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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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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은 연예인에 미쳤나

등록 2006-02-15 00:00 수정 2020-05-03 04:24

‘주식회사 이영애’ 사건 뒤에는 엔터테인먼트 주식의 ‘이상고온’ 현상이
연예인이 지분 사면 주가 치솟는 상황, 업체의 수익모델 부재로 폭락할 수도

▣ 문석 <씨네21> 기자

2월7일 뉴보텍이라는 코스닥 상장기업은 공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업계획을 밝혔다. “당사는 연기자 이영애씨가 가족과 함께 자신의 브랜드를 내세워 설립할 예정인 ‘주식회사 이영애’에 지분투자 및 경영권을 확보하여 당해 회사를 당사의 계열회사로 편입시킬 예정입니다.” 이 회사는 또 이 신규 법인에서 “이영애씨의 가족 이모씨와 당사의 한승희 대표이사가 당해 법인의 공동 대표이사로 취임할 예정이며, 이영애씨의 매니지먼트는 물론 드라마, 영화, 광고, 나아가 이영애 브랜드를 활용한 판권사업, 스타마케팅 사업을 영위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뒤 이 공시는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이 신규 사업의 핵심이어야 할 당사자 이영애가 “완전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팬텀 열풍으로 시작된 우회상장

다음날인 8일 뉴보텍은 공시와 기자회견을 통해 이영애씨의 오빠와 공동사업 진행에 대한 협의를 해왔고 사업 방향에 대한 구두 합의를 완료했으나 “의사소통 과정에서 약간의 오해가 생겨 본의 아니게 물의를 빚었다”고 꼬리를 내렸다. 그사이,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가 중인 이영애는 변호사를 통해 뉴보텍과 대표 한승희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증권가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이 사건의 배후로 백남수씨를 지목하고 있다. 그는 한때 한국 최대의 연예기획사라 불렸던 백기획의 리더였고, 2000년 코스닥 붐 속에서 에이스타스를 설립해 큰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당시 에이스타스는 이영애를 비롯해 김정은, 이나영, 김선아, 한고은 등 수십 명의 스타를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스닥의 열기가 식고, 사업모델의 부재로 회사는 기울기 시작했다. 또 백남수씨는 방송사, 스포츠신문 등에 ‘PR비’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구속되면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뒤편으로 잠시 사라졌다. 그러던 그가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업종 전환을 고려하던 뉴보텍의 이사로 영입됐던 것이다. 결국 이번 파문은 백남수씨가 주도해 밑그림을 그리는 와중에 ‘의사소통 과정의 오해’로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뒷사정이야 어쨌건 ‘주식회사 이영애’의 설립은 사실상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인 이영애의 강력한 반발이 존재하는 한, 이 법인이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애초부터 ‘주식회사 이영애’의 실체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진다면 뉴보텍은 허위공시 등으로 일정한 조치를 받을 것이 확실하다. 뉴보텍의 주가 또한 공시 발표 직후부터 급락해 연일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주식회사 이영애’ 사건은 한번 웃고 넘어갈 해프닝으로 지나쳐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한 연예인이 기업에 참여한다는 것에 이토록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심이 쏠린다는 사실은 비정상적인 상황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이상한 분위기는 지난해 중반 이후 엔터테인먼트 업체가 속속 상장함에 따라 주식시장에서 엔터테인먼트가 ‘테마주’로 떠오르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중반의 팬텀 열풍은 엔터테인먼트 주식에 대한 관심을 크게 불러모았다. 음반업체 이가엔터테인먼트와 비디오·DVD 유통업체 우성엔터테인먼트가 공동으로 골프공 제조회사이던 팬텀을 인수·합병하면서 만들어진 종합 엔터테인먼트 업체 팬텀은 이후 이병헌, 이정재, 장진영, 신은경 등이 소속된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와 김희선의 소속사 내추럴포스를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이런 과정 속에서 팬텀의 주가는 2004년 말 700원대에서 한때 3만원 후반대까지 뛰어올랐다.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우회상장한 스펙트럼DVD는 2천원대 후반이던 주가가 2개월 만에 4배로 올랐다. 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영화배우 하지원이 공동으로 스펙트럼DVD 지분 23.35%를 인수하면서 최대주주로 떠오르자 주가가 급등한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한류 스타인 장동건의 소속사 스타엠엔터테인먼트가 텐트 제조업체 반포텍을 통해 우회상장했다. 주가가 4천원대에서 2만4천원대까지 상승했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처럼 매니지먼트 업체 등 엔터테인먼트 업체가 우회상장하면서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빈번하다.

하지원은 주가조작 혐의까지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연예인이 주주로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주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장동건이 5.33%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반포텍을 비롯해 정준호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젠네트웍스나 하희라, 김승우 등이 주주인 소프트랜드, 권상우와 이동건 등이 참여하는 여리인터내셔널 등은 시장에서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다. 시장이 스타의 주식 소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기 때문이다. 배용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한류 등의 영향으로 스타들의 수익이 상당한 규모로 확대됐으며,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인터넷 TV(IP-TV) 등 새로운 미디어가 생겨나면서 콘텐츠의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스타 자신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스타가 그 기업의 ‘얼굴마담’ 정도 역할에 그치지 않고, 주주들에게 기업의 운명과 함께한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예인의 주식 보유는 안정적이지 않다. 하지원의 경우 지난해 5월 스펙트럼 지분 66만5천여 주를 인수할 당시 정태원 대표보다 지분이 0.01% 적은 11.67%를 확보한 2대 주주였다. 당시 경영권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하지원은 8월 들어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로 변경했고, 절반가량인 36만4천여 주를 매각했다. 시세차익은 무려 9억여원이었다. 검찰에서 주가조작 혐의로 하지원을 소환, 조사했던 이유도 하지원이 이름만 내세워 주가를 올려놓고 빠져나간 것 아닌가 하는 의혹 때문이다. 최근 장동건이 소유하고 있는 반포텍 주식 32만8162주(5.33%)를 자발적으로 증권예탁결제원에 보호예수하기로 결정한 것도 연예인의 주식 보유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의식한 탓으로 보인다.

연예인 주식을 보유한 기업뿐 아니라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은 주식시장에서 초강세를 보여왔다. 최근 코스닥 시장에 냉기가 흐름에 따라 다소 침체 국면을 맞고 있으나, 올 상반기까지는 엔터테인먼트 쪽 주가가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장된 엔터테인먼트 업체의 경우 장래성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그중 결정적인 것은 수익 구조다. 특히 매니지먼트가 골간을 이루는 기업의 경우 문제점은 더 심각하다. 그동안 매니지먼트 업체들은 수익성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소속 스타들이 영화, 드라마, CF에서 거액을 받는다 해도 회사가 갖는 몫은 상대적으로 적다. 신인급의 경우 회사의 몫은 50% 정도지만, 스타급이 되면 30% 정도로 떨어지며, 스타의 중량감에 따라 20% 혹은 1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매니지먼트사와 전혀 수익을 분배하지 않는 최고급 스타도 있다. 여기에 거액의 계약금과 경상비 등을 생각하면 지속적인 적자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들이 상장에 적극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상장 뒤 유상증자나 해외 전환사채(CB) 발행 등으로 큰 자금을 모은 뒤 수익성이 확보되는 신규사업에 진출할 계획을 펼치고 있다. 그 신규사업이란 영화나 드라마 제작이다. 하지만 제작업의 수익은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으며, 이들에게 제작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는 점 때문에 당분간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기업의 주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동부증권 장영수 연구원의 이야기처럼, 이들 엔터테인먼트 업체의 주가는 언젠가 폭락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찰나의 돈잔치가 될 가능상

결국 요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불고 있는 상장 열풍은 찰나의 돈잔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기서 생겨난 돈의 대부분은 인수·합병 또는 우회상장의 ‘그림’을 만들어낸 금융 전문가에게 돌아갈 것이다. 정작 엔터테인먼트 업체는 별 소득도 없이, 소액주주에게 피해만 입힐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무모한 도전은 계속된다. 이영애의 소속사 도어엔터테인먼트 이주열 대표는 “사건이 터진 뒤에도 ‘기사를 잘 봤다. 그러니 우리와 함께 상장을 하자’는 전화까지 걸려온다. 미친 것 아니냐”라고 말한다. 결국 ‘주식회사 이영애’ 사건은 “증시에서 어떤 분야의 붐이 식어갈 때의 전형적인 사례”(대신증권 김병국 연구원)이며, 머지않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다가올 ‘증시 파동’의 예고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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