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재에 관한 다섯 개의 고해성사]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고백…유년을 지배한 발길질 도끼질 발가벗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몰랐던 아버지는 저승에서 후회하고 있을까
▣ 김갑수/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니체가 그랬다. ‘여태까지 좋은 아버지가 없었던 사람이라면, 좋은 아버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지경, 좋은 아버지를 만들어내고 싶은 정황에 직면했다면 그는 이제 늙은 것이다. 시인 장석주를 속으로 좋아했었다. 치열했던 그의 젊은 시절 에세이에 자기 아버지에 대한 꽤 긴 언급이 있었다. 가혹했다. 그 옹색하고 굽실굽실하는 야비한 노인. 하지만 최근 읽은 글에서 그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있었다. 그, 장석주도 늙어버린 것이다. 예순 살도 되기 전에 벌써!
오로지 혐오와 경멸
혐오감, 관점의 차이, 증오, 경멸은 진정한 사랑에 수반되는 요소라고 스트린드베리의 글에 나온다. 진정한 사랑? 어쨌든 두 가지는 맞고 두 가지는 틀렸다. 관점의 차이가 있거나 증오라도 할 수 있을 만큼의 존중감이 드는 대상이었다면 내 성장기가 그처럼 처절하지는 않았으리. 오로지 혐오와 경멸, 이런 감정으로 한 사람을 상기해야만 스스로가 정당해지는 줄로 알았다. 아버지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차라리 드라마틱한 역사라도 개재되었다면 위로가 되었으리. “제 아버지는 빨치산 출신의 알코올중독 폐인이었습니다”라거나, 한 세 번째 첩의 무녀리 자식으로 태어났다거나. 끔찍하게 가난했던 것도 신체장애나 병이 있었던 것도 혹은 괴상한 종교에 빠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했다. 그 평범한 아버지의 아들이 특별한 악종이었던 것도 아니다.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초등학생이었고, 학급반장을 했던 중학생이었고, 교내 문예반장으로 제법 두드러진 고교생으로 성장한 아들이었다.
그 평범한 가정의 저녁 시간을 날마다 지배했던 것은 폭력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머리카락을 살짝 비켜 내리치는 도끼에 맞아 이제 죽는구나 하고 눈을 질끈 감는 열두어 살을 겪지 않았으면, 성냥불을 지펴 발꿈치를 지지거나, 완전히 발가벗겨져 대문 밖에 나가 한 시간쯤 벌을 서는 유년의 1월 추위를 체험한 적이 없는 사람은 모른다. 레퍼토리는 무궁무진했다. 내가 경험한 고문의 종류들은 돌이켜 생각하면 꽤나 창조적인 게 많았다. 대학 시절 관할 경찰서 대공과 형사들에게 죽도록 맞으면서도 이 친구들 참 단조롭구나, 하는 속생각을 했다. 직접적인 폭력이 저주와 비아냥거림의 언어폭력으로 바뀐 것은 발길질에 흠씬 차이던 어느 20대 봄날 장성한 아들이 가구와 문짝을 다 때려부수고 난 뒤부터였다. 순간적으로 힘의 열세를 깨달았던 것 같다. 하지만 뛰어난 언어구사력으로 이루어지는 교묘한 언어폭력의 괴로움은 주먹질, 발길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외아들에게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규명되지 않는다. 안 풀리는 세상사의 울분을 집에 돌아와 자신을 가장 닮은 자에게 풀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고 때리고 맞아서 사람이 죽어나가지는 않았다. 견딜 만한 폭력이었던 셈이다.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사랑없음이었다. 아버지는 온갖 귀한 것을 구해다 혼자 먹고 비싼 것으로 자기 몸을 치장하는 외에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랑이 없었기에 갈망은 크다
무정은 죽음으로만이 해결된다. 4년 전, 아니 5년 전이던가,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무도 내게 부고를 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례를 치르고 반년쯤 지났을 때 어머니가 전화를 해왔다. “네 아버지 죽었다”라고. 본의 아니게 무정 2대가 되었다. 나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무척 억울하고 미안했다. 그렇다고 무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방송 DJ를 하면서 거의 날마다 따뜻한 가정의 이야기를 사연으로 접한다. 극진한 부모사랑, 지극한 자녀사랑에 감정이입해 읽어나간다. 그 마음에 전혀 거짓이 없다. 사랑이 없었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가족끼리 서로 아끼고 위하는 사랑의 상태에 대한 갈망은 누구보다 크다. 내 아버지는 저승에 가서도 이를 득득 갈며 흉기를 준비하거나 지독한 말을 늘어놓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성싶다. 그도 많이 후회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정동영 “야인 시절, 통일교 윤영호 10분 만나…한학자 일면식 없어”

나경원 통일교 녹취 “제가 가운데서 조정했으면”…박지원 “국수본 조사 대상”
![[속보] 이 대통령, 통일교 의혹 전재수 장관 사의에 “수용할 것” [속보] 이 대통령, 통일교 의혹 전재수 장관 사의에 “수용할 것”](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1/53_17654197434303_20251211501520.jpg)
[속보] 이 대통령, 통일교 의혹 전재수 장관 사의에 “수용할 것”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전재수 장관 사의…“허위사실 밝히겠다”
![그래, 다 까자! [그림판] 그래, 다 까자! [그림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5/1210/20251210503747.jpg)
그래, 다 까자! [그림판]

윤한홍 “평생 못 들어본 욕, 윤석열에 의대정원 사과 건의했다가 다 들어”
![[단독] 전재수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현금 4천, 까르띠에·불가리 시계” [단독] 전재수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현금 4천, 까르띠에·불가리 시계”](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0/53_17653253287748_20250911503391.jpg)
[단독] 전재수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현금 4천, 까르띠에·불가리 시계”
![[단독] “하이브 소유 피알회사가 민희진 ‘역바이럴’했다”…미국서 피소 [단독] “하이브 소유 피알회사가 민희진 ‘역바이럴’했다”…미국서 피소](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0/53_17653630444751_20251210503717.jpg)
[단독] “하이브 소유 피알회사가 민희진 ‘역바이럴’했다”…미국서 피소

이 대통령-다카이치 첫 ‘셔틀외교’, 백제인 손길 담긴 나라현 사찰서 할 듯

말 바꾼 김현태 “나는 가짜뉴스 피해자…계엄군 총구 잡는 모습 연출돼”
![[단독] ‘세운4구역 설계 수의계약’ 희림 “시간 아끼려고”… 법 절차 생략 시인 [단독] ‘세운4구역 설계 수의계약’ 희림 “시간 아끼려고”… 법 절차 생략 시인](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5/1202/2025120250367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