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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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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대리인과 CEO의 싸움?

등록 2005-12-27 00:00 수정 2020-05-02 04:24

청와대로 가는 지름길인 서울시장 선거, 20여 명 오르내리며 극도의 혼전양상…야당은 홍준표·맹형규 2강… 여당은 강금실·진대제 등 외부인사 영입론 힘받아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서울시장은 ‘소통령’이라고 불린다. 1천만 명의 인구와 16조원에 이르는 재정규모를 갖춘 시의 최고책임자다. 조순에 이어 고건, 이명박 현 시장으로 이어지는 민선 서울시장들은 하나같이 대선 후보의 명단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을 만큼 커다란 정치적 위상까지 따라다닌다. “서울시장은 청와대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박계동, 이재오·홍준표와 후보단일화?

누가 서울시장이 되느냐는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단연 가장 큰 관심거리다. 다른 곳과 달리 대선을 가늠해볼 수 있는 전초전 성격을 띤 지역이라는 것도 관심을 증폭시키는 이유다. 3월쯤 각 당에서 경선이 치러질 예정이지만 경쟁은 시작된 지 이미 오래다. 여야를 통틀어 20여 명의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 그야말로 백가쟁명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후보자들의 우열과 경쟁력도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먼저 불붙은 곳은 한나라당이다. 홍준표, 맹형규, 박진, 박계동, 이재오 의원 등 다섯 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원외에서는 권문용 강남구청장이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지방선거의 압승을 낙관하는 상황에서 ‘당내 경선 통과=시장 당선’이라는 당내 인식도 팽배하다. 그만큼 당내 경선은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는 ‘홍-맹’의 2강 구도다. 홍준표 의원은 국적법과 재외동포법으로 크게 떴고, SBS 앵커 출신인 맹형규 의원은 당내 정책위의장을 하면서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2강 구도는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당내 중도 성향의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 모임의 이재오, 김문수, 박계동 의원 등과 함께 친이명박계로 분류돼왔다. 비주류로 불린 홍 의원은 반박근혜(반박)로 꼽혔다. 당내 개혁기구인 ‘혁신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공공연하게 박 대표와 충돌을 빚었다. 맹형규 의원은 최근까지 정책위의장을 하면서 박근혜 대표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맹 의원쪽은 “다른 후보에 견줘 박 대표와 사이가 좋다는 것을 부인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맹 후보 쪽 캠프에 김무성 사무총장의 두뇌 역할을 했던 김현호 총괄특보가 가 있는 것도 당 지도부와 맹 의원과의 원만한 관계를 보여주는 예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 당내 유력한 두 대권 후보의 대리전으로 국면이 형성돼가는 것은 박계동 의원의 ‘3자 통합론’의 역할도 컸다. 박 의원은 이미 이재오 의원과 12월 안에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합의하고, 홍준표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 협상의 길을 터놨다고 밝혔다. 그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외형적으로 보면 발전연을 통일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지만, 범이명박계가 단일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나 이명박 서울시장 어느 누구도 특정 후보에게 박심이나 이심이 실렸다고 밝힐 리 없다. 대권을 향해 조심스럽게 행보해야 할 형편에 자칫 당내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서울시장에 되느냐는 두 사람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다. 박형준 의원은 “아니라고 해도 박 대표와 이 시장의 대리전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며 “특히 이 시장은 시장직을 열린우리당에 뺏기는 것을 절대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의 업적이 부정되거나 훼손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2007년 대선 후보를 위한 당내 경선 구도를 놓고 봤을 때도 이 시장이나 박 대표 모두 각각 자신의 이해를 대변해줄 수 있는 인물이 서울시장에 앉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해찬이 나설 확률은 0%”

시장 경선이 대권 후보의 대리전으로 비쳐지면서 반발도 나오고 있다. 당내 후보 가운데 3위를 유지하고 있는 박진 의원의 경우 2강끼리의 대리전 모양새에서 소외되기 때문에 반대한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에서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 박근혜와 이명박의 대리전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려는 세력들을 비판하고 있다. 분열을 조장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맹 후보 쪽도 같은 입장이다. 실제 대리전 양상으로 경선이 치러질 경우 이 시장 쪽 대리인이 유리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서울시당 관계자는 “서울시내 대의원이나 당원들은 지난해 말부터 이 시장 쪽으로 많이 돌아섰다”고 말했다.

당내 후보들끼리 경쟁이 가열되면서 물밑에서 지금의 후보론 안 된다며 폭넓게 거론되던 외부영입론에 대해서는 누구도 공개적으로 입을 떼지 못하는 형편이다. 외부 영입 대상으로 거론된 오세훈 전 의원은 출마 의사를 “접었다”고 밝혔고, 박세일 전 정책위의장은 소장개혁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안을 받고 있지만, 성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행정복합도시 법안 때문에 틀어진 박근혜 대표와의 사이를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외부 인사 영입을 총괄하는 김형오 의원은 “외부 인사 영입 문제는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할 일”이라며 “연초가 지나봐야 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외부 인사를 찾기도 쉽지 않다. 홍준표 의원 쪽은 “외부영입론이 자꾸 커져 당 분란이나 지금 후보들의 경쟁력을 깎아먹는 식으로 진행돼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 진영도 같은 의견이다. 다들 입을 맞춘 것처럼 “경쟁력 있는 인사의 영입은 환영하지만, 경선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못박았다. 1월31일이 예비후보자 등록 마감일인 것을 감안하면 영입을 위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김형준 국민대 교수(정치학)는 “여당의 후보가 분명해지고 지금의 후보로는 이기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오면 외부영입론이 불붙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시간은 그리 문제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외부영입론은 열린우리당 쪽에서 더욱 힘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의 유력 후보들이 정치인이기 때문에 상대적 경쟁력이 있는 최고경영자(CEO)형 자치단체장을 영입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큰 상황이다. 외부 인사 영입을 맡은 김혁규 의원은 “시민들은 정치인을 싫어한다. 지역발전을 위해 기업을 많이 유치하고 살림살이를 잘하는 경영 마인드를 지닌 시도지사나 행정 경험이 많은 인물을 원한다”며 “한나라당과 차별화할 수 있는 인물, 특히 시도지사와 접촉해 2~3명을 영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치인 대 CEO’의 대결로 간다면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다. 외부 영입 대상으론 현재 각종 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을 누르는 것으로 나타나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강 전 장관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출마 의사를 묻는 질문에 “노 코멘트”라면서도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한나라당 후보 진영에서는 강 장관이 본격적인 검증에 들어가면 온실 속에서 가꾸어진 이미지가 깨지기 마련이라며 과대포장돼 있다고 주장한다. 당 한쪽에서는 고재덕 성동구청장(민주당),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한때 이름이 오르내리던 김영춘 의원은 당 지도부, 김한길 의원은 원내대표에 도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강진 총리실 공보수석은 이해찬 총리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 “총리가 서울시장에 나설 확률은 0%”라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지금까지 명시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로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의 이계안 의원과 언론인 출신의 민병두 의원이다. 이 의원은 친노직계 의원들의 모임인 의정연구센터의 전적인 지원을 받는다고 밝혔다. 둘 다 중량감이 떨어지는 초선이라는 단점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들의 출마 자체가 경선의 흥행을 돋우는 측면도 있다.

2002년 민주당 김민석 후보의 교훈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인물 부재론, 대안 부재론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주요 광역단체장은 일찍부터 인큐베이팅(육성)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144명이 되는 의원 가운데 무게감 있는 서울시장 후보감이 없고, 외부에서도 확실한 카드가 없다는 비판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당의 지지율이 바닥인 지금의 연장선 위에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다. 배기선 의원실의 김성규 보좌관은 “서울시장뿐 아니라 광역단체장의 여당 후보감이 물망에 오르지 않는 것은 당이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기 때문”이라며 “연초에 당내 문제를 빨리 정리하고 체제를 정비해 정국 운영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인물도 중요하지만 당이 죽쑤고 있으면 선거가 힘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복원공사를 공약으로 내걸어 재미를 봤던 것처럼 후보들이 어떤 정책을 내걸지도 관심거리다. 공약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강남북 균형개발 △빈부 양극화 해소 △한강 개발 등의 이슈가 나오고 있다. 2002년 이 시장의 공약에 ‘안티’(반대)에 머물렀던 김민석 민주당 후보가 졌다는 교훈을 배운 열린우리당 후보들도 공약에 많은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예비 후보들 간에 희미한 윤곽이 드러나고 있지만, 아직 누가 앞서니 뒤서니라고 말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50%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어느 당의 어느 후보를 찍어야 할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라고 여론분석 전문가들은 말한다. 남은 5개월 동안 적잖은 변화들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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