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신천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윤리적 황무지를 걸어야 했던 황우석을 위한 변명세계… 기준이 전가의 보도가 되어 과학적 성취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도</font>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일찍이 생명윤리 전도사로 나선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면 ‘황우석 신드롬’은 한낱 신기루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생명윤리를 무시한 생명공학은 재앙이라는 한마디 말로 다른 시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일쑤다. 아무리 배아 줄기세포에 상상을 초월하는 가능성이 있다 할지라도 법적 기준이 없던 때의 윤리적 문제에 발목 잡히면 끝장인 양상으로 치달았다. 여기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거론하면 거친 반론은 입 밖으로 새어나올 틈을 찾을 수 없었다. 국내 과학계의 성취에 들떠 난치병 치료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로서는 삼키고 싶지 않은 쓴약을 약인지 독인지도 모르면서 입 안에 털어넣은 형국이다.
‘황우석 신드롬’은 신기루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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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는 세계줄기세포허브의 소장직을 비롯한 모든 겸직을 사퇴하고 ‘윤리적 파산선고’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밝혀진 난자 수급에 관련된 진실은 황 교수를 퇴로가 없는 궁지에 몰아넣었다. 황 교수팀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관련된 실험 과정에서 난자 매매가 이뤄졌고 연구원의 난자가 쓰였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표면에 드러낸 문화방송 <pd>의 한학수 PD는 “취재 결과 600여 개의 매매된 난자가 황 교수팀 연구에 사용됐고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이 직접 매매와 채취를 주도했다”면서 “연구원이 미즈메디병원에서 난자를 채취한 정황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런 지적은 지난 11월24일 황 교수의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사실로 밝혀졌다. 이날 황 교수는 소속 연구원의 난자 기증과 관련해 “여성 연구원이 찾아와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네이처> 기자의 취재 과정에서 2명의 연구원이 가명으로 난자를 제공한 정황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또 미즈메디병원의 난자 매매에 대해서는 “많은 난자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일부는 특별한 방법으로 조달될 수 있다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노 이사장이 별 문제가 없으니 연구에만 전념하라는 말에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았다”면서 “의사가 아니라서 일일이 난자 채취에 개입할 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보건복지부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는 황 교수 연구팀의 난자 수급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IRB의 조사 결과에서 “난자 기증 연구원이 연구 책임자의 불가권유를 수용하지 않고 자발적인 의지로 제공한 것은 한국과 서양의 문화적인 차이로 인식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황 교수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실수와 잘못이 있었지만, 당시 국제적 기준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연구자로서 내가 여자라면 난자를 기증하고 싶은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치료용 복제’(Therapeutic Cloning)라는 신천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윤리적 황무지를 거닐어야 했던 혹독한 시련인 셈이다.
이쯤 해서 난자 수급이 이뤄진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줄기세포’(Stem Cell)가 지구촌을 뜨겁게 흥분시켰다. 이 세포는 인체의 모든 조직을 만들 수 있는 만능세포로서 고장난 조직과 장기를 바꿀 수 있는 ‘재생의학’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점에 지나지 않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는 초기 상태의 배아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했다. 거기에서 줄기세포를 만들어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되도록 하면 난치병 정복의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됐다. 예컨대 환자가 자신의 체세포 유전물질을 이용해 줄기세포를 만들어 척수를 복구하고 이자섬으로 당뇨병 같은 난치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이미 지난 1999년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키면서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체세포 복제 기술을 확보한 황 교수팀에겐 매혹적인 연구과제였다. 당시에도 줄기세포로 의학사의 신기원을 향해 돌진하는 경쟁자들이 적지 않았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생명공학 회사 ACT(Advanced Cell Technology)는 2001년 11월25일 온라인 저널 <e->에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대다수 생명공학자들은 ACT의 인간배아 복제 발표에 분화의 성공에 이르지 못한 실패작이라며 ‘과학적’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인간배아 복제가 현실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일깨워줬다.
난자 확보는 연구에 절대적 구실
실제로 ACT가 성공하지 못했다 해도 황 교수팀에겐 도전적인 상황이었다. 이미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등록한 22가지 줄기세포주 가운데는 미즈메디병원 연구진이 개발한 것도 있었다. 체세포 복제 기술과 배아 줄기세포주를 확립하는 기술이 어우러지면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황 교수와 노 이사장 그리고 서울대 의과대학 문신용 교수(산부인과)가 2002년 2월에 뜻을 같이하면서 치료용 복제를 추진하게 됐다. 이들의 만남이 생명과학계의 ‘주변국’ 혹은 ‘아웃사이더’쯤으로 여겨지던 나라에서 체세포 복제를 통한 세계 최초의 인간배아 줄기세포 개발로 이어지고, 지금에 와서는 윤리와 학문에 엄청난 상처를 남길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의 미래는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절대적인 구실을 하는 난자를 확보하는 데 달려 있었다. 만일 ACT의 인간 배아 복제 시도 때 7명의 기증자로부터 71개의 난자를 확보하는 과정의 경험을 숙지하고 연구 환경을 조성했다면 지금의 파문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2001년 초반 인간배아 복제 계획을 시작하기 2년 전부터 윤리학자와 변호사, 불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윤리자문위원회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ACT는 이 위원회의 자문을 통해 여성이 연구 목적으로 난자를 제공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이유는 없으며, 난자 제공자가 잠재적 위험에 대해 자각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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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ACT는 보스턴 지역의 언론출판 매체에 광고를 실어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난자를 익명으로 제공할 용의가 있는 여성을 찾았다. 연구용 난자 기증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한 것은 불임 부부를 위한 생식용 난자 시장이 형성된 상황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연구를 예외로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 출산 경험자로 난자를 제공할 뜻이 있는 여성들은 각종 심리 테스트를 받고 감염성 질환을 비롯한 건강 검진을 받았다. 이 과정을 거쳐 12명의 제공자 후보를 선별해 1주일가량 호르몬을 주사해 과배란을 유도했다. 금전적 보상은 생식용 난자 제공에 준하는 4천달러(당시 500여만원, 시간당 40달러 기준)를 지급했다. 미국 사회에서는 난자 매매가 합법적으로 이뤄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사실을 황 교수팀에서 몰랐을 리 없지만 한국적 현실은 국제적인 ‘관행’과 거리가 멀었다. 지난해 5월 과학잡지 <네이처>에 난자 기증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된 정황은 국내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당시 <네이처>의 데이비드 시라노스키 기자가 주목한 것은 황 교수팀의 난자 수급 경로였다. 세계 각국의 생명공학자들이 ‘200개의 난자가 확보되면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도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난자 확보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황 교수팀에 속한 연구원은 시라노스키 기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와 다른 연구원 한 사람이 미즈메디병원에서 연구를 위해 난자를 기증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국적 현실은 국제적 관행과 달라
국내외에 적절한 윤리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고 의학연구의 윤리 원칙인 ‘헬싱키 선언’ 23항에 강제된 상황 회피 관련 내용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학자도 거의 없었다. 더구나 난자 제공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 지침조차 없었다. 미국만 해도 전미과학아카데미(NAS)에서 ‘복제에 관한 윤리 규정’의 초안을 마련한 게 2003년 12월이고, 올해 들어서야 규정으로 확립했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지난해 1월29일 제정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도 올해 1월1일에서야 발효됐다. 이 법에 따라 출범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위원장 양삼승 변호사)는 지난 7월15일 첫 회의를 가진 뒤, 한 차례 더 모였을 뿐이다.
이제야 난자 수급에 관련된 윤리적 의혹을 주목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서둘러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 심의위에 윤리계·과학계를 대표하는 14명의 민간위원으로 참여하는 황상익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한국생명윤리학회장)는 “난자 수급 과정에서 여성의 인권이 무시된 것은 우리 사회의 생명윤리 의식 부재와 정부의 책임 방기가 빚어낸 합작품”이라면서 “이제 우리나라는 생명과학 분야의 선진국이 아니라 야만국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낮은 생명윤리와 인권지수의 근본적인 이유를 성찰할 때다. 서둘러 심의위가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어쨌든 황우석 교수가 난자 수급 의혹에 관련된 모든 책임을 떠맡아 ‘백의종군’을 결심했다. 생명윤리에 관한 글로벌 스탠더드가 전가의 보도 구실을 하면서 과학적 성취를 일거에 무너뜨릴 기세다. 미국 피츠버그의대 이형기 교수는 기고문을 통해 “모든 문제는 난자 제공자로부터 ‘적법하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동의서를 받았는가 하는 데 있다’고 말하면서 “국제적인 연구윤리 관행을 황 교수팀을 비롯한 국내 과학자들이 무시한다면 세계 과학계의 따돌림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엔 1964년에 제정된 헬싱키 선언 같은 국제 윤리적 기준을 보편 규정으로 여겨 절대적으로 신봉해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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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눈으로 본다면 과학적 성과가 난자 수급 과정에서 제기된 절차상의 오류를 훌쩍 뛰어넘을 수는 없다. 하지만 윤리에 구속된 연구의 미래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예 연구의 길을 봉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난자 기증의 부작용을 침소봉대하는 식의 보도가 그렇다. 난자를 기증하는 여성들에게 주사하는 과배란 유도제가 난소과자극 증후군을 일으켜 간 손상이나 신부전 등을 드물게 일으키는 것이다. 불임으로 인공수정을 시도하면서 과배란 유도제를 주사한 여성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몸이 상품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그런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이면서 난자 수급에 관련된 문제를 풀 방법을 모색하는 게 사회적 책무다.
끝내 황 교수는 헬싱키 선언의 ‘헬’자를 몰랐다는 이유로 나락에 갇히게 됐다. 그것도 국가와 개인의 정서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달에 걸맞지 않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른 것이다. 지난 2000년 마지막 수정을 하면서도 40여 년째 큰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위력을 발휘하는 윤리적 기준이 지금의 시대에 여전히 적절한지에 의문을 품기도 힘겹다. 아무리 의학연구에서 생명윤리를 존중해야 할지라도 고정된 개념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도미니크 르쿠르는 저서 <인간 복제 논쟁>에서 “기술의 개발과 발전이 인간성의 한 줄기를 형성해왔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기술에 긍정적 목적을 부여할 때 자유로운 인간성이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미니돼지 유출에 미국법을 들이댄다면
그럼에도 제럴드 섀튼 교수의 결별 선언 이후 윤리적 진실은 황 교수를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황우석 신드롬’의 전도사 구실을 했던 언론들은 흐릿한 윤리의식에 대해 자기 반성을 하고, 주무부처 장관은 “국익도 중요하지만 국익을 먼저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순간 바이오 장기로 주목받는 ‘무균 미니돼지’가 떠오른다. 2003년 2월 황 교수팀의 연구원들은 미국 시카고로 날아가 미니돼지의 피부조직에서 체세포를 떼어내 드라이아이스를 채운 시험관에 넣어 공항 검색대를 빠져나왔다. ‘21세기의 목화씨’를 비밀리에 들여온 셈이다. 누군가 황 교수팀이 미국법을 어겼다며 ‘국익 범법’ 목록을 들여대지 않을까.</e-></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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