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서울시의원들, 간만에 일했다

등록 2006-04-05 00:00 수정 2020-05-03 04:24

올해부터 유급화한 지방의원 연봉 6804만원 책정, 과연 받을 자격 되시는가… 의원들이 발의한 조례안 터무니없이 적고, 그나마도 건설업자 이익 배려한 것

▣ 길윤형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arisma@hani.co.kr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와 234개 기초자치단체 의회 가운데 수도인 서울시의회가 갖는 위상은 단연 독보적이다. 결정 내용이 다음날 조간신문 1면에 실리고, 정부 당국자들의 구체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지방의회는 서울시의회가 유일하다.

[%%IMAGE1%%]

이를테면 이런 얘기다. 건설교통부는 2005년 5월19일 시행된 고시(2005-528호)에서 사업 시행자가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는 임대주택의 크기와 비율을 못박았다. 고시에 따라 전국에서 진행되는 모든 재개발 사업 시행자는 ‘건설하는 주택 전체 세대 수의 17% 이상’을 임대주택으로 지어야 한다. 그런데 그 비율이 흥미롭다. 비율은 왜 15%나 20%가 아닌 17%로 정해졌을까.

국회의원과 직업 공무원 연봉 참고?

서울시는 2003년 9월 집값 폭등의 진원지로 떠오른 강남지역의 무분별한 재건축을 막고, 재개발 지역의 임대주택 의무비율을 정하기 위해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를 만들어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그 자신이 건설업자로 구성돼 있으면서, 동료 건설업자들로부터 강한 로비를 받는 서울시의회의 딴죽이 시작됐다. 서울시의회는 시가 정한 재건축 기준 연한을 1979년에서 1982년으로 3년 늦춰, 애초 조례대로라면 2008년에야 재건축이 가능했던 82년 준공 아파트 26개 단지 2만3117가구의 재건축이 당장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와 함께 애초 20%로 정해졌던 임대주택 의무비율도 15%로 낮춰 잡았다.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 시작된 집값 폭등세로 온 나라가 미쳐 돌아가던 시점이었다. 서울시의회의 결정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서울시는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 밀려 시의회에 재의결을 요구했다. 시와 시의회의 줄다리기는 석 달 넘게 이어졌다. 그 순간 빛을 발한 것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솔로몬급 지혜였다. 서울시와 시의회는 한발씩 양보해 재건축 연한은 3년의 절반인 1년6개월, 임대주택 건설 비율은 15%와 20%의 중간인 17%로 정했다(왜 17.5%가 아니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정부는 2005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과 관련 고시를 만들면서 그 비율을 그대로 따랐다.

그런 오만함 때문이었을까. 서민들의 상식에 견줘 터무니없이 높은 서울시의원들의 연봉이 여론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서울시 의정비심의위원회는 지난 3월24일 올해부터 유급화된 지방의원들의 연봉을 지난해보다 118% 오른 6804만원으로 정했다. 한 달에 567만원, 지난해 4분기 도시 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 329만원이나 경북 경산(239만원), 대전 유성(210만원), 경남 진주(292만원) 등 다른 지자체 의원들의 월급보다 2~3배나 많다. 서울시는 “국회의원 보수의 50%와 4급 이상 서울시 공무원 월급 평균액 50%를 합해 급여 수준을 정했다”고 밝혔지만 변명은 궁색하기만 하다.

[%%IMAGE2%%]

법률적인 권한과 지위가 전혀 다른 국회의원이나 20년 넘게 한 우물을 판 직업 공무원들의 연봉이 왜 시의원 연봉의 참고자료가 돼야 했을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 등에서는 “서울시 재정 능력, 의원들의 활동 실적, 주민 소득 등에 견줘 액수가 지나치게 높다”며 “연봉 수준을 5천만원 이하로 낮춰여 한다”는 주장을 담아 의원들의 급여 수준을 결정한 의정비심의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명박 거수기’로 전락한 지 오래

그들의 연봉은 적당한 것일까. 임승빈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명지대 행정학과)은 “단지 액수가 높다고 이러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방의회에 인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유급화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요한 것은 한 푼이라도 아껴써야 할 시민의 세금을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주느냐는 점이다. 논란은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서울시의원들의 ‘자질 논란’이다. 서울시의원들의 4년 의정활동을 살펴본 <한겨레21>의 결론은 “아깝다”로 모아졌다. 6월30일이면 4년 임기를 마치는 서울시의원 99명의 의정활동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한심하다”는 한숨이 쏟아져나온다.

2003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시의회에 접수된 조례안은 389건. 이 중 의원들이 제 손으로 발의한 안건은 전체의 4.8%인 19건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12건이 통과(표 참조)됐고 1건은 폐기됐으며 6건은 아직 처리되지 않았다. 여기에 위원회 이름으로 발의된 조례안 42건을 합치면 의원들의 손을 거친 안건은 61개에 불과하다. 이에 견줘 매일 “일 안 한다”고 욕먹는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은 전체 3624건 가운데 절대 다수인 3145건이었다.

한나라당 의원이 86%를 차지하는 서울시의회는 이명박 시장에게 절대 충성하는 ‘거수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접수된 조례안 389건 가운데 366건이 처리되는 동안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통과된 것이 전체의 96.9%인 355건이었다. 5건이 수정가결되고 1건이 부결됐으며 4건이 폐기됐다. 24건은 아직 처리되지 않았다. 6대 서울시의회에서 유일하게 부결된 조례안은 집주인에게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울 책임을 지우는 것을 뼈대로 한 ‘건축물관리자의 제설 및 제빙책임에 관한 조례안’인데 “주민에게 제설·제빙의 의무를 지우면서도 벌칙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며 부결됐다.

더 큰 문제는 발의된 조례안의 질이다. 의원들은 건설업자의 로비를 받아 강화된 준공업지역 안에 지어지는 오피스텔의 용적률 기준을 이전 수준(250%→400%)으로 적용받을 수 있도록 기준(도시계획조례 일부개정조례안·대표발의 이일희 의원)을 만드는가 하면, 조선 20대 왕 경종의 묘인 의릉 주변 동대문구 이문2동 411번지 일대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층수를 높이기 위해 문화재 보호구역 안에서도 마을매도 건축공사를 가능하게 하는 단서(문화재보호조례중개정조례안·대표발의 김충선 의원)를 신설했고, 학교시설보호지구 안의 세차장 건축 기준을 완화(도시계획조례중개정조례안·대표발의 김종문 의원)하는 세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IMAGE3%%]

재건축·재개발 이권과 관계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는 네 번이나 바뀌었고, 그때마다 재개발 허가 요건과 임대아파트 건축 기준이 점차 완화됐다.

유급제 목표를 혼동하셨나

의원들은 또 덕수궁 터로 확인된 옛 경기여고 부지에 미국 대사관을 짓겠다는 결의안은 서명을 한 뒤에도 발표를 뭉개면서, ‘서울시의원 의정활동비 등 지급에 관한 조례’는 두 번이나 바꿔 회기수당 지급 기준(일 8만원→11만원)과, 의정자료 수집·연구비 및 보조활동비의 지급한도(월 70만원→120만원)를 대폭 인상했다. 2003년 당선된 기초의원 3485명 가운데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20% 수준에 불과한 756명이었고, 서울시의원 92명(비례대표 제외)의 직업을 보면 정치인(18명), 시도의원(12명) 다음으로 많은 직업이 건설업자(10명)였다.

경실련은 지방의원의 임금 설정 기준으로 △주민 의사 △해당 자치단체의 주민 소득 △전업과 겸업 구별 등의 원칙을 제시했다. 경실련이 한국지방자치단체 회원 158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기초의원의 연봉 수준은 2천만~3천만원, 광역의원은 그보다 1천만원 정도 많은 3천만~4천만원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강원 경실련 시민입법국장은 “지방의원 유급제의 목표는 지방의원들의 삶의 질 개선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전문 역량을 강화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서울시와 서울시의원들께서는 지방의원 유급제의 입법 취지를 오해하셨던 것 같다. 재고하시길 부탁드린다.

[%%IMAGE4%%]

[%%IMAGE5%%]



역량 강화 방안을 강구하라

‘얼마냐’보다는 ‘어떻게 쓰느냐’…보좌관제 도입하고 주민 참여 높여야

▣ 심재옥 서울시의원·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들의 의정비가 월 6804만원으로 책정됐다. 4월 임시회의가 열리면 조례 개정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광역 단위에서는 제일 먼저 안이 확정된데다 그 수준도 높다는 비판 때문에 지방의원 유급화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5천만원 이하가 적당하다는 의견과 함께 심의 과정에서 대폭 하향 조정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논란이 유급화 이후 지방의원의 역량 강화 방안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6800만원이 많으냐 적으냐라는 부분으로만 모아지고 있다는 점은 다소 안타깝다.
의정비에는 그동안 명예직이던 지방의원들에게 의정활동에 전념하라는 뜻에서 주는 ‘생계비’와 시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행정을 감시하라는 ‘의정활동 지원비’라는 두 가지 의미가 복합돼 있다. 그런 만큼 유급화 이후 의원의 자질을 높이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먼저, 유급화 이후 지방의원들은 임기 동안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을 금지하거나 별도의 영리활동을 제한해야 한다. 또 전문성과 정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보좌관제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지방의원들에게도 정책보좌관이 필요하다. 서울시의 경우 시의원들은 일반 예산과 교육청 예산을 포함해 18조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심의한다. 의원 혼자 특정 사안에 대한 관련자들의 의견을 검토하고 합리적인 방안까지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 여론의 추이를 보면, 유급화에 이어 보좌관제까지 시행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시민들의 불만과 비판은 지방의원들이 자초한 결과인 듯싶다. 지금까지 지방의원들이 시민의 편에서 제대로 의정활동을 해왔다면 지방의원의 역할을 강화하는 이런 조치들을 시민들이 반대할 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논란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유급화를 한 뒤 지방의원들이 제대로 활동을 펼쳐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인 것 같다. ‘얼마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다. 6800만원이 많다고는 하나 그 돈이 제대로 쓰인다면 아까워할 시민은 없을 것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중앙위원회에서 유급화에 대한 당 방침을 결정했다. 지방의원 개인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도시노동자 평균임금(약 230만원) 수준으로 하고 그 나머지는 의정활동 강화를 위해 정책보좌관 등을 채용하는 데 쓰도록 결정했다. 당선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선된 의원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지원 시스템을 갖추자는 뜻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2004년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부터 이런 방식이 시행되면서 원내 소수의 한계도 극복하고 의원의 개인기를 뛰어넘는 정책활동을 광범위하게 벌이고 있다.
지방의원들의 활동이 근본적으로 강화되기 위해서는 지방의원 유급제나 지원제도의 도입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지방행정과 의정활동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아져야 한다. 의원들에게는 확대된 조건만큼 철저한 감시와 평가도 뒤따라야 한다. 견제 없는 권력은 썩기 마련이듯 주민들의 감시와 통제가 없으면 의원들의 활동도 나아질 수 없다. 주민 무서운 줄 알아야 의원들이 주민 편에서 생각하고 활동할 것 아닌가. 차제에 주민들의 권한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논의됐으면 한다.
국회에 제출된 주민소환제법이 시급히 제정돼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며, 예산 편성 과정에서 주민들의 권한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법 제정도 추진돼야 할 것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