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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으로 타오르는 아스카리아

등록 2006-03-01 00:00 수정 2020-05-03 04:24

이라크 시아파 사원 폭파 사건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종파간 유혈사태
‘냉철한 지성’ 시스타니마저 거리행동 촉구하며 주권정부 구성 전면중단

▣ 정인환 기자/ 한겨레 국제부 inhwan@hani.co.kr>inhwan@hani.co.kr

시아파 무슬림에게 ‘마흐디’는 이를테면 불교의 미륵불이자 기독교의 메시아다.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보듬고 ‘도솔천’과 ‘천국’의 현세화를 이끌어낼 희망의 상징이자 미래의 약속이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00여㎞ 떨어진 사마라의 아스카리아 사원에서 벌어진 폭파사건을 바라보며 임박한 파국을 예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아파의 ‘미륵’이 난자당하다

지난 2월22일 여명이 밝아올 무렵인 오전 6시50분께 사마라 중심가에 위치한 아스카리아 사원에 경찰 복장을 한 무장괴한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경비원들을 결박한 뒤 사원 내부로 들어가 폭발물을 설치하고 사라졌다. 이내 굉음과 함께 사원의 상징인 황금돔이 무너져내리면서, 1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시아파의 성지는 순식간에 폐허로 바뀌었다.
아스카리아 사원은 시아파 신념 체계의 상징적 장소다. 9세기에 숨진 시아파 10대 이맘 알리 하디와 11대 이맘 하산 아스카리아의 무덤이 이곳에 있고, 아스카리아의 아들로 시아파 최후의 이맘으로 추앙받는 무함마드 마흐디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시아파는 마흐디가 이곳에서 878년 신의 뜻에 따라 홀연히 사라졌다가, 최후의 심판일이 다가오면 다시 나타나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펼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무함마드 마흐디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수니파와 달리 시아파에선 “세상이 신의 정부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고 진실의 통치를 위한 모든 조건이 성숙하면, 신께서 마흐디에게 마지막 혁명을 시작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마흐디의 출현으로 “끝없는 고통 속에 삶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 충성을 맹세할 것”이며 “짧은 시간 안에 용기 있고 희생을 각오한, 개혁을 원하는 세계인들로 이뤄진 거대한 군대가 꾸려져 마흐디의 지휘를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니 시아파 입장에서 아스카리아 사원 폭파사건은 ‘신이 예비한 구원자’에 대한 도전이자, 미래의 꿈을 유린한 것과 다름없다. <로이터통신>는 바그다드의 무스탄시리아대학 하짐 나이미 교수(정치학)의 말을 따 “이번 사건을 접한 시아파들의 감정은 성지 메카를 겨냥한 대규모 공격이 벌어질 경우 전세계 무슬림들이 느낄 만한 감정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난 시아파 주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라크 시아파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시스타니가 이례적으로 전면에 나선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웅변해준다. 좀처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는 사건 발생 당일 직접 텔레비전에 등장해 7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시아파 주민들에게 거리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가 성명을 발표하는 동안 이라크 중부 나자프의 그의 집무실 밖으로 몰려든 군중들은 “시아파여 일어나라, 복수에 나서라”고 외치며 치를 떨었다.

“점령군이 이라크 떠나는 표결 하자”

시스타니가 이날 내놓은 성명은 두 가지 점에서 그간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미국의 침공 이후 줄곧 ‘냉정’과 ‘자제’를 호소하며 시아파의 집단행동을 막아온 그가 처음으로 군중시위를 촉구했다는 점이다. 그는 수니파 사원에 대한 공격을 금하는 한편 애써 ‘평화시위’를 강조했지만, 분노한 주민들의 거리시위가 쉽게 폭력사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성지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시아파 무장단체라도 직접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친 점도 눈에 띈다. 이는 주권정부 구성에 앞서 시아파 무장단체 해산을 선결과제로 강조해온 미국과 수니파에겐 치명적인 도발이다. 수니파에선 그동안 이들 시아파 민병대를 수니 정치 지도자를 겨냥한 ‘암살단’이라고 비난해왔고, 미군 쪽에서도 이들이 이라크 정규군과 경찰 병력을 강화하는 데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 미시간대 후안 콜 교수(역사학)는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시아파 주민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인내를 강조하는 목소리에 더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시스타니는 이라크에서 가장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다. 시위가 평화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임에도 그는 시위를 촉구했다. 이는 그가 이번 사건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스타니마저 냉정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정치권에서도 분열의 조짐은 극명하다. 파괴와 유혈의 악순환이 시작되면서 지난해 12월15일 총선 이후 지지부진한 주권정부 구성 작업은 당분간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수니파 정치세력은 사원 파괴에 따른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잘랄 탈라바니 과도정부 대통령이 2월23일 긴급 소집한 회의에 불참했다. 이어 수니파 정치조직 이라크화합전선(IAF)의 지도자 타레크 하세미는 수니파 주민과 사원을 겨냥한 무차별 보복공격에 항의해 시아파 주도의 주권정부 구성 협상 참여 중단을 선언하고 나섰다.
여기에 지난 2004년 여름 성지 나자프의 이맘 알리 사원을 근거로 미군에 맞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던 시아파 강경 지도자 무크타다 사드르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그는 위성뉴스 채널 <알자지라>에 출연해 “의회를 소집해 ‘점령군’이 이라크를 떠나도록 요구하는 표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원 폭파 사건 직후 거리로 쏟아져나온 무장세력 상당수는 사드르를 따르는 ‘마흐디군’이었다. 수니파에 대한 보복공세는 이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란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

각료회의에서 ‘마흐디에 대한 충성서약’을 강요할 정도로 종교적 열정을 보이고 있는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그는 사원 폭파사건이 벌어진 직후 “점령군(미국)과 시오니스트(이스라엘)가 성지에 난입해 파괴행위를 벌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7천만 인구의 90%가량이 시아파 무슬림인 이란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라크에 대한 개입을 노골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라크에서 시아파 주도의 이란식 신정체제 구축을 우려해온 미국으로선 상황이 더욱 고약한 쪽으로 꼬이고 있는 것이다.
다가올 파국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도처에서 삽시간에 보복공격의 핏빛 폭력이 물결을 이뤘다. 폭파사건이 난 지 불과 이틀 만에 이라크 전역에서 수니파 성직자들을 포함해 줄잡아 13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니파 사원 180여 곳이 파괴됐다. 희생자 상당수는 손을 뒤로 묶인 채 이른바 ‘처형’ 방식으로 살해됐다. 이미 수도 바그다드와 함께 중부 3개주에 야간 통행금지령이 떨어졌음에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뒤 최악의 종족 간 유혈사태가 번지는 걸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지난 3년간 지속돼온 ‘저강도 전쟁’이 마침내 본격적인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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