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상과 제강회사를 연결하는 고철 중간상 최용덕 삼표상사 대표
중량 측정과 분류, 가공 과정 거쳐 용광로 투입할 수 있게 재탄생
▣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길 가다 쇠붙이가 보이면 손으로 줍습니다. 저한텐 다 돈으로 보이거든요.”
철스크랩(고철) 중(간)상인 최용덕(49) 삼표상사 대표가 고철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 강원도 태백의 강원탄광에서 갱도 측량 및 관리직으로 일하다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에 따른 1992년의 탄광 폐쇄에 앞서 제강업체인 강원산업에 전환 배치되면서부터였다. 당시 강원산업은 중간상을 통하지 않고 제강 원료인 고철을 직접 수거했으며, 최 대표도 10년가량 그 일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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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가 사업의 길로 나선 계기는 지난 2000년 현대INI스틸이 강원산업을 인수·합병한 일이었다. 강제 해고된 건 아니었지만, 인수당한 회사의 직원 처지에선 설 자리가 그리 넓어 보이지 않아 퇴직을 결행했다. 강원산업을 그만둔 그는 고철 수집상과 제강회사를 연결해주고 구전을 받는 일에 나섰다. 강원산업 재직 당시 고철을 납품받던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한 인적 그물망을 활용해 별도 사업장을 갖추지 않은 채 고철을 중개하는 일종의 프리랜서였다.
외환위기 뒤 고철 가치 높아져
1년 반 뒤 최 대표는 경기도 수원시 매탄동의 고철수집장을 사들여 직원 둘을 거느린 지금의 삼표상사로 키워냈다. 강원산업 시절의 마지막 근무지가 전국 8군데 고철 야적장 가운데 하나인 화성·동탄지구 야적장이라 주위에 사업으로 인연을 맺은 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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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의 삼표상사는 인근 공장이나 가정에서 발생하는 고철을 모아 ‘대상’에게 넘기고, 대상은 이를 INI스틸이나 한국철강 같은 철강회사에 납품하게 된다. 삼표상사가 거래를 맺고 있는 대상은 3~4곳 정도라고 한다.
삼표상사에서 최고로 여기는 고철은 주로 프레스 공장에서 나오는 ‘생철’이다. 인근에 있는 화성시 봉담읍의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트렁크 열쇠박스나 액셀러레이터 부속품을 만드는 프레스 공정에서 발생하는 철 쪼가리가 대표적인 생철이다. 자동차 부품에 쓰이는 철은 질이 높아 중상에서 가장 선호하는 제품이다. 생철의 요즘 시세는 kg당 200원 수준이며, 대상을 통해 철강회사에 210~215원꼴로 팔린다고 한다. 건설현장에서 나오는 H빔 같은 고철은 ‘중량고철’로, 두께가 얇거나 합금 처리된 고철은 ‘경량고철’로 분류된다. 부지 500평의 삼표상사 작업장에는 늘 등급별로 분류된 고철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최 대표는 생철 무더기를 가리키며 “한 400t 정도 될 테니까 8천만원어치”라고 웃었다. 마당에 쌓인 전체 고철은 1억5천만원어치 정도 된다고 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고철의 값어치를 잘 몰랐습니다. 공장에 가서 ‘기리빠시’(철 쪼가리)를 치워주면 고마워할 정도였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고철이 귀한 자원이라는 걸 알게 된 거지요.” 생산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고철이 생겨나는 공장에선 중상들의 경쟁을 활용해 사실상 입찰을 붙이고 있다고 한다. 서류상 입찰이 아닐 뿐 공장에서 이곳저곳 중상들에게 의사를 타진하는 방식이어서 중상들 사이에는 고철 확보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공장이나 가정에서 실려온 고철이 대상을 통해 철강회사로 납품되기 전 삼표상사 같은 중상의 고철 야적장에서는 중량 측정과 분류, 가공 과정을 거친다. 중량 측정은 고철을 실은 트럭이 작업장 입구에 설치된 중량측정기에 올라서면 자동적으로 이뤄져 사무실의 컴퓨터에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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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철금속 분리하다 구리 나오면 횡재!
삼표상사 작업장을 찾은 2월6일 오전 중량고철을 실은 트럭이 들어왔는데, 중량측정기에 올라서자 무게가 23t을 조금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될 경우 실제 고철 중량은 10t 정도로 셈하게 된다고 최 대표는 말했다. 트럭 자체 무게 9.5t에 트럭에 장착된 ‘그래플’(고철을 집어들 수 있게 손 모양으로 생긴 기계) 무게 3t을 빼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 중량고철은 kg당 180원꼴로 사왔으며, 대상에게 넘길 때는 200원 정도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kg당 20원을 곧바로 마진(이윤)으로 볼 순 없다고 한다. 기름값, 운송비, 트럭의 감가상각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마진은 보통 kg당 8원꼴이라고 한다. 한 달 매출이 1억3천~1억5천만원이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다달이 600만원 안팎의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직원 둘의 월급이 포함돼 있다.
중량 측정을 마친 고철은 등급별로 분류돼 야적장에 쌓인다. 생철이 아닌 낮은 등급의 고철은 분류 뒤 별도의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곳 삼표상사의 가공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쇠막대기처럼 길게 생긴 고철은 트럭에 장착된 가위 모양의 커다란 절단기로 1m 안팎의 길이로 자른다. 이는 철강회사의 전기로에 곧바로 집어넣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하나의 가공 작업은 해체와 정밀 분류 작업이다. 폐기 처리된 전기용접기처럼 철외 성분을 함유한 물건을 산소용접기로 해체해 세부적으로 분류하는 과정이다. 이는 정밀 분류로 고철의 등급을 높이는 동시에 철보다 값비싼 구리 등 비철금속 성분을 회수하기 위한 것이다. 구리의 경우 kg당 4000~4500원으로 고철값의 20배에 이르기 때문에 회수를 위한 시간과 노동력을 들일 가치가 있다는 설명이다.
최 대표의 사업이 절정을 달린 것은 2002~2003년이었다. 직원을 6명까지 둔 게 그즈음. 직원 수가 한창 때의 3분의 1로 줄어든 것은 무엇보다 임대해 쓰고 있는 작업장 터 1천 평 가운데 절반이 2004년에 도로 용지로 수용됐기 때문이다. 파지를 취급하지 않은 게 이때부터였다. 작업장 규모가 줄어든 것과 함께 고철 유통업의 경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직원 수를 줄이게 한 요인이었다. 제조업체에서 쪼가리 쇠붙이가 얼마나 나오느냐에 좌우되는 고철 유통업은 전반적인 경기를 민감하게 반영한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공장들이 설비투자를 해서 더 좋은 기계를 들여놓아야 ‘기리빠시’가 많이 나오는데, 그게 없잖아요. 또 경기가 그다지 좋지 않으니 예전엔 그냥 버리던 기리빠시도 버리지 않고 쓰게 되면서 우리 같은 중상들이 고철을 확보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겁니다.”
설비 투자 줄면서 고철 확보 어려워져
최 대표의 꿈은 자체 부지를 확보하는 일이다. 지금의 사업장 터는 임대 상태여서 주기적으로 새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 때문에 사업을 안정적으로 꾸려갈 수 없고, 새로운 설비를 들여놓기도 꺼려진다. 웬만해선 도배를 하지 않고 사는 세입자 처지나 마찬가지다. 최 대표는 부지를 확보하면 고철을 사방 모서리 60cm(또는 80cm) 크기의 정육면체 모양으로 눌러붙이는 압축기를 구입할 계획이다. 압축기 값이 2억~3억원으로 꽤 비싼 편이지만, 규격화한 압축 상태로 납품할 경우 kg당 5~7원을 더 받을 수 있어 마진을 두 배로 높일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납품가를 더 받는 것에 더해 야적장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다는 점, 운반비가 적게 든다는 점까지 감안할 때 실질적인 수익성은 더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중간상의 수익성이 고철의 회수율 제고라는 환경적 과제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해 대학교(경영학과)에 들어가는 큰아이가 내 일을 이어받아 해보겠다고 하면, 시켜볼 생각입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 않습니까? 정년도 없고, 잘하면 돈도 벌어 다른 사업의 기초를 닦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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