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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중국처럼 만들어라”

등록 2005-10-26 00:00 수정 2020-05-02 04:24

‘상행위’에서 출발해 전략적 목적 달성하려는 중국 정부와 상인들의 노림수
대북진출 주도권이 조선족에서 점차 한족으로 넘어가는 현실을 주목해야

▣ 권오훈/ 중국 정치·경제 전공 박사·베이징 거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사이의 2000년 이후 회담에서 결정됐던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장쩌민은 북한이 중국식의 개혁·개방을 하면 중국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후진타오 국가주석 체제로 바뀌면서 지난 3월 베이징을 방문한 박봉주 내각 총리를 통해 그것을 재확인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정말 장쩌민의 조언이 후진타오 체제 이후에도 변함이 없는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결국 중국 지도부의 대북정책은 흔들림이 없는 것이었다. 후진타오 주석이나 원자바오 총리 등 현재의 지도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고위 인사들에게 중국의 입장을 끊임없이 설명했고, 이제는 공식적으로 북한에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우이 부총리의 최근 방북이 그것이다.

중국은 왜 6자회담에 매달렸나

중국에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본격적인 북한 진출을 위한 사전정비가 필요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그러한 일들의 예비 단계로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의 훈춘시가 나진항 부두의 사용권을 취득한 것이나, 평양 중심가의 제1백화점 등을 인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시적인 작은 성과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당국은 본질적으로 중국 자본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일단 정치적인 현안들이 해결돼야 한다고 봐왔다. 그것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결과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아직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 지도부는 이미 북한에 대한 최대 지원범위를 사실상 확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액은 최소한 약 30억달러 수준으로 공고한 양국 간 경제협력 구조를 구축한다는 것이 바로 원자바오 총리의 복안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나온 수치가 아니다. 일종의 양국 간 경제적인 협력 구도와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 그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중국 공산당 내부의 연구결과이기도 하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두 나라의 강력한 연대성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협력에 대해 중국은 이미 주요 방침을 확정한 상태로 보면 된다.

중국은 북한과의 경제협력 증진을 위한 다양한 방식을 모색 중이다. 지난 10월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60돌을 기념해 만든 유리공장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볼 수 있다. 유리공장은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북한의 외관을 확 바꿔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난방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서고 있다. 중국은 유리공장을 계기로 본격적인 건설 분야 진출까지 겨냥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북한 접근과 관련해서는 여러 시험적인 진출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우선 지리적으로 가깝고 장악이 가능한 곳에 전략적 거점을 세우려 하고 있다. 이 거점을 토대로 유통과 건설, 그리고 중국이 가장 눈독을 들이고 있는 지하자원 확보에 선점적 효과를 갖는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다. 우이 부총리가 최근 평양 방문에서 인프라 건설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것은 바로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면 된다. 북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지하자원을 개발하고 수입하기 위해서는 도로·철도·항만 등 인프라 건설 없이는 어렵기 때문이다.

신의주 카지노 사업은 경계

중국 지도부는 특히 북한이 쉽게 빨리 돈을 벌려고 도박(카지노)성 사업에 손을 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 동북3성 쪽 후방을 어지럽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것은 중국 당국이 신의주행정특구를 반대한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은 신의주에서 가까운 비단섬에다 카지노를 열기 위해서 행정특구 카드를 끄집어냈다고 보고 있고, 이런 행위는 다시는 용납이 안 된다는 게 중국 지도부의 확고한 입장이다.

중국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북한의 경제 시스템을 중국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빨리 끌어올리면 훨씬 다양한 방식과 아이템으로 북한 진출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바로 이 대목이 올해 초 박봉주 북한 내각 총리와 중국 지도부 사이에 열린 회의의 핵심 중 핵심이다. 실제로 북한의 정책 변화는 중국의 그것과 유사하게 바뀌어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문서상의 시스템이 아니라 실질적인 유사성과 함께 서로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모든 계획들을 언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느냐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그런 의미에서 강제적으로 조합된 하나의 담합 구도라고 봐야 한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들이 풀려져야 다음 단계로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 번 풀어진 고리는 쉽게 다른 고리로 옮겨갈 것이다. 물론 핵 포기에 따른 대가로서 경수로 건설 등 에너지를 지원한다는 게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긴 하지만, 중국의 경제개혁 초기에 에너지는 문제이긴 했지만 문제가 안 되는 방식으로 처리된 적도 있다.

중국은 북한에 에너지를 지원하는 문제가 끝내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른 지원 방식을 고려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중국 지도부가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자본의 대북 진출 러시의 이유이기도 하다. 상행위의 귀재라 할 수 있는 중국 상인들이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중국 지도부의 이런 생각과 무관치 않다. 초기에 무역이나 유통에 손을 대다가, 점차 중국 당국 차원의 인프라 지원이 맞물려 들어가면 중국 상인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중국의 진출은 무역 혹은 유통, 즉 ‘필요한 물자들의 조합’이라는 단순한 ‘상행위’에서 출발해 어느 순간에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중국 당국은 이를 잘 알고 있고, 이런 접근 방식에 능한 것이 중국 상인들이다.

조선족 등 민족문제 정비하려 해

따라서 이전에는 주로 조선족이 주류를 이루던 북한과의 교류에서 점차 중국 한족이 대북 진출에서 주도권을 쥐는 현재의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중국 지도부의 노림수이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는 본격적인 북한 진출에 대비하면서 정비할 요소 중 하나로 민족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사실상 북한과 가장 인접한 옌볜조선족자치주의 개발 자체에 조선족이 개입할 여지를 만들지 않도록 정책적인 조합을 할 만큼 치밀한 요소들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북-중의 관계는 순망치한의 관계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중국에 북한이 중장기적으로 미국이나 일본의 경제적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나 일본에 의한 북한 시장 병탄은 중국에 뒤통수를 맞는 것과 같이 위협적일 수 있다. 그것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 현재 중국 지도부의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부적으로 결정되는 다양한 북한 진출 전략이 갈수록 높은 차원의 단수로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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