해서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일본 사회는 “북한과 관련 있는 총련과 악수를 하다니…” 하면서, 민단도 일본에 직접적으로 해가 될 수 있다며 공안에서도 앞으로는 민단을 감시 대상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꽃구경’보다 공동성명 먼저 나온 게 문제

총련의 반응은?

=올해 6·15와 8·15 행사를 공동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에 유감의 뜻을 밝혔지만, 이에 대해 추궁하거나 문제 삼지는 않았다. 과거와 달라진 면모다. 하나하나 꼬집고 따지기보다는 너그러워졌다. 총련이 민단과 손을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비정치적으로 총련과 민단 중앙위 직원들이 식사라도 나누며 교류해나간다거나, 그 흔한 일본의 ‘하나미’라는 꽃구경도 하면서 무르익어가는, 어떤 밑으로부터의 무드가 고조되지 않은 채 공동성명부터 나온 게 문제였다. 민족이 손을 잡고 나가는 정신은 어디까지나 내부적으로 쌓아나가는 게 필요하다. 제대로 정리가 안 되면 총련과 교류하자고 한 것이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지 몰라 걱정이다. 정치성에만 몰려가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낀 계기가 될 것이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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