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중동에서 근무한 ‘아랍통’ 폴 호이니스 주한 덴마크 대사와의 만남
“EU 회원국들의 세계의 종교 존중 보장 위한 메커니즘을 유엔에 제안할 것”
▣ 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무슬림 세계를 온통 분노의 도가니로 빠뜨린 것은 덴마크의 한 작은 신문사 윌란스포스텐(Jyllandsposten)에서 비롯됐다. 신문은 지난해 9월 터번처럼 폭탄을 머리에 얹은 마호메트 풍자 만평을 내보냈다. 덴마크 대사관은 무슬림들의 표적이 됐다. 시리아 덴마크 대사관은 무슬림들에 의해 파괴됐으며 레바논 등지의 덴마크 대사관은 문을 닫아야 했다. <한겨레21>은 지난호(597호)에서 한국이슬람중앙회 선교국장 인터뷰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의 글을 받았다. 반대편의 의견을 듣는 차원에서 <한겨레21>은 2월16일 주한 덴마크 대사관을 찾았다. 이태원동 남산 밑자락 한적한 곳에 전경 1개 소대가 대사관을 지키고 있었다.
극단적인 분노 표출엔 안타까움
폴 O. G. 호이니스 대사는 ‘아랍통’이다. 그는 10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그가 “처음 무슬림들이 시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그들의 분노를 잘 이해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랍의 정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이슬람 관련 위원회에서 중동지역과 아랍어 연구를 해온 그는 거듭해서 무슬림이 지닌 ‘민감성’을 강조했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이 이웃과 그 문화를 모르면 그들에 대해 더 공격적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무슬림이 뭘 민감하게 생각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 모두가 배운 하나의 긍정적 교훈이기도 하다. 앞으로 누가 이같은 풍자 만평을 그릴 수 있겠나.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 그리려 한다면 편집장이 이렇게 얘기하지 않겠나. ‘지난번에 있었던 그 소란스러운 일을 기억하고 있겠지’라고.”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교리를 바탕으로 한 무슬림의 민감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무슬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근 두 주 새 무슬림들의 항의 시위로 10명 이상이 숨졌다. 시위는 파키스탄·시리아·레바논·아프가니스탄·인도네시아·팔레스타인·이란·요르단 등 거의 모든 이슬람 국가들에서 벌어지고 있다. 진원지인 덴마크 코펜하겐뿐 아니라 영국, 런던 등 유럽 곳곳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호이니스 대사는 “무슬림들의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고통스럽고 극단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해결책은 관용과 존중, 대화뿐”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인 차원의 대화도 시작됐다.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가 중동을 순방 중이다. 그는 마호메트 만평 파문과 관련해 이날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세계의 종교들에 대한 존중을 보장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유엔에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덴마크인의 60~65%는 만평 잘못”판단
호이니스 대사가 무슬림들의 분노를 이해한다고 해서 폭력 시위마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폭력 시위 방식은)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 사람들이 죽고 있다. 무슬림의 많은 지도자들도 지금의 폭력 시위가 옳지 않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또 한편으로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무슬림들의 분노의 원인을 제공한 언론과 정부는 별개라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덴마크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만평을 게재한 신문은 독립적인 민간 신문이다. 신문은 이미 사과했다. 하지만 아무런 책임이 없는 사람(정부)에게 사과를 요구할 순 없다.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은 요점을 벗어난 것이다.” 이와 별도로 그는 덴마크의 언론 자유 보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같은 정부와 언론사의 분리 대응 및 언론 자유 재확인의 두 가지 입장은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와 페르 스티 묄레르 외무장관 등 덴마크 각료들이 밝히고 있는 정부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 다만 호이니스 대사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언론이 항상 옳다는 것은 아니다. 언론이 법을 어겼다면 제재나 처벌이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언론에 수반되는 책임의 문제도 눙치고 넘어가지 않았다.
덴마크 대사관을 향한 무슬림들의 항의 시위가 다른 유럽 나라들의 대사관 건물 파괴와 파키스탄 등지에서 패스트푸드점인 KFC, 노르웨이 이동통신 업체 등 서구 자본을 상징하는 곳에 대한 방화 등으로 번지면서 무슬림과 서구 문명의 충돌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호이니스 대사는 이번 사태를 새뮤얼 헌팅턴이 말하는 문명 충돌의 한 유형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문제를 확대해서 볼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뜻이다. 그는 9·11 이후 유럽인들이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경향이 확산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라거나 테러리스트가 될 경향성이 높다고 얘기하는 것은 모두 위험한 생각들이다. 우리는 무슬림이 없는 지구에서 살 수 없다.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덴마크인들의 60~65%가 만평이 잘못됐다고 인식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태 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한다. “팔장을 끼고 있으면 안 된다. 해결점을 찾기 위해 앞으로 나가야 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기자에게 “만평이 문제가 된 이후 많은 아랍 친구들과 이 문제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사적인 통로에서 그들과의 대화가 벌써 시작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일찍이 지난해 12월 이 문제가 확산되기 이전 정부에 무슬림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한 바 있다. 무슬림들이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데는 서구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에서 무슬림은 어떻게 사는가
호이니스 대사는 인터뷰 중간에 준비한 몇 장의 자료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1월31일 마호메트 만평에 대한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총리의 견해를 담은 A4용지 한 장짜리 글을 꺼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읽어내려갔다. 정부의 입장을 가장 정확하게 담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덴마크 정부는 종교와 인종적 배경을 토대로 집단을 마처럼 만들려는 어떤 표현이나 행동, 암시도 비난한다.” 나중에 그가 준 자료 가운데 2월9일 덴마크 외무부가 작성한 ‘덴마크에서 이슬람에 대한 사실들’이라는 한 장의 문서를 살펴봤다. “덴마크엔 21만 명의 무슬림이 있으며, 모든 무슬림은 덴마크의 다른 시민과 같은 복지 시스템의 혜택을 받을 권리를 누린다. 교육과 의료는 무료다. …차별과 모욕적인 말과 행동을 금지하는 형법 조항을 위반했을 땐 처벌될 것이다.” 12개 항으로 정리된 이 문서를 보면서 지난해 파리 방리유 소요 사태를 취재하며 느꼈던 것처럼 문득 한국에서의 무슬림과 이주노동자 문제가 아른거렸다. 우리의 타 종교와 문화에 대한 관용은? 호이니스 대사에게 많은 한국인들이 이번 사태를 ‘서구의 오만’한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본다고 따지듯 물었던 것이 따끔하게 나에게 되돌아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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