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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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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법안, 사용자들 만세!

등록 2006-03-10 00:00 수정 2020-05-03 04:24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 해줘야 한다고 푸념하지만
1년11개월30일째 되는 날에 근로계약 해지해 버리면 땡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제2의 근로기준법’으로 불리는 비정규직 법안(‘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월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해 다음에 열릴 임시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노동계의 항의 총파업과 민주노동당의 법제사법위원회 점거에 따라 이번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못했으나, 2000년 이후 6년 넘게 끌어온 비정규직 법안은 사실상 법제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계의 총파업에도 불구하고 법안이 수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다음에 열린 본회의에서 법안이 부결되면 다시 논의해 수정할 수 있지만, 본회의 통과가 확실한데다 그전에 거치는 법사위는 법안 수정은 하지 않고 단순히 자구만 고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극명하게 엇갈리는 평가

법안 내용을 놓고 평가는 극명히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하고,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이라고 맞서고 있다. 물론 법안이 노동시장에 어떤 경향을 초래할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비정규직’(기간제(계약직)·단시간근로자(시간제)·파견근로자 등)이란 고용 형태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법적으로 최초로 ‘제도화’됐다.

기존 근로기준법은 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었고, 비정규 노동을 규율할 법의 공백 상태에서 비정규직은 둑이 터지듯 갈수록 확산돼왔다. 몇몇 악덕 사용자 탓이 아니라 ‘고장난 노동시장’ 때문에 무권리 상태에서 비정규직이 구조적으로 차별받아온 것이다. 이제 법안이 만들어졌으므로 비정규직은 점차 줄어들고 보호받을 수 있게 된 것일까?

일부에서는 이번 법안을 “2년 지나야 해고 가능하다”거나 “2년 지나면 정규직 된다”고 해석한다. 맞는 말일까?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보자. 법안에 따르면,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반복 갱신 등의 경우에는 계속 근로한 총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 또 2년 이상 기간제를 고용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정규직)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 따라서 기간제로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간주되는 건 맞다. 하지만 사용자가 2년이 되기 전에 기간제 노동자를 해고하고 그 자리를 다른 기간제 노동자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의사’에 달려 있다.

늘 그래왔듯 사용자가 2년이 되기 전 1년 11개월30일째 되는 날 근로계약을 해지하고 다시 다른 기간제 노동자로 바꾸더라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물론 동일한 기간제 노동자를 2년 이상 계속 사용하기 어려워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 △‘그 밖에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는 2년을 초과해 무한정 기간제로 쓸 수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합리적 사유와 필요성’만 인정되면 동일한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고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직접고용 때 한달짜리 기간제도 가능

그동안 비정규직 법안의 핵심 쟁점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정규직이 고용의 ‘일반 원칙’이고 비정규직은 ‘예외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여부였다.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요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야 비정규직 확산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 제한’이 빠진 이번 법률은 정규직이 고용의 대원칙이라는 암묵적 합의를 무너뜨리고, 비정규직을 공식적인 고용 형태로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근로계약 체결 때 ‘근로계약기간, 근로시간, 임금의 구성 항목, 휴일·휴가에 관한 사항 등’을 서면으로 명시해야 하고, 파견노동자가 파견사업주로부터 ‘파견 대가에 대한 내역’을 제시받을 수 있도록 한 조항은 비정규직 보호 규정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크게 봐서 법안은 이미 확산돼버린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한 법률이 아니라 둑이 터진 현실을 제도적으로 ‘용인’한 데 불과하다.

파견법 개정안을 보면, ‘명백하게’ 파견 대상 업무를 확대해 파견근로의 폭을 더 넓혔다. 개정안은 ‘근로자 파견사업은 전문지식·기술, 경험 또는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로 정했다. 기존 파견법에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가 새로 추가된 것이다. 즉, 적합한지에 대한 노동부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파견노동자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또 파견 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불법 파견’마저 아무런 처벌 없이 ‘합법 파견’으로 용인해줄 수 있는 가능성도 생겼다.

개정안은 파견 기간을 1년으로 하되, 1회 연장이 가능해 총 2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다만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경우는 1년을 초과해 무한정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합법 파견이든 불법 파견이든 가리지 않고’ 파견 기간 2년을 넘은 경우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 의무’를 부과하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3천만원을 물린다(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쪽은 ‘파견사업주’(용역업체), 파견사업주로부터 근로자를 파견받아 실제 업무에 사용하는 쪽은 ‘사용사업주’다). 그런데 직접고용의 경우 한 달짜리 ‘기간제’로 고용하는 것도 허용된다. 불법으로 파견노동자를 써왔더라도 ‘한 달 더’ 기간제로 쓰고 계약을 해지하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노동계가 요구해온 ‘고용의제’(국회에서 의결된 ‘고용의무’가 아니라)는 불법 파견을 행한 시점부터 사용사업주의 종업원이 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법 파견을 당한 시점부터 소급해 임금 차액을 청구할 수 있고, 사용자의 불법 파견 의도도 차단할 수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차별 확인’ 싸움

이번 법안은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 “차별이 해소되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무슨 문제냐?”고 말할 수 있을까? 비록 임금 조건이 엇비슷해지더라도 비정규직은 늘 ‘고용불안’에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게다가 차별적 처우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차별 구제 절차도 간단치 않다. 차별적 처우는 ‘임금, 그 밖의 근로 조건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으로, ‘기간제·단시간·파견근로자라는 이유로 당해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하면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거꾸로 말해 ‘합리적인 차별’은 용인하는 것이다.

특히 불합리한 처우의 ‘기준과 수준’은 노동위원회에서 수많은 차별 시정 신청 사건들을 심의하면서 만들어질 것이고, 그러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노동자 혼자 사용자에 맞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차별 확인’ 싸움을 벌여야 한다. 법을 어겼을 때 사용자가 물게 되는 벌금은 크게 두 가지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그리고 행정소송까지 거쳐 차별 시정 명령이 최종 ‘확정된 뒤’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직접고용 의무를 어겼을 경우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차별적 처우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벌 조항도 없다. 결국 극단적으로 말해, 차별이 드러나 노동위원회에서 ‘확정’되지만 않는다면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면서 얼마든지 비정규직을 쓸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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