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어렵게 재개된 6자회담에 또 걸림돌,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불거져
북한 특정 회사와 거래한 미국 내외 기업들의 자산 동결 등은 치명적</font>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대북 금융제재부터 풀어달라.”
11월9일부터 열린 베이징 5차 6자회담장에서 불쑥 튀어나온 북한의 요구가 큰 관심거리다. 5차 6자회담 이틀째인 10일 북한이 자국 기업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자산동결 조처와 위조 달러 공모, 마카오의 중국계 은행 돈세탁 주장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0일 북한이 자국 기업 자산동결 조처 등을 우려한 데 대해 “이는 6자회담 틀 밖의 이슈”라고 잘라 말했으나, 북한 처지에서 미국의 조처는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닌 듯하다.
국내 언론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았으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미 지난 6월29일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연루된 북한, 이란, 시리아의 기관·기업과의 거래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조처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연루된 모든 기업의 자금줄을 철저히 봉쇄, 차단하기 위해 내려진 것이다. 그런데 이 조처는 다수의 관련 기업들에게 이전과는 견줄 수 없을 만한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 조처는 대상 기업뿐 아니라 그 기업과 거래하거나, 거래를 시도한 미국 내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나아가서 제재 대상기업과 거래한 한국 기업도 엉뚱한 불똥을 맞을 수 있다.
남북 교역에도 부정적 영향
행정명령 부속서에는 북한의 조선광업무역회사, 단천상업은행, 조선련봉총회사가 제재대상 기업 명단에 포함돼 있다. 이들 제재대상 기업과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연루됐다고 미국 정부가 판단한 외국인과 거래가 있거나 거래를 시도한 사람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곤욕을 치르게 된다. 즉, 이들의 미국 내 자산과 미국인이 관리하는 자산에 족쇄가 채워지고 미국인 혹은 미국 기업과의 모든 거래는 금지된다. 미국 재무부 대변인은 6월30일 “제재대상 기업과 연루된 (국내외) 기업의 명단과 혐의는 추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혀 제재가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이 조처가 중·장기적으로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을 위축시켜 남북 교역 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수출입은행 관계자는 “당장 북한과 거래가 많고 거래 내용이 불투명한 중국, 러시아 등의 기업은 대북 거래가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며 “향후 국내 기업들이 북한의 남북경협 이외의 기업과 거래할 때 사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소리방송>은 6월30일치에서 러시아와 중국 회사 등의 피해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유엔의 제재만이 합법적이라고 미국의 조처에 반발하는 방송을 내보낸 바 있다.
이런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재무부는 예정대로 10월21일 8개의 북한 기업을 추가로 제재대상 기업 명단에 집어넣었다. 해성무역, 조선종합설비수입, 조선국제화학합작, 조선광성무역, 조선부강무역, 조선영광무역, 조선연화기계합작, 토성기술무역 등 8개사에 대량살상무기 확산 지원 협의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이 조처로 미국 내에서 발견되는 이들 북한 회사의 모든 은행계좌나 금융자산은 꽁꽁 묶이고 미국 국내외 기업들도 이들 회사와 거래할 경우 같은 제재를 받게 된다. 이 기업들은 모두 외화벌이에 공을 세우고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종합상사 격 회사다.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테러·재무담당 차관은 “우리는 이런 위험한 활동을 하는 회사들을 지속적으로 밝혀내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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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목 조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은 위조 달러 공모 협의도 받고 있다. 마카오의 중국계 은행인 ‘방코 델타 아시아은행’을 통해 위조 달러 지폐를 유통시키고, 마약 등의 불법 국제거래 대금을 세탁해 자금 조달과 융통을 해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미 재무부는 9월16일 해당 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자국 내 금융기관들에 일체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엄벌을 내렸다. 또 <뉴욕타임스>는 10월24일치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 물질과 미사일 수출을 막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부품과 기술을 실은 비행기의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미국의 공세는 그 의도가 어렵지 않게 파악된다. 북한의 핵개발에 쓰인 것으로 의심되는 모든 자금줄을 사전이든 사후든 모두 끊겠다는 것이다.
이 자금줄이 북한 경제의 생명줄과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미국의 잇단 제재는 북한 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이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10월18일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움직임을 향후 6자회담에서 북한의 선 핵포기를 강압하는 사전 압박 공세라며 합법적인 금융거래를 차단하는 제재 조치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6자회담 북쪽 대표단장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11월8일 베이징으로 떠나기 앞서 평양 순안공항에서 ‘9·19 공동성명’을 등대에 비유한 뒤, “지금은 이 등대가 우리한테서 너무 멀리 있는데다 바다 위에는 안개까지 자욱이 피어오르는 바람에 등대가 흐려져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면서 일련의 미국 쪽 행위가 안개를 한층 더 짙게 하고 방향을 더욱 분간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9·19 공동성명은 머나먼 등대
이처럼 미국은 한 손에는 ‘협상카드’를, 다른 한 손에는 ‘제재 카드’를 쥐고서 압박 강도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힐 차관보는 북한 기업에 대한 각종 제재 조처와 관련해 “사법 당국의 문제는 6자회담의 이슈가 아니며 미 재무부가 다루고 있다”. 나는 금융 규제에 관여할 입장이 아니다”며 자신과 무관한 문제임을 강조했다. 그는 “그들은 마카오은행 문제에 대해 ‘유쾌하지 않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런 금융 부문 제재는 내가 한 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 은행에 제재를 가한 것은 마카오 당국, 곧 중국 당국이다.” 힐 대사는 이어 “미국으로선 미국의 금융기관에 그런 은행과 거래하지 말라고 한 것뿐”이라고 다소 옹색한 변명을 했다. 힐 대사는 따로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하면서 김계관 북쪽 대표단장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북쪽은 한반도 비핵화와 관계 개선의 의지를 담은 지난 4차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음에도 자산 동결 같은 미국의 조처가 나온 것은 공동성명의 취지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공동성명의 이행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이 던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북쪽 지도부 내부에는 늘 적잖은 파문을 불러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금융제재 등은 어떤 식으로든 전개될 6자회담에 먹구름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애초 ‘9·19 북핵 공동성명’의 구체적·실질적인 이행 방안을 논의하려던 목표가 차질을 빚게 된 셈이다. 미국이 북한 지도부를 납득시킬 만한 유연한 조처를 취하지 않는 한 핵협상의 순항은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북한은 미국의 압박을 빌미로 5MW 영변 원자로 가동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서 회담의 전망을 더 어둡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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