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어른말 듣고 등록금 내거라 잉~

등록 2006-04-20 00:00 수정 2020-05-02 04:24

대학생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기보다는 ‘초딩취급’하는 대학당국… 단식·삭발·총장실 점거 등 봄철 대학가 투쟁의 근본불씨로 작용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입시 지옥을 뚫고 대학에 합격한 뒤 제일 먼저 손에 쥐어지는 것은 일곱자리 숫자의 고지서다. 고등학교 때의 학원 영수증 묶음이 생각나는 수백만원의 등록금 고지서는 시작일 뿐이다. 4년 뒤 무사히 졸업장을 얻으려면 적어도 2천만원 이상의 돈과 ‘고딩 마인드’가 필수다. 대학은 ‘처음 만나는 자유’가 아니라 ‘12년간 겪어온 복종의 연장선’이다.

오해의 시작, A4 한 장

올해도 어김없이 등록금이 올랐다. 등록금이 가장 낮다는 각 사립대의 인문·문과 대학도 200만원대에서 300만원대로 앞자리 숫자를 갈아치웠고, 이화여대 의학계열과 고려대 의대는 각각 990만원과 980만원으로 ‘1천만원 클럽’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8년간 등록금이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 2배 수준으로 폭등한 반면, 교원 1인당 학생 수나 학생 1인당 기자재 구입비 등 교육 여건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각 대학 총학생회(총학)는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천막농성·단식·총장실 점거·삭발 등 고전적인 투쟁은 이미 궤도에 올라섰으며 ‘3보 1배’를 진행한 학교도 여러 곳이다. 그러나 등록금 투쟁에는 아군보다 적군이 더 많다. 등록금 투쟁을 비난하는 이들은 왜 ‘대화’로 풀어나가지 않고 핏대를 세우냐고 묻는다.

정답은 ‘A4 용지 한 장’에 있다. 등록금 투쟁을 하고 있는 각 대학 총학은 거의 비슷한 경험을 한다. 총학과 학교 쪽의 협상 테이블이 마련된다. 상견례를 한 뒤 등록금 논의를 시작한다. 총학은 학교의 한 해 예결산안이나 국고보조금·법인전입금 내역 등 등록금 인상 관련 자료를 요구한다. 학교 쪽에서 관련 자료라고 내미는 것이 바로 A4 용지 한 장. 예닐곱 항목이 4~8줄 정도로 간단히 정리돼 있다. “이게 뭐냐” “이게 전부다” 주고받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결국 협상은 ‘타협 불가’로 끝난다.

연세대 총학 정책위원장 박기일(물리·4)씨는 “학교에 12% 등록금 인상의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요구했지만 인건비와 등록금을 단순 비교한 자료만 받았다”며 “학생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기는커녕 ‘선생님 말씀, 어른 말씀 들어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대학은 학생들이 학교 사정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총학 자체가 학생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황인데다 학교가 총학의 의견을 반영해야 할 의무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연세대 구선모(사회학·3)씨는 “학교는 학생들을 한마디로 (요구한 등록금을 군말 없이 낼) 보호자의 자녀로 본다”고 잘라 말했다. “학교가 학생을 주체적인 의견을 가진 성인으로 본다면 일방적으로 등록금을 올리고 그 돈으로 건물 지어올리고 자산을 불리는 데 몰두하지는 못할 것이다. 학생들과 학교의 관계가 대학 교육·운영의 두 주체인지 모르겠다. 스승과 제자인지, 기업과 고객인지, 어른과 아이인지….”

입도 뻥긋 못하는 대학원생들

학부생은 목소리라도 내지만 대학원생은 치솟는 등록금을 말없이 내야 한다. 서울의 한 대학원에 다니는 김민정(가명·25)씨의 등록금은 400만원이 넘는다. “대학원 교육이 등록금 값을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35명이 듣는 수업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대학원은 소규모 ‘특수 집단’이고 교수와의 관계 때문에 등록금에 대해 입도 뻥긋 못한다. 대학원생은 수천만원을 저항 없이 내는, 학부생보다 더 만만한 집단이다.”

등록금 인상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의 몫이다. 그러나 등록금 인상에 무감각한 이 역시 학생과 학부모다. 학생과 학부모는 등록금 걷을 때는 교육의 얼굴을, 등록금 쓸 때는 기업의 얼굴을 하는 대학의 이중성을 비판하고 제 몫을 요구하기보다 대학이 말하는 ‘경쟁력’에 길들여져 취업행 직행표인 수천만원짜리 대학 졸업장에 만족하는 데 익숙해졌다.

지난 4월5일 고려대 학생들이 보건대 학생 투표권 문제로 교수들을 감금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학생들을 향해 비난이 쏟아졌다. 3월22일에는 학생들이 교수들과 등록금 문제로 마찰을 빚다가 한 교수가 다쳤다는 사실도 뒤늦게 기사화됐다.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가 대화 요구를 계속 무시한 결과 빚어진 사건이라는 알맹이는 쏙 빠진 채 왜곡된 보도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고대 ‘등록금 인상 반대·강의실 성희롱 근절·징계시도 철회를 위한 학생대책위’ 안형우(국어교육·4)씨는 “등록금과 투표권 문제로 여러 차례 의견서를 제출하려고 했지만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며 “학교는 마찰이 생기면 절차대로 하라는데 지금까지 절차를 거쳐 의견을 냈을 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동덕여대에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없어진 지 오래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총학 선거에 대해 학교 당국은 선거인 명부와 실제 투표에 참여한 선거인 수가 일치하지 않는다며 부정 선거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학교는 선거에 참여한 학생 3천여 명 중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선거를 했느냐’는 전화조사를 벌였고, 총학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학생회비도 0원으로 고지했다. 지난해 9월에는 손봉호 총장 취임 1년 설문조사 결과를 실은 ‘손봉호 총장, 학교운영 F학점’ 기사를 문제 삼아 학보 발행을 중단시켰다. 올 1월에는 학보사 기자 16명을 전원 해임했다. 기자를 새로 뽑아 다시 발행되고 있는 학보는 “종이질은 좋아졌지만 내용은 학교 홍보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수연 동덕여대 총학생회장(국사학·4)은 “학교의 개입은 월권이자 학생 자치권 탄압”이라며 “백번 양보해 선거에 문제가 있다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할 일”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동덕여대 김병일 교무처장은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나가기가 어려워 학교가 지도와 교육 차원에서 나선 것”이라며 “학생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이성대 교수노조 교권실장(43·안산공대 교수)은 “학교가 학생을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대학 사회의 고질병”이라며 “지난해 12월 사립학교법 개정안에서 빠진 학내 자치기구의 법제화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총학 등 학내 자치기구가 법적 권리를 보장받으면 등록금 인상이나 학교 운영과 관련해 학생들을 ‘부모 보호를 받는 고딩’이나 ‘군말 없이 돈 내는 봉’ 취급하는 분위기는 적어도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서울 이화여대 정문을 들어서면 까만 테이프로 네모난 테두리 표시를 한 게시판이 눈에 띈다. ‘게시물은 학교의 허락을 받은 뒤 이곳 안에만 붙여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1월 만들어진 이 학교의 징계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등록금 인상 반대 천막농성이 계속되던 지난 4월12일 지나가던 학생 둘이 게시물이 하나도 없는 까만 테이프 게시판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하지 않냐. 고등학교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등록금 인상, 미국에서 배운다고?

미국의 고등교육비 공공부담률이 우리보다 3배 정도 높은 점 감안해야

등록금 인상 논란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소재는 ‘미국의 사립대’다. ‘미국 사립대의 경쟁력이 비싼 등록금에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도 등록금 인상으로 국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 크게 들린다.
미국의 비영리 교육단체인 대학위원회 칼리지보드(College Board)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사립대의 등록금은 5.9%가 올라 연평균 2만2135달러(2200만원)이며 4년제 공립대 등록금 인상률도 7.1%로 연간 5만491달러(55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액수만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미국 따라하려는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은 더 올라도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등록금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 교육 여건, 즉 국가와 사회의 교육비 부담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2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고등교육비 공공부담률은 우리나라보다 3배 정도 높다. 미국의 공공부담률은 45.1%, 사부담률은 54.9%다. 이에 견줘 우리나라의 공공부담률은 14.9%, 사부담률은 85.1%다. 미국 대학생의 63%는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 세제 혜택 등의 지원을 받는다. 사립대에 다니면 연간 9600달러(960만원), 공립대라면 3300달러(330만원)를 국가나 지역단체, 학교의 후원을 받는다. 뿐만 아니다. 스탠퍼드대는 연소득 4만5천달러(4500만원) 이하 가정 학생들의 등록금을, 펜실베이니아대는 연소득 5만달러(5천만원) 이하 가정 학생들의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아예 면제해준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프린스턴대 등 명문 사립대들도 감면 정책을 내놓았다.
이런 ‘막대한 지원’을 하지만 미국 대학생들에게도 등록금은 여전히 버겁다. 미국의 학자금 대출 이자는 2%대로 우리나라의 7%보다 훨씬 낮다. 그래도 졸업과 동시에 보통 2만달러(2천만원)의 채무를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해 ‘등록금 빚’이 사회 문제로 대두될 정도다.
미국 미시간대 유학생인 이지연(가명·29)씨는 “미국 대학은 등록금이 비싼 대신 여러 다양한 장학금과 지원 제도가 마련돼 있다”며 “미국은 이미 대학을 하나의 사업체로 여긴 지 오래인 만큼 두 나라의 등록금을 총액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