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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조작 태풍, 연구실은 변했는가

등록 2006-04-19 00:00 수정 2020-05-02 04:24

과학기술종사자 379명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 71% “연구윤리 지키겠다”… 부정방지 위한 노력이나 실질적인 현장 연구자 처우개선은 보이지 않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박지민 생물학연구정보센터 연구기획팀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아마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과학자는 없을 것이다. 우리 연구실은 상대적으로 과학논문인용색인(SCI) 등재 건수를 채우는 데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SCI 게재 논문 수가 연구 집단 선정 기준으로 작용하기에 연구 윤리를 살피지 못한 채 속도전을 치른 경험도 있다.” 한 생명공학 연구자가 사람의 혈액 샘플을 구할 때 병원 등지에서 환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꺼낸 말이다.

당시로선 사람의 혈액 샘플에 대해서는 윤리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사소한 샘플에도 연구윤리를 새겨야 한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태가 기자재 창고에 들어 있던 과학자의 연구윤리를 실험실 샘플 위에 올려놓은 셈이다.

과학자들의 고백, 잔잔한 파문

이런 과학자의 연구윤리 의식 마비는 대학교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화여대 전길자 교수는 지난달 열린 크리스천과학기술인포럼에서 “황우석 박사 사건은 내가 정직한 과학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고 ‘고백’해 과학계 안팎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나는 의도적으로 직접 기여한 일이 없는 과학자를 공동저자로 논문에 넣어주었으며, 남의 논문에 무임 승차해 공동저자로 들어간 적이 있다. 또 태아 뇌 조직에서 생체 분자의 분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동의서 없이 유산된 태아의 뇌 조직을 가지고 실험했음에도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렇듯 황우석 사태는 과학계의 어두운 비밀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연구윤리·진실성 확보를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논문 표절이나 데이터 조작과 위조 등의 문제가 공공연히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나 연구기관에서 연구 부정 행위를 못하게 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지난 3월29일 열린 과학기술계 토론회에서 가이드라인 시안을 발표한 것은 늦게나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오는 6월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논문 조작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이를 살피기 위해 <한겨레21>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과학오피니언네트워크인 ‘사이온’(SciON·Science Opinion Network)과 공동으로 ‘줄기세포 사건, 수업료만큼 배웠나?’를 주제로 4월10일부터 3일 동안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이 설문조사에는 현재 생명공학 분야 응답자 253명을 비롯한 모두 379명(해외 37명 포함)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전체 참여자를 학력별로 보면 박사가 125명으로 전체의 33%를 차지했고, 석사 26%(97명), 학사 17%(66명), 박사 수료 9%(34명) 등의 순이었다. 소속기관은 대학이 197명으로 52%, 기업(15%), 병원(7%), 정부출연연구소(6%), 정부기관(5%) 등이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황우석 사건으로 인해 연구자들의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통해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철저하게 지킬 것”(45%), “가능한 한 지킬 것”(27%)이라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71%가 논문 조작 사건이 연구윤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실천의 계기를 마련해준 것으로 평가한 셈이다. 이에 견줘 “현실적 어려움”(20%)과 “자신의 뜻과 무관함”(4%) 등을 지적한 부정적 의견이 전체의 24%로 나타난 것도 눈에 뛴다. 정부나 연구기관 등이 적극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연구문화를 혁신해야 할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석사가 박사보다 “철저 준수”대답 적어

이 문항에 대한 교차분석에서 주목할 만한 답변이 나왔다. 박사 학위를 가진 응답자의 57%가 “철저하게 지킬 것”이라고 답변한 것이다. 이는 연구실에서 선임자로 있는 박사들에게 더욱 강력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대학원 과정에 있거나 거친 석사들의 경우 “철저하게 지킬 것”이라는 답변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신 “가능한 한 지킬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낮은 지위에 있는 연구자들이 선임 연구자에게 강력하게 연구윤리를 내세우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지난 3월29일 과기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시안)에 대해서는 일부 핵심 사안에 대해 일부 수정이나 전면 개정을 해야 한다는 답변이 51%를 차지했지만 연구윤리와 진실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변은 28%였다. 과기부가 앞으로 마련하는 공청회에 연구자들이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열린 가이드라인 시안 관련 토론회에서도 가이드라인 성격을 정부가 내놓은 규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과 함께 검증 과정의 기밀 유출 문제 등이 지적되기도 했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가이드라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온라인상에 가이드라인이 연결되도록 링크시켜 설문을 진행했다.

이와 관련해 황우석 사건 이후에도 연구 부정 방지를 위한 노력은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속기관에 연구 부정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기구나 시스템 설치 현황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4%가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거나 “공식적인 논의가 없었다”고 답했다. 이에 견줘 “활발히 논의 중”은 12%, “이미 운영 중”은 5%로 나타났다. 정부의 가이드라인 확정에 발맞춰 연구기관별로 체계를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황우석 사건 이후 연구윤리 관련 토론회에 참석하거나 교육받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소속기관이나 학력 등을 불문하고 73%가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단기간에 연구윤리 확립을 기대하긴 어려운 셈이다.

정말로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은 생명과학 분야 연구 문화에 변화를 가져왔을까.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생명과학 분야 연구자들(253명)에게 ‘연구실 문화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11가지의 예시 문항을 여러 개 선택하도록 한 결과, 전체의 절반인 126명이 “연구 논문 작성과 제출에 더욱 신중하게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사소한 오류가 부정 행위로 비치지 않도록 주의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어서 “연구 결과의 점검이 철저해지고 있다”가 36%(90명), “연구윤리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였으며 철저하게 지키려는 분위기”라는 답변은 35%(88명)였다.

17% “연구활동 자체가 위축됐다”

여기에서도 특이한 사항이 발견됐다. “최근 논문 발표와 관련해서 불이익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9%(22명)로 밝혀진 것이다. 적어도 10명에 1명꼴로 불이익을 받은 셈이다. 또한 ‘연구활동 자체가 위축됐느냐’는 질문에 17%(44명)가 “그렇다”고 답했고 “연구비 지원기관의 관리·감독이 강화됐다”는 응답자는 16%(40명)로 나타났다. 황우석 사태가 연구윤리에 대한 재인식의 계기로 작용하면서 연구 결과물의 관리나 기록 개선에 이바지하고, 연구 논문 제출에 신중하도록 하는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직접적인 불이익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던 셈이다. 한편, 황우석 사태 와중에 생명공학 관련 연구자들의 처우가 매스컴에 그대로 노출됐음에도 “처우가 개선되고 있다”는 응답자는 3%(8명)에 지나지 않았다.

황우석 사태로 과학에 대한 불신이 생긴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가 거기에 담겨 있는지 모른다. 언론 역시 부적절한 보도로 사회적 혼란과 과학계와 국민 사이의 신뢰를 깨뜨리는 데 한몫한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언론의 과학 관련 보도에 변화가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78%가 “특별한 변화가 없다”거나 “전혀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다만 18%만이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한 교차분석에서는 박사그룹의 부정적인 견해가 86%나 나와 전체 평균보다 10% 가까이 높았다.

최근 정부는 가이드라인 마련을 비롯한 여러 후속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연구자들이 실감하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밝혀졌다. ‘황우석 사태를 계기로 추진하는 정부 정책과 운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3%가 “이전과 별다를 게 없어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놀랍게도 10%는 “과거보다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일부 새로운 면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개선보다는 유지·관리 경향이 강하다”는 응답자가 38%나 됐고, “새로운 면이 보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답변은 3%에 지나지 않았다. 관련 부처에서 조급하게 정책을 내놓기보다는 장기적 안목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신임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김우식 부총리가 황우석 사태로 인해 취임한 만큼 기대가 남다를 것 같았다. ‘신임 부총리가 과학기술 정책 개발과 운영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8%가 “연구개발 사업의 합리적인 운영 체계와 시스템 구축”을 꼽았다. 그만큼 연구개발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과학기술 중·장기 비전과 로드맵 제시”가 16%, “과학기술인 사기 진작”이 15%로 뒤를 이었고, “국민과 함께하는 과학기술”(5%)과 “과기부의 대외 위상 정립과 자체 정비”(3%)를 꼽은 이는 드물었다.

정부의 후속조치, 부정적 의견이 압도

아직도 황우석 전 교수가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막바지를 치닫는 가운데 다시금 줄기세포 1번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기에 치유 과정이 길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엄청난 사회적 통증을 남긴 사건을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이번 설문조사는 생명공학을 비롯한 국내 과학계가 연구윤리를 생각하는 동안 무엇을 배웠으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뤄졌다. 여전히 남은 과제는 수두룩하다. 비싼 수업료를 치른 만큼 배움이 최대한 깊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수 거액’보다 ‘다수 소액’을

연구자 처우개선, 어떻게 뾰족한 수를 찾을 것인가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만일 정부의 선택과 집중에 따라 대규모 연구개발 사업을 주관하는 연구실에 있는 연구자라면 연구 실적은 물론 연구 환경을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연구개발 책임자와 사소한 관계만 있어도 사정은 나은 편이다. 워낙 거액의 연구비가 소수에게 집중되다 보니 ‘철새 연구자’ 노릇을 마다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설문조사에서 황우석 사태를 계기로 처우가 개선된 연구자는 3%로 나타났다. 이들은 운 좋게 대규모 연구개발 사업에 관련된 연구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대학 연구자는 전체의 52%인 197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7명이 처우가 개선된 것으로 대답했다. 기업이나 정부출연연구소 정부기관에 속한 연구자 가운데 처우가 개선된 사람은 단 1명뿐이었다. 이는 대학 연구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조건에 있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설문조사의 자유의견란에 오른 의견 가운데 “학위 과정이나 비정규직 연구원에 대한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뾰족한 수를 찾기는 쉽지 않다.
우선 대학 소속 연구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소규모 다과제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건국대학교 윤종혁 교수(이론물리학)는 “갈수록 연구환경이 열악해지는 것은 연구비 총액이 늘어났는데도 수혜자가 줄어든 데 있다. 대규모 연구개발에 예산이 집중되는 것은 정부의 관리가 수월한 데서 비롯된 혐의도 있다”고 지적하며 “대학원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연구자로서 국가에 기여하는 만큼 국가에서 인건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사례는 캐나다의 대학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캐나다는 대학원생에 대한 인건비의 80%를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지원한다. 만일 대학원생 연구실의 해당 교수가 경쟁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으면 나머지 20%도 채울 수 있다. 소수에게 거액을 지원하는 대신 다수에게 소액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면서 극심한 연구비 수주 경쟁의 폐단을 줄이고 있는 셈이다. 이런 대학원생 연구비 지원 시스템은 대규모 연구개발 사업에서 소외된 기초과학에도 생기를 부여할 수 있다.
대다수 연구원의 연구환경을 개선하는 데 정부출연연구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출연연은 경제적 가치 창출과 더불어 사회 공공성 강화에도 기여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이를 위해서는 출연연의 기능을 강화해 정부 정책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그래야만 무차별적인 연구 수주 경쟁에서 벗어나 응용의 토대가 되는 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연구윤리 실천과 함께 연구환경 개선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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