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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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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선 변호사 안 날라

등록 2006-04-12 00:00 수정 2020-05-02 04:24

2008년부터 도입되는 로스쿨 제도 3년 과정 졸업하려면 최소 1억원… 정원 수 논란 벌이는 교수협-변협도 “너무 높은 진입장벽”한목소리

▣ 류이근 기자/ 한겨레 경제부 ryuyigeun@hani.co.kr

▣ 사진·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경남 김해 진영읍에서 10리쯤 떨어진 본산리에서 빈농의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는 산기슭에 고구마를 심어 겨우 생계를 꾸려갔고 학생은 공부를 잘했지만 학비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부산상고 졸업 뒤 독학으로 고시에 도전했지만 책 살 돈이 없어서 공사판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고시 패스는 열등감과 가난을 한꺼번에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마침내 학교 졸업 뒤 9년 만에, 결혼 2년 만에 사시에 합격했다.”

한해 등록금 2500만~3000만원

그 학생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2011년부터 노무현과 같은 성공신화를 볼 수 없게 됐다. 2008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3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2011년부터 변호사자격시험법에 따라 “법학전문대학원 수료자 또는 인증받은 법학사 학위 과정의 수료자로서 예비시험에 합격한 자”로 변호사 시험의 응시자격이 제한된다. 더 이상 가난한 고학자의 합격 수기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수적인 교양과 지식, 능력을 갖춘 법률가를 길러내자”는 명분을 지닌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의 제정과 시행을 바로 코앞에 두고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순 없다.

과거 오랫동안 신분 상승의 통로였던 사법시험 제도 대신 새롭게 시행될 로스쿨이 ‘없는 사람’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비싼 등록금 때문이다.

인하대는 로스쿨의 한 해 등록금이 2500만원 정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학들은 2500만~3천만원의 등록금을 예상하고 있다. 의료전문대학원보다 높은 수치다. 그도 그럴 것이 로스쿨 인가를 받기 위한 기준에 맞게 질 높은 교육 환경을 마련하면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단국대는 최근 법대 교수 10명을 증원했다. 기존의 교수를 포함하면 모두 22명에 이른다. 법이 통과될 경우에 대비해 로스쿨을 위한 학내 공간도 따로 마련해뒀다. 다른 대학에 비해 공간 확보에 따른 추가 비용은 덜 드는 셈이다. 인하대도 8명의 법대 교수를 증원해 교수 정원을 25명으로 늘렸다. 인가 기준에 맞춰 현 법대 건물의 리모델링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대학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로스쿨의 설치와 운영 기준에 따라 학생 정원을 교수 1인당 15명 이내로 하고, 교원을 20명 이상 확보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교원도 법조 관련 직역에서 5년 이상 실무를 담당한 경력이 있는 몸값이 비싼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이렇듯 대학의 입장에서 교과 과정은 제쳐놓더라도 교원 확보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갈 상황이다. 연구시설 지원을 포함해 교수 1인당 연 1억~1억5천만원은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고스란히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들의 등록금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변호사 자격을 따는 데 무난하게 합격한다고 하더라도 로스쿨 3년 과정의 등록금과 기타 경비를 포함하면 1억원에 가까운 경비를 감수해야 할 처지다. 여기에 4년 동안의 학부 과정에서 매년 600만원 안팎의 등록금과 기타 경비를 더하면 1억5천만원에 가까운 투자금을 각오해야 한다.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은 “(변호사 자격시험이) 신분 상승을 위한 중요한 수단인데 저소득층 서민 자녀들이 배제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1억원을 웃도는 교육비를 별 걱정 없이 투자할 수 있는 계층이 얼마나 될까?

20%가 학비 조달 어려움 겪을 듯

물론 법의 또 한구석에 “장학금 제도 등 학생에 대한 경제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법을 논의하고 만드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장학금 제도와 미국의 로스쿨처럼 학생들에게 대출을 활성화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의 홍기태 부장판사는 “등록금을 2천5백만~3천만원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에도 처음 예상보다 많이 오르지 않았다. 교육부에서 인가를 낼 때 비용을 많이 떨어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사개추에서는 대략 20%의 학생들이 학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한겨레21>이 만난 단국대 법대 대의원회 의장 정재균씨는 “개인마다 사정이 다르고 감당할 만한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대학원개선팀의 김홍구 서기관은 “로스쿨 인가를 심사할 때 등록금이 과도하게 책정되지 않도록 장학금이 얼마나 되는지를 기준으로 넣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 과정의 질을 높이고 시설 증측 비용 등을 등록금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대학의 현실이다. 또 인가를 받은 다음해부터 국가가 등록금 등의 문제에 일일이 간섭할 수 없다는 점도 학비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올바른 로스쿨법 제정을 위한 시민·인권·노동·법학계 비상대책위’의 상임집행위원장 석종현 단국대 교수는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어졌다는 말이 더는 과장이 아니다”며 “학부 4학년을 포함해 로스쿨 3년 동안의 비용을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학부모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민배 인하대 법대 학장은 “일반인들에게 경비가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학생들에게 정말 큰 문제”라며 “1억원대의 교육비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건 실력을 떠나 이미 경제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로스쿨 정원 문제를 놓고 대학과 극단적인 시각을 보여온 대한변호사협회도 비용 문제에는 한목소리다. 하창우 변협 공보이사는 “로스쿨을 졸업하려면 대학과 대학원을 포함해 최소 1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건 돈 없는 사람은 변호사도 되지 말라는 법”이라며 “양극화를 조장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교수협이든 변협이든 현재 논의되는 로스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상태에서 제도 도입으로 인한 문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에게 비용은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게 현실이다.

비용이 그리 부각되지 않은 문제라면 로스쿨 정원은 사회적 논란거리로까지 떠올랐다. 정원을 어떻게 정하느냐는 이미 정치적인 문제로 번졌다. 변협이 주장하는 1200명이란 수와 교수협의 3천 명 사이에 정치적인 간극이 존재한다. 변호사 수의 확대 반대와 로스쿨에서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이익집단의 충돌 이상의 복잡한 사정이 있다. 양질의 변호사 공급을 늘리겠다는 애초의 로스쿨 도입의 명분과 로스쿨에 맞는 교육 환경이 가능한 학교가 얼마나 되는지, 로스쿨의 지역 안배와 배제된 학교의 운명 등 다양한 변수들이 얽혀 있다.

로스쿨 정원은 적당히 절충될 것인가

로스쿨 법안을 심사하고 있는 국회 교육위는 지난 4월3일 여야 간사끼리 “정원 문제에 대한 제안은 그 결론을 속기록에 기재하고 법안에 삽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결 처리한다”고 문서로 합의했다. 정원을 법안에 명시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지만, 한편으로는 뜨거운 감자가 돼버린 정원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고민도 깃들어 있다. 이군현 한나라당 교육위 간사는 “사개추의 입장이 정원 1300명으로 아는데, 이는 전국 90여 개의 법과대학 가운데 10개 대학밖에 참여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부산·대구·경남·전북 등 권역별로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2천~2500명의 정원에 대략 20여 개의 대학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봉주 열린우리당 교육위 간사도 2천 명 안팎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큰 이견이 없는 편이다.

정원은 법에 따라 교육부 장관이 변협과 교수협의 의견을 받아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와 협의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공이 교육부의 손에 있는 셈이다. 교육부는 일단 지역 균형에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하지만 협의 당사자인 법무부와 법원행정처는 변호사를 1200명 이상 양산하는 로스쿨 정원의 책정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로스쿨을 도입하는 데 진통 끝에 법조계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변호사 수의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는 묵계 아래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저렴한 값에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와 명분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다양한 이해와 정치적 고려에 짜맞추는 적정한 선의 타협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방적인 의사결정 불안하다”

로스쿨의 미래를 예견하는 법대 학생들 “고시촌 열풍도 식지 않을 것”

학생들은 없었다. 1~2년이 멀다 하고 뜯어고치는 수능시험 제도에 정작 학생들이 빠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한 지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제도의 중요한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수렴되지 않았다. 학생들이 관심이 없을까봐 아니면 제도를 잘 이해하지 못할까봐? 아니다. 다수가 관심을 갖고 우려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대접받지 못할 뿐이었고 수동적인 존재로 무시돼왔을 뿐이다. 지난 4월5일 단국대에서 만난 법대생 세 명은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보다 로스쿨 도입으로 불어닥칠 불안한 환경에 더 짓눌려 있어 보였다.


만 3년 동안 사시를 준비한 정재균(29·4학년)씨는 먼저 사법개혁위원회 →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 국회 교육위 단계로 진행된 논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참여가 배제돼 있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래서 “지금껏 진행된 과정이 로스쿨에 관계된 사람들의 전체 의견인양 떠드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강병구(23·3학년)씨는 “공청회도 그렇고 너무 일방적인 의사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큰 피해자는 기로에 서 있는 학생들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노병현(24·3학년)씨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세 학생은 로스쿨이 시행될 2008년 안에 사시를 통과하는 게 1차 목표고, 안 되더라도 유예기간 3년을 통해 사시제도가 유지되는 2011년까지는 어떻게든 합격해야 한다고 했다. 좀 먼 일이긴 하지만 로스쿨에 진학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하지 않았다.
남의 일이 아닌 로스쿨은 이들에게 거부할 순 없지만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른 정원 문제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정재균씨는 “로스쿨의 취지가 법률시장 문턱 낮추기 아니냐. 1200~1300명을 뽑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공급을 늘려 비용을 낮추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애초의 취지가 퇴색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국대의 경우 350여 명의 법과대생 중 3분의 1 정도가 로스쿨 제도에 ‘원천 반대’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찬성’하면서도 비용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고 한다.
“(로스쿨에 들어가면) 기둥뿌리가 흔들리겠죠. 형편이 받쳐주는 애들만 편하게 공부하겠죠.” 형편이 넉넉지 않은 노병현씨에게 로스쿨의 가장 큰 문제는 학비였다. 노씨는 현재 1년에 교재비, 학원비, 용돈 등을 빼고 학비로만 600여만원이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연 2500만~3천만원의 로스쿨 학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강병구씨는 “비용 때문데 나도 3분의 2에 포함된다”며 현재 학원 강의 등 사교육비에서 벌어지는 격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장학금이나 대출을 활용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자, 정재균씨는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사뭇 다르다. 비용 문제가 진로 선택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셋 다 학비가 진입장벽을 높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로스쿨이 도입되면 고시 망국병의 상징인 신림동 고시촌으로 몰려가는 학생들의 발길이 줄어들까? 이들 사시 준비생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정재균씨는 “지금도 신림동 한림법학원의 학원 강의가 법학과목 이수학점으로 인정되고 있다. 고시촌과 학원은 없어지지 않고 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한, 로스쿨에 들어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학생들을 수요로 계속 진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부하는 학생들의 처지에서는 사시의 경쟁체제가 로스쿨 입학과 변호사 자격시험의 두 단계로 쪼개져 그 모습만 달리할 뿐이라는 것이다.
다니고 있는 대학이 로스쿨을 유치하느냐 못하느냐도 중요한 문제였다. 학생들은 로스쿨 유치 여부에 따른 새로운 대학의 서열화를 걱정했고, 비법대생들도 같은 처지였다. 대부분의 법대가 로스쿨 유치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국의 많은 법대생들도 똑같이 갖는 고민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현실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적응해야 된다는 생각은 모두 같다.” 법과대 1~2학년들은 학점 관리에 열심이라고 과 분위기를 전했다. 벌써부터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는 것이다. 세 학생은 얘기가 끝난 뒤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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