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사병 동성애자 ㅇ씨는 왜 자살 직전 동성애인권연대를 두드렸나
성적 지향 입증하면 정신질환자로 제대하는 제도부터가 인권 불감증
▣ 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지난 2월8일, 군복무 중 휴가 나온 동성애자 ㅇ씨가 동성애자인권연대에 상담 메일을 보내왔다. 자살을 생각하다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렸다는 그가 들려준 지난 8개월간의 이야기는 군대 내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끔찍한 수준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억지로 제출한 성관계 사진 돌려봐
지난해 6월,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그는 잠잘 때 신체 접촉과 목욕 등 병영생활의 고충을 상관에게 토로하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그 뒤, 신병교육대에서 ‘아들이 동성애자로 힘들어하니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부모님 의견서를 훈련병들이 돌려보는 등 그는 비밀을 보장받지 못했다. 의무중대 환자실에 입실하게 되면서 더한 일들이 이어졌다. 성관계 횟수를 묻기도 하고 입대 전에 헌혈을 했다는 말에 임의로 에이즈 검사도 시켰다. 이어 중대장은 현역 부적합 심사를 받으려면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는 키스하는 사진 등을 제출했지만 중대장은 구체적인 성관계 사진을 요구했다. 그는 심각한 대인기피, 우울증, 자살충동에 빠졌다. 식당에 사람이 많으면 구역질이 나오고, 몇 시간이고 화장실에 숨어 있는 날도 많았다. 견디다 못한 그는 싫지만 전역할 수 있다면 성관계 사진도 찍어오겠다는 편지를 썼다. 100일 휴가 전, 중대장은 암묵적으로 사진 제출을 요구했고 휴가 나온 그는 동성애자 사이트에서 사진을 함께 찍어줄 사람을 찾아헤매야 했다. 그는 다시 이런 일을 시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며 울분을 토했다. 심지어 제출한 성관계 사진이 병사들에게 유출돼 따돌림에 시달렸다. 오히려 상관은 “전역시켜주려는데 네가 문제를 일으켜 못 시켜주겠다”고 윽박질렀다. 그 뒤 새로 배치된 부대의 대대장은 “동성애자인 것 빼고는 생활하는 데 아무 문제 없겠다”며 그의 고충을 이해조차 못했다. 선임병들은 “임신했냐? 오빠라고 부르라“며 희롱했고, 성기를 만지게 하는 등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 어느 날, 점호 시간에 당직 사관이 지난 1월31일 동성애자 이등병이 보자기로 목을 매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주의를 환기시켰을 때 내무반 병사들이 비웃는 모습을 보며,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다시 군으로 복귀해 생활할 수 있을까? 그는 처음부터 전역을 바란 것도 아니고,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군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군대가 그를 다시 군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사건을 진정한 뒤 인권단체는 휴가 연장과 전역을 요구했다. 인권위 조사관이 해당 부대에 휴가 연장을 요청했지만 답이 없었다.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야 “휴가 10일 연장 후 전역시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심지어 군은 사진을 스스로 제출했다며 발뺌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사진을 스스로 제출하는 모욕적인 일을 하겠는가? 어제 국방부는 지난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불명예) 제대한 사병이 8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더 많은 동성애자들이 군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알려지지 않은 죽음을 맞기도 한다. 따가운 시선과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분위기 등이 무서워 상관에게 사실을 알렸다가 성행위 동영상을 찍어오라는 요구를 받은 한 동성애자의 사례는 이번 사건과 똑같다. 이렇게 군에서 성적 지향이 밝혀져 괴로움을 겪는 동성애자가 적지 않다.
동성애 행위는 징역 1년형
동성애자에 대한 군 제도는 억압적이다. 군형법 92조는 계간(동성애 행위)에 대해 징역 1년형을 내리고 있어 동성애 자체를 성적 문란으로 규정하고 있다.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은 트랜스젠더 및 동성애자를 심신장애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조항들 때문에 직업군인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면 군에서 쫓겨나고, 사병은 성적 지향을 입증해 정신질환자로 치욕스런 제대를 하게 된다.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을 긍정하면, 그가 어떤 상황이건 다시 군에 복귀하게 하는 문제도 있다. 군형법 개정이 시급하다. 동성애자 사병에 대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시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체복무제를 폭넓게 시행하는 일은 동성애자에게도 시급하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군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심한 군대에서 안전한 생활을 보장받아야 하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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