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재 시장 싹쓸이에 인프라 건설은 물론 철강석 등 자원개발 눈독
후진타오의 방북으로 경제협력 초절정 분위기 속에 예속화 걱정하기도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중국이 작심하고 북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10월28일부터 사흘간 이뤄질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의 방북에 맞춰 두 나라의 경제협력은 절정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짐작이다. 북-중 외교 실무자들은 후 주석의 평양 방문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물밑에서 현안 조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중 정상 사이에 겉으로 드러난 최대 현안은 북핵 문제 해결이다. 그러나 물밑에선 단연 경제협력 문제가 최대 관심사다. 베이징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 실무자들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 테이블에 많은 의제가 오르겠지만, 특히 북한이 중국 정부에 시장경제 원리에 토대를 둔 경제정책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후진타오 주석은 자신이 핵 문제 해결 이후 북한의 개혁·개방에 결정적인 견인차 구실을 했다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후 주석은 북한 방문을 계기로 그동안 여러 차례 요구했던 북한 경제 개방의 획기적인 진전을 직접 이끌어내는 모양새를 보여주려 하는 셈이다. 후 주석은 지난 10월1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에게 전문을 보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부강 번영하고 형제적 조선 인민이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를 충심으로 축원한다!”고 말했다.
후 주석의 방북에 앞서 10월8일부터 사흘간 평양을 방문한 우이 부총리는 북한과 여러 경제 현안을 미리 조율했다. 그는 특히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 “북한은 철저한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가 작동될 수 있도록 북한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현재 내각에서 충분히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는 게 현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귀띔이다. 그런데 이런 조언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박봉주 내각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로부터 비슷한 내용의 고언을 들어야 했다.
부총리선의 시장경제 협력논의 이미 끝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이런 제안을 한 중국 인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 주석은 이제 자신이 나설 차례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이번에 김 위원장을 만나 ‘조언’과 더불어 ‘대담한 지원’을 통해 핵 포기를 유도하고, 획기적인 개혁·개방 조처에 대한 결단을 이끌어낸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속셈인 셈이다. 우이 부총리의 방북 결과는 후진타오가 이끄는 중국의 향후 대북정책 방향을 미리 잘 보여준다. 우이 부총리와 북쪽 고위층 사이에는 여러 건의 굵직한 경제협력 사업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박봉주 내각 총리를 만나 북한의 자원개발과 인프라 건설에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다. 또 지난 10월10일을 전후해 중유 1만t을 북한에 무상으로 지원함으로써 돈독한 신의를 다졌다.
중국의 북한 자원개발과 인프라 건설 참여 선언은 북한 경제가 급속히 중국 쪽으로 기우는 것을 예고한다. 중국 기업들은 지금까지 주로 소비제품 위주로 북한 시장을 두들겨왔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인프라 건설에까지 뛰어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인프라 건설 참여는 곧 중국 자본의 북한에 대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획기적으로 커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급속히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10년에 걸쳐 3천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자본을 북한에 쏟아부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북-중 경제협력은 이미 밝혀진 것만도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북한 노동당 창건 60돌(10·10)을 맞아 조업을 시작한 대안친선유리공장과 평양자전거합영공장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들로 통한다. 유리공장은 중국 정부가 2천400만달러를 투자해 무상으로 북한에 건네준 것이다. 판유리를 생산하는 이 공장은 컴퓨터로 모든 생산공정을 제어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월10일 준공식 때 직접 참석해 만족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전거는 에너지가 모자라 헉헉대고 있는 북한에 매우 요긴한 물건이다. 중국의 톈진디지털무역책임유한공사는 첨단 자전거 설비와 다양한 종류의 최신형 자전거 모델을 북한에 제공했다. 이 회사는 특히 화물용 자전거가 북한의 어려운 물류난을 크게 덜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와 통일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북한 투자는 2000년의 100만달러보다 50배가 늘어났으며, 북-중 간 지원성 교역을 뺀 상업성 교역 규모만도 13억8500만달러로 북한 전체 교역의 42%를 차지했다.
2400만달러 투자해 유리공장 건네줘
이런 분위기 탓인지 북한의 <노동신문>은 10월15일치에서 북-중 관계가 최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중국 당과 정부가 무상으로 우리나라에 현대적인 유리공장을 건설해주기로 결정한 것은 중-조 친선을 귀중히 여기고 우리 인민의 사회주의 건설 위업과 생활 향상에 기여하려는 숭고한 동지적 우의와 원조의 최고 발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후진타오 주석을 극찬한 대목은 오늘날의 북-중 관계를 잘 보여준다. “존경하는 호금도(후진타오)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중국의 새 중앙영도집단이 중-조 친선을 고도로 중시하고 그를 공고 발전시키기 위해 얼마나 큰 힘을 넣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집중적 표현”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북-중 간의 끈끈한 유대는 정치·안보 분야뿐 아니라 경제 쪽으로 무게중심이 급속히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이 한반도 상황관리 차원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더 가속화한다면 중국의 대북한 지원 정책과 규모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눈여겨볼 현상은 북한에 진출해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는 중국 기업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 기업들은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가운데 철광석 같은 지하자원은 중국이 빠른 경제성장으로 물량이 달리자 필사적으로 자원 확보에 매달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먼저 돈을 투자해 지하광산을 개발한 뒤 나중에 필요한 제품을 되사가는 방식이 유행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중국 길림성기업은 북한 무산광산연합기업소와 함께 철광석 개발에 5천만달러를 투자했다. 이런 투자에 힘입어 중국은 지난해 4천452만달러어치의 철광석을 수입할 수 있었다. 중국 동북 3성과 가까운 나진선봉이나 함경남북도 북부 지역 등에 흩어져 있는 알짜배기 기업이나 공장 등은 거의가 중국 상인의 수중에 들어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일부 기업들은 많은 돈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방위산업이나 탄광과 관련된 기업들은 현금 동원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나진항 운영권도 중국 기업이 틀어쥐어
중국의 숙원사업인 동해로의 출구 마련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나진항 부두 운영권 등도 최근 중국 기업이 틀어쥐었다. 훈춘시 둥린무역공사와 훈춘국경경제협력지구보세공사는 북한의 라선시 인민위원회와 50 대 50으로 자본금을 출자해 라선국제물류합영공사를 세웠다. 이 공사는 나진항 3부두와 4부두를 앞으로 50년간 독점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지난 2002년 7월 이후 활성화되고 있는 북한의 소비재 시장은 이미 싸구려 중국산으로 점령당한 지 오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관계자는 북한 시장에서 중국산 공산품의 시장점유율이 70%를 넘는다고 말했다. 중국 상인의 서비스 산업 진출도 눈부시다. 평양의 대표적인 국제호텔인 양각도호텔의 지하 가라오케, 사우나, 안마시술소 등 돈을 짭짤하게 벌 수 있는 사업들은 중국 상인들이 싹쓸이를 한다. 남쪽 기업에도 접근해 같이 사업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기업인들은 귀띔해준다.
중국의 본격적인 북한 진출을 바라보는 북한 지도부의 속내가 편해 보이지만은 않다. 일부 관계자들은 이런 활발한 경제협력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또 일부 지하자원은 북한이 중국 기업의 상술에 말려들어가 국제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팔리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미국이 여전히 전방위로 그물을 쳐놓은 경제제재 조처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중국과의 경제적 소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박봉주 내각 총리를 비롯한 북한 관료들이나 기업인들은 중국과의 무역이나 투자를 적극 환영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
물론 중국의 북한 진출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북한이 더 안정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는데다 손발을 잘 맞추면 경제 회생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의 일부 기술 관료들은 중국에 편향된 경제협력은 피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경제협력 파트너의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지도부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한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북한 내 전체 외국인 투자액에서 중국의 지분을 줄이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한국·유럽의 투자도 기다린다"
북한은 중국의 이런 요구에 대응해 한국의 ‘국가재건특별위원회’와 비슷한 파격적이면서 강력한 힘을 가진 개혁·개방 추진 기구 창설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기구는 당분간 주식회사 법인 형태로 운영하면서 내부 경제 개혁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로부터의 외자 유치 창구 기능을 맡을 것으로 알려진다. 내각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만, 사실상 당과 군의 실세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가기구다. 중국 당국도 이 기구의 출범이나 역할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은 이 기구를 통해 경제협력 파트너의 다변화를 모색할 작정이다. 따라서 이 법인 조직의 지배구조는 여러 나라의 지분이 참여하는 형태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중국처럼 어느 한 나라 지분이 편중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정부나 기업의 참여도 적극 환영한다는 자세다. 그러나 아직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는 대외 공표를 하지 않으려는 북한 당국의 입장 때문에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탓에 관계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중국 자본의 독식이 이뤄질 게 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핵 문제 해결이 계속 미뤄져 다른 나라들이 북한 진출을 머뭇거릴수록 중국의 북한 경제 장악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참으로 착잡하게 흘러가는 한반도 정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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