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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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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정성, 그 청아함!

등록 2005-12-28 00:00 수정 2020-05-02 04:24

숨지기 한달전 뉴욕에서 3일 내내 술잔을 기울였던 노래친구의 추억
사람들에게 날리던 그만의 멘트 “형, 행복해야 돼!”를 잊을 수 없네

▣ 이창학/ 김광석의 친구·전 <노찾사> 멤버

세월이 참 빠르다. 광석이의 부음을 전해받고 어이없고 허탈해하던 일이 엊그제 일처럼 선명한데, 벌써 10년. 보고 싶다. 소년 같은 모습으로 파안대소하던 사람 좋던 그였기에 더욱.

가수 김광석과의 기억은 김민기 선배 주도하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음반 작업을 하던 1984년으로 거슬러간다. 전혀 운동권 같지 않은, 달라붙는 청바지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약간은 건들대던 낯선 모습으로 우린 첫 대면을 했다. 아현동 시장 어귀 애오개 소극장 연습실을 가득 채우던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처음부터 날 감동하게 하기에 충분했고, 같은 해 가을 노래모임 ‘새벽’의 <또다시 들을 빼앗겨> 공연에서 국민대 대강당을 가로질러 공명하던 <녹두꽃>은 너무 맑고 깨끗해 슬프기만 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절규하던 그 진정성은 기억하는 것만으로 지나간 삶의 순수함에 대한 회한으로 나를 흔든다.

청바지와 나이키, 약간은 건들대던 첫 만남

정말 사람 좋은 그였다. 노래모임 ‘새벽’ 활동을 함께하던 80년대 중반 그는 이화여대 근처 골목길에 있던 ‘Prominent’라는 카페 무대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했다. 가끔 보고 싶어 들르면, 그날 그가 받기로 한 개런티는 아깝지 않게 우리들의 술값으로 헌상되곤 했다. 홍익대 정문 옆의 음악학원과 상도동 ‘새벽’ 연습실에서의 어찌 보면 고되었던 음악 훈련 작업과 정치적인 학습 작업 속에서도 특유의 파안을 지어 보이면서 유쾌하면서 가볍게 이끌어가던 장난기 넘치던 대화들. 난 서로 헤어질 때마다 광석이가 사람들에게 날리던 광석이만의 멘트를 아직 잊지 못한다. ‘형, 행복해야 돼!’

‘새벽’ 활동을 접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동물원’ 음반이 우연히 손에 들어왔고, 정말 반갑게 그 청아한 목소리를 이국 땅에서 상업적인 음반을 통해 <거리에서>라는 노래로 다시 듣게 되었다. 그리고 잠깐의 귀국. 유명해진 가수 김광석은 여전히 순수하고 사람 좋은 후배로 넉살을 떨면서 찾아와선 사는 이야기를 다시 유쾌하게 털어놓으면서, 음악과 사람에 대한 나의 넋두리를 잘도 받아주었다. 사실 김광석과 나는 동갑이다. 하지만 대학 학번으로 서열을 엄하게 짓는 한국 사회 덕분에 난 그가 떠나기 전까지 미안하리만큼 톡톡히 형 대접을 받았다.

그가 가수로 잘나가던 시절에 난 미국에 있었기에, 사실 서로 소통할 길은 별로 없었다. 95년 겨울, 뉴욕에 있는 선배가 가수 김광석의 뉴욕 공연을 기획하고 싶다고 했다. 정말 오랜만에 유명가수 김광석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 그는 흔쾌히 내 부탁이라면 기꺼이 하겠다며 수락을 해주었다. 필라델피아에서 1회, 뉴욕에서 2회 공연이었다. 공연 준비 때문에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우린 3일 내내 밤새 그렇게 또 술을 퍼가면서 서로의 안부와 생활과 음악에 대해서 정감 어린 넋두리를 풀어놓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일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한 달쯤 흐른 뒤, 뉴욕 공연을 기획했던 선배가 광석이의 사망 소식을 전해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한 달 전에 여전히 사람 좋은 그와 마셔대었던 술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고 살갑게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귓전에 맴돌고 있어서, 더욱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얼마 전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 공연 관계로 이화여대 앞 골목들을 서성거릴 기회가 있었다. 갑자기 그가 노래하던 카페에 들러보고 싶었다. 지금도 난 기타를 둘러멘 그가 ‘형!’ 하고 부르면서 내 어깨를 툭 치곤, 일그러지는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담은 채 갑자기 신촌 어느 어귀에서 나타날 것 같은 환상을 꾸곤 한다. 우리들 젊은 날의 아름다운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그를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와 다시 술 한잔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슬픈 그의 노래를 그의 청아한 라이브로 한 번만 다시 들어볼 수 있다면!

이룰 수 없는 일과 사랑에 빠졌을 때, 너무나 사랑하여 이별을 예감할 때
아픔을 감추려고 허탈히 미소지을 때, 슬픈 노래를 불러요 슬픈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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