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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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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꾼들이 벌벌 떠는 그 이름!

등록 2005-11-16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23년동안 도굴꾼 170명에게 쇠고랑 채운 문화재청 강신태 사범단속반장
도난현장을 딱 한번 보기만 해도 누구 짓인지 감 잡는 ‘최고의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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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람들은 그를 보고 “선수들이 인정하는 업계 최고의 고수”라고 말했다. 지난 23년 동안 그가 잡은 문화재 도둑과 도굴꾼은 모두 170여 명, 되찾은 문화재는 1500점이 넘는다. 그의 얼굴에는 당대 최고 내공을 가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아우라가 넘쳐흘렀다. 그는 사건의 이름만 대면 범인·범죄수법·검거방법 등을 줄줄 외웠고,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나”라는 추임새도 잊지 않았다. 4년 남짓의 기자 생활 동안 그와 비슷한 내공을 가진 사람을 딱 두 번 본 적 있다. 하나는 2003년 <한겨레>의 부산 오락실 검경 상납 비리 연속보도(이 때문에 100명 가까운 부산 경찰들이 직위해제됐다)를 가능케 한 핵심 제보자, 또 다른 사람은 <범죄의 재구성>의 ‘김 선생’이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 강신태(54) 반장은 “도난 현장을 한 번 딱 보기만 하면 어느 놈이 범인인지 대강 감이 온다”며 “지킬 것은 지키던 옛날 문화재 도둑들에 견줘 요즘 것들은 기본이 안 돼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프로는 국보 안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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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인 예가 2003년 국립공주박물관에서 국보 247호 금동관음보살입상을 훔쳤던 도둑들이다. 지난 2003년 5월15일 30대 초반의 도둑 2명이 공주 국립박물관에 침입해 당직 직원을 묶은 뒤 국보 247호와 보령 앞바다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상감청자 접시·잔 등 문화재 4점을 훔쳐 달아났다. 국립 박물관에서 국보가 털린 ‘엽기적’인 사건에 전국에서 한다 하는 베테랑 경찰들이 긴급 수사본부 아래 착착 모여들었다. 경찰과 박물관 쪽에서는 “전문적인 문화재 도둑의 소행” “이라크 전쟁에서 약탈자들이 바그다드 국립박물관을 털었던 것을 모방한 범죄”라는 의견을 내놨지만, 강 반장의 생각은 달랐다.

“진정한 프로는 국보 같은 등록 문화재는 안 건드리거든. 이런 물건은 유명하기 때문에 유통이 안 돼요. 또 프로들은 문화재를 잘 알기 때문에 돈벌이가 중요하다고 해도 지킬 것은 지킨다고.” 그가 보기에 범인들은 문화재를 처음 털어보는 ‘초짜’들이었다.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2001년 2월에 자신이 검거한 문화재 전문 털이꾼 ㅅ(45)씨의 행방을 찾았다. 업계 사정에 정통한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ㅅ씨는 그때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다. “반장님, 저도 그곳에 사전 답사를 여섯 번쯤 갔습니다. 다음은 전주 박물관 차례입니다.” ㅅ씨가 대뜸 입을 열었다. 그는 “문화재 도둑들의 수법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반장님도 아직 순진하십니다. 요새는 애들 데려다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요새 애들은 국보고 보물이고 그런 것 모른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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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반장은 수소문 끝에 국보를 훔친 일당을 잡아 “국보만은 돌려달라”고 설득했다. 결국 도난 10여 일 만에 무사히 박물관의 품으로 돌아왔다.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강 반장의 예상대로 청송 감호소 출신의 이 바닥 ‘초짜’들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잡은 도둑 가운데 “ㅅ씨가 최고였다”고 치켜세웠다. 업계 최고의 고수에게 인정받은 ㅅ씨는 서울 출생으로 전직 인테리어 설비업자로 일하다 “문화재가 돈 된다”는 소리를 듣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

“이 친구 능력이 대단했어요. 인테리어를 하던 놈이니까, 방범 시설들을 어떻게 뚫고 들어가야 하는지 잘 아는 거야. 레이저는 껌으로 붙여놓고. CCTV는 살짝 피하고 아무튼 대단했다니까.” 그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2000년 9월24일 해남 대흥사 유물전사관을 털 때였다. ㅅ씨 등 3인조로 이뤄진 문화재 털이범들은 ‘거사’에 앞서 박물관을 4~5차례 사전 답사했다. 그들은 절 직원이 오후 12시부터 30분 동안 점심을 먹으러 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범행 계획을 세웠다. 직원은 출입문에 작은 자물쇠만 걸어두고 방범 장치도 가동하지 않은 채 자리를 비웠다.

도굴꾼들은 다들 일찍 죽더라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겠지.” 강 반장이 말했다. ㅅ씨 등은 특별 제작된 펜치로 자물쇠를 부숴버린 뒤에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문화재는 유리 진열장 안에 들어 있었지만, 일제 칼로 유리와 유리를 잇는 실리콘 부분을 쉽게 잘라냈다. 이들이 훔쳐 달아난 유물은 대방광불화엄경 등 고서적 13점이었다. ㅅ씨는 경찰 추적을 따돌릴 시간을 벌기 위해 전시관 밖으로 나올 때는 큰 자물쇠를 잠가놓고 나왔다. 절 쪽에서 자물쇠를 부수고 도난당한 물건을 확인했을 때, ㅅ씨 등은 이미 광주까지 도망간 상태였다.

ㅅ씨는 이 밖에도 1998년 12월14일 충남 서천군 월남 이상재 선생 유물 전시관, 전남 해남 대흥사 유물전시관(2000년 9월24일), 경북 영주 장말손 유물전시관(2000년 6월4일) 등을 털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보안 시스템을 자랑한다는 경기 용인의 호암미술관 2층 전시실도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호암미술관 CCTV에는 이 녀석이 잡혔더라고. 홍라희씨가 이건희 회장에게 도난 사실을 숨겼다가 나중에 크게 혼났다는 얘길 들었지.”

그렇지만 그도 강 반장의 손아귀를 벗어나진 못했다. 연쇄 사건을 추적하던 강 반장의 머리 속에 경기 ㅇ시와 경남 ㅅ시의 문화재 중간업자가 떠올랐다. 강 반장은 ㅅ씨가 연결된 문화재 유통 흐름을 추적해 2001년 2월 그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강 반장은 보물 604호 ‘적개공신 장말손 상훈교서’와 보물 881호 ‘어사패도’를 되찾았다.

강 반장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최근 들어 문화재 관련 범죄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995년 KBS의 <진품명품>이 시작된 뒤 ‘문화재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뿌리내린 게 문제예요. 한번은 <진품명품>에 나온 영정이 1억7천만원의 감정가가 나왔어요.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요? 전국 서원·향교·사찰에 있는 영정의 씨가 말랐다니까.”(그래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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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굴꾼들은 오래 못 살고 다들 일찍 죽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게 남의 무덤을 함부로 건드린 데 대한 업보인지, 400kg이 넘는 석상을 등에 지고 다람쥐처럼 날아다닐 만큼 몸을 혹사시킨 대가인지 짐작하기는 힘들다. “문화재를 훔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거든. 어찌 보면 그 사람들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그만합시다.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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