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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그까짓 일로 옷을 벗어?

등록 2005-10-19 00:00 수정 2020-05-03 04:24

강정구 교수 구속수사가 검찰총장직을 걸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나
공개적이고 투명한 천정배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찬성의견 낸 검사도 많아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구시대적인 ‘공안 꼴통’들이 검찰 조직 전체를 웃음거리로 만든 사건.

강정구 교수의 ‘통일내전’ 발언으로 불거진 검찰의 구속수사 방침과 법무부 장관의 불구속수사 지휘권 발동, 검찰총장의 사퇴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태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옛날엔 은밀하게 지휘받았으면서…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이 검찰 공안부의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과 수사 태도로 인해 빚어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불구속수사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안을 검찰 공안부에서 기존의 관행대로 구속수사를 하겠다고 억지를 부리다가 법무부 장관과 검찰 조직 전체의 싸움 양상으로 번지게 만들었고, 결국 검찰 전체가 덤터기를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이번 사안에 대처하는 검찰 일부의 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검사답다’기보다는 ‘검사스러운’ 것이었다. 검찰총장직을 걸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님에도 일부 평검사들과 중견 검사들이 총장 사퇴를 부추기는가 하면,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법리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또다시 집단행동으로 풀어가려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조직의 이미지가 다시 한번 곤두박질했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천정배 장관의 수사 지휘에 대한 수용 여부 결정을 유보함으로써 1박2일 동안 조직 내부를 쓸데없는 논란으로 들끓게 만들었다. 그러다 이틀이 지난 10월14일 오후 늦게서야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불구속수사 지휘를 받아들였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자기도 모르게 칼을 뽑아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썩은 무도 베지 못하고 슬그머니 칼집에 도로 넣은 꼴’이다.

김 총장이 수용 결정을 내리면서 밝힌 ‘정치적 중립성 훼손’ 가능성 발언도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별로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천 장관의 지휘 내용이 특정 사건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거나 수사의 핵심 내용을 왜곡·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의 절차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이기 때문이다. 천 장관은 이에 대해 지휘 배경을 설명하면서 “‘사상’이 아닌 ‘인권’의 문제”라고 정리했다. 즉, 공안 사건에 대한 무분별한 구속수사 관행을 이번 기회에 바꾸자는 문제의식인 것이다.

형사사건에서 구속 여부에 대한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판단 기준은 일반인들에게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 달아날 염려가 있는지 △범죄 증거를 숨기거나 없앨 가능성이 있는지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을 만큼 중대한 범죄인지 등이 가장 중요한 구속 기준이다. 이런 기준들에 견줘보면 강 교수를 구속할 이유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강 교수의 범죄 혐의라는 게 학문적 신념을 발언하거나 글로 남긴 것이기 때문에 증거 인멸의 가능성은 원천봉쇄돼 있다. 사는 곳이 일정하고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신분인데다 이미 얼굴이 널리 알려져 도피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점도 명확하다. 수사 도중 해외 도피의 가능성이 있다면 ‘출국금지 조처’ 정도로 충분한 일이다.

게다가 서면을 통함으로써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식의 수사 지휘를 한 천 장관의 방식에는 검찰 안에서도 찬성하는 의견이 제법 많았다고 한다. 이전 정권들에서 법무부 장관이 은밀한 방식으로 검찰에 정치적 압력을 행사한 경우는,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서 그렇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게 검사들의 지적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탈법적 지휘 사례는 △1999년 1월 당시 공동 여당의 한 축이었던 자민련 의원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대전지검 검사장에게 박상천 법무부 장관이 전화를 걸어 수사를 중단시킨 것 △5공화국 때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서울지검장이 청와대에 모여 시국사건 처리방안을 논의한 것 등이 있다.

“구속영장 다시 청구”제2라운드

특수부 부장검사 출신인 한 검찰 고위 간부는 “내가 부장 하던 시절에는 특정 사건의 수사 방향과 내용을 가지고 검찰총장, 서울지검장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 과천 법무부 청사로 장관을 찾아가 의논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장막 뒤에서 은밀한 조율과 거래를 하기보다는 공개적으로 수사 지휘를 하고 지휘의 정당성과 합리성에 따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게 검찰 독립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에 수긍하는 검사들도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검찰청법 8조(법무부 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를 제대로 적용하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검찰총장이 지휘 거부 결정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검찰 내부 의견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대검찰청의 주요 간부들이 모인 회의에 참석했던 한 검찰 간부는 “대검 간부들 가운데서도 합리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며 “한 부장검사는 ‘장관의 지휘는 적법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고, 공안 분야를 담당하는 간부까지도 ’이 건은 구속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말해 놀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우리가 보기에는 서울중앙지검쪽에 꼴통들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번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하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검찰 공안부를 중심으로 “강 교수를 직접 수사한 뒤 증거가 보강되면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남아 있다. 구속을 목표로 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받을 경우 다시 한번 여론이 들끓을 수 있다. 총장 사퇴 뒤에 생겨날 검찰 내의 후폭풍이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다.

천 장관 역시 배수의 진을 친 상황이다. 참여정부 초기 개혁 코드를 대변했던 강금실 장관에 비해 개혁성이 가시화하지 않았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이제야 전면에 등장했는데 이를 유야무야하면서 넘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천 장관과 친분이 두터운 정치권 인사는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 문제는 천 장관이 정치권에 있을 때부터 무척 관심을 두던 사항”이라면서 “이번 지휘가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강 교수 사건과 같은 ‘해프닝’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구시대적인 수사 관행과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검찰 공안부의 기능 축소와 재조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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