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용’이라지만 줄기세포를 위해 죽는 배아를 한번 생각해보면…
황 교수와 그 연구팀은 이번 사건으로 위축되기보다 성숙해질 것
▣ 도정일/ 문학평론가·경희대 영어학부 교수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복제배아를 만들고 거기서 줄기세포를 추출해낸 것이 황우석 교수와 그의 연구팀이다. 이 연구에 얽혀 있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윤리적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배아복제의 기술 자체가 극히 ‘위험한 장난’이라는 문제제기다. 복제배아를 키우면 그대로 복제인간이 된다. 인간 복제의 길을 터줄 수 있는 치명적 기술을 인간이 가져도 되는가? 둘째는 ‘생명의 수단화’라는 문제다. 복제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내고 나면 그 배아는 파괴된다. 복제배아도 엄연한 생명체다. 생명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라는 것이 생명의 윤리랄 때, 비록 ‘치료용’ 줄기세포라 할지라도 그걸 얻기 위해 배아를 죽여야 한다면 이는 생명을 수단화하고 그 존엄을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설명도 없었는데 ‘자발적’일까
그런데 황우석 교수의 연구 작업과 관련해서 이번에 불거져나온 윤리성 논란의 핵심은 이런 근본적 쟁점들이 아니라 연구 절차와 진행 과정상의 ‘부적절성’이라는 문제다. 물론 부적절성이라 해서 윤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도 논란의 초점은 두 군데로 모아진다. 하나는 실험용 난자들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비윤리적 행위는 없었는가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황 교수 팀의 여성 연구원들이 난자 제공에 참여했는가라는 문제다. 이 두 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난자 채취를 담당했던 미즈메디병원 책임자의 해명, 서울대의 자체 조사, 그리고 황 교수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진실이 밝혀진 상태다. 그러나 진실 해명이 중요하다면 그에 못지않게, 정확히 어떤 부분이 윤리적으로 부적절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도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중요하고 필요하다.
난자 확보 과정에서의 윤리적 문제의 핵심은 난자 제공자들이 돈을 받았는가 아닌가라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 공여자라 해도 실비 차원에서 보상을 해주는 것은 문제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난자 채취의 목적, 실험의 성격, 공여자가 겪을 수 있는 고통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주어졌는가라는 점이다. 문화방송
이것은 법률적 문제가 아니다. 윤리적 차원의 문제는 법률 차원의 문제와는 다르다. 미즈메디의 난자 수집이 생명윤리법 제정 이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점만 강조하기로 한다면 병원 쪽의 난자 확보는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으므로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건 사태를 바로 파악한 소리가 아니다.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것도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윤리의 차원이다. 이번 논란을 겪으면서 우리가 세심하게 성찰해야 할 것은 문제의 핵심이 법적 차원이 아닌 윤리적 차원의 것이며 국제 학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도 거기라는 사실이다.
인지 시점에서 ‘불가’를 선언했어야
여성 연구원의 난자 제공이 문제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것이 제아무리 자발적인 행위였다 해도 그 자발성이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라면 윤리적 부적절성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황 교수는 물론이고 실험실의 상급 연구자가 여성 연구원들을 상대로 회유나 암시 등의 방법으로 직·간접적 종용 행위를 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강압적 분위기가 있었을 가능성은 더더구나 상상하기 어렵다. 이 부분에 관한 한 황 교수의 해명은 존중되어야 한다. 여성 연구원들의 ‘자발성’ 주장도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 자발성이라는 것이 모종의 자기 암시나 자기 설득의 결과일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를 전면 배제하기는 어렵다. 연구원의 난자 제공 같은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가능성의 의혹 때문이다. 아무리 자발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그 자발성을 의심받을 만한 조건에서 연구원들이 난자 제공에 나섰다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이며, 황 교수도 그들의 의사를 인지한 시점에서는 단호하게 ‘불가’를 선언하고 그 입장을 관철했어야 옳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과학과 기술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수정해야 할 계기를 던져주고 있다. 황 교수가 24일의 기자회견에서 말했듯이 과학과 윤리는 ‘문명의 두 바퀴’다. 양자는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다. 인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과학과 기술의 반인간적 반문명적 질주를 수없이 경험했고, 그래서 과학기술에 윤리의 방향타를 붙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중한 자각을 얻기에 이른다. 그러나 기술경쟁이 심화되면서 그 소중한 자각은 점점 퇴색해서 “할 수 있으면 하자”는 기술주의적 사고가 사람들의 윤리적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다. 이런 사정이 가장 심각한 곳의 하나가 우리 사회다. “할 수 있으면 하자”라는 주장의 한국판 번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라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하고 앞서야 하고 상대를 꺼꾸러뜨려야 한다. 수단의 효율만 생각하고 그것의 윤리적 정당성은 생각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문제가 아니다. 아니, 법적으로 문제가 되어도 이기기만 하면 법조차도 문제가 아니다.
도구적 사고, 문명은 저주가 될 수도
과학은 기술, 종교, 예술과 함께 문명의 토대이다. 그러나 과학이 기술주의의 도구적 사고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그것은 문명의 토대이기는커녕 문명의 저주가 될 수 있다. 목적의 정당성은 따지지 않고 수단의 효율만을 생각하는 것이 도구적 사고다. 건강한 사회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면서도 도구적 사고가 사회를 전면 지배할 수 없게 제동을 걸 줄 아는 사회다. 그 제동을 거는 힘이 비판적, 윤리적 능력이다. 윤리는 과학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다만, 과학과 기술의 파괴적 일탈을 막는 것이 윤리다. 윤리 때문에 과학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 덕분에 과학은 건강해진다. 근년 들어 우리 사회는 위험할 정도의 국민주의적 애국주의가 도구적 사고와 결합하는 국면을 연출하고 있고 이런 경향은 이번의 윤리 문제 논란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일지 모른다. 황 교수와 그 연구팀은 이번 사건으로 위축되기보다는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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