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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천운을 거머쥘 것인가

등록 2005-08-19 00:00 수정 2020-05-03 04:24

야스쿠니신사 참배 반대 등은 전향적이나 대북정책은 강경한 ‘검소한 노력파’…자민당이 쪼개진 가운데 예고 없이 찾아온 총선은 집권 가능성을 높여주는데…

▣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지난해 5월 일본 참의원 선거를 두달 남짓 앞두고 연금개정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이 첨예하던 때였다. 자민당 주요 각료들의 연금 미납을 비난하며 ‘자민당 때리기’의 선봉에 섰던 간 나오토 당시 민주당 대표가 자신의 미납 사실이 밝혀지는 바람에 부메랑을 맞아 대표직을 내놓게 됐다. 정권 교체가 되면 총리가 확실시되던 민주당의 ‘간판스타’가 물러난 것이다. 후임 대표로 예정됐던 당내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은 취임 직전 연금 미가입을 이유로 사퇴했다.

융통성 부족, 별명이 ‘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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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물이 연금 미납 파동의 ‘유탄’을 맞아 주저앉는 바람에 대표 자리는 간사장이던 오카다 가쓰야(51)의 손에 떨어졌다. 그는 “이것도 하나의 천명인지 모르겠다”며 수락 의사를 밝혔고, 의원총회에서 무투표로 당선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카다 대표는 단명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선거가 끝나면 물러나는 ‘시한부 대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민주당의 대승이었다. 특히 유령사원으로 연금에 가입했던 사실이 들통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인생도 가지가지, 사원도 가지가지”라며 씨알도 먹히지 않는 변명을 거듭하는 데 실망한 유권자들에게는 오카다의 타고난 진지함이 돋보였다. 오카다는 첫 시험대를 무난하게 통과해 재신임을 받았다.

일본 정계에서 오카다는 고이즈미 못지않은 ‘별종’으로 통한다. 정치 스타일이나 분위기는 서로 극과 극이다. 오카다의 트레이드마크가 ‘성실·꼼꼼’이라면 고이즈미는 ‘건성·대범’이다. 독선적인 고이즈미가 짧은 구호성 문장을 자주 구사하는 반면, 합리적인 오카다는 늘 설명하고 토론한다. 고이즈미가 ‘깜짝쇼’와 같은 충격요법이나 퍼포먼스를 즐기는 사이 오카다는 우직하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오랜 기간 땅속에서 나무 뿌리를 먹다가 이제 지상으로 나오게 됐다.” 중의원 해산 발표가 나기 직전 열린 민주당 임시간부회의에서 오카다가 말한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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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의 자기 절제와 검소함은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담배는 물론 술도 거의 하지 않는다. 긴자의 고급 요정에는 10년에 한번 갈까 말까다. 가족과 떨어져 도쿄의 의원 숙소에서 생활하는 그는 저녁에 모임이 없으면 숙소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주말에는 이 식당이 문을 닫아 부근 편의점의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는 회식을 하게 되면 음식값은 각자가 내도록 한다. 선물도 일절 받지 않는다. 오카다가 ‘정치적 어머니’로 여기는 하타 쓰토무 전 총리가 스위스 농가에서 받은 치즈를 그에게 선물로 보낸 적이 있다. 오카다는 이것마저 되돌려주었다. 결벽증에 가까운 이런 철저한 관리가 그로 하여금 정경유착이나 불법 정치자금과는 담을 쌓게 만들었다. 그는 지금도 간담회 등으로 쓴 대표 활동비의 내역을 10원 단위까지 세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범생이’ 기질인 오카다의 최대 약점은 너무 원칙적이어서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따라붙은 별명이 ‘탈레반’ ‘근본주의자’ 등이다. 주위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없고, 관료적 절차에 집착하며, 결단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는다. 늘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한 잡지 인터뷰에서 ‘웃는 것을 좀 배우지 않느냐’는 짓궂은 물음에 그는 “지금 일본 상황을 보면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는 진지하기 그지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오카다는 자신의 이념적 좌표를 중도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중도우파에 가깝다. 아시아 중시, 대미 일변도 외교 비판, 자위대 이라크 철수 주장, 야스쿠니신사 참배 반대 등은 전향적이다. 그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주변국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총리 스스로가 잘 판단해서 결정할 일이라며, 자신은 참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을 거의 매년 방문하고, 한국과 중국을 배려한 발언도 자주 한다. 대북 관계에선 고이즈미 총리의 대화 노선을 겨냥해 경제 제재 검토를 촉구하고 북한 인권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강경한 편이다. 개헌과 안보 문제에선 헌법을 바꿔 자위대를 군대로 명기하는 것을 지지하면서도 자위대의 공격 능력 제한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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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간 절묘한 세력 균형으로 체제 유지

5선 의원인 오카다는 미에현에서 200년 넘게 기모노 가게를 해온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어릴 때부터 검소함이 몸에 배였다 그의 아버지는 유통업에 진출해 ‘자스코’라는 슈퍼 체인을 거느린 이온그룹을 창업했으며, 형이 현재 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 법대를 거쳐 통산성에 들어간 그는 1988년 관료 생활을 청산하고, 36살이 되던 1990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오카다는 1993년 자민당 실력자였던 오자와가 정치개혁을 내걸고 벌인 ‘대반란’에 동참했다. 정치 초년병으로선 엄청난 도박이었다. 오자와를 쫓아 자민당을 탈당한 그는 신생·신진·민정당을 전전한 뒤 1998년 민주당 창당에 합류함으로써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 실력파로 두각을 드러낸 그는 정조회장을 거쳐 2002년 소장파의 지원을 업고 대표 선거에 나서 간에게 패한 뒤 간사장에 임명됐다.

의원 몇십명씩을 거느린 여느 민주당 실력자들과 달리 오카다에겐 계파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의 정치 스타일 자체가 계파의 보스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당내 기반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갖고 있는 간, 오자와, 하토야마 유키오 전 대표, 소장파 등 각 계파의 절묘한 세력 균형으로 인해 오카다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언제 낙마할지 모르는 오카다에게 성큼 다가온 이번 총선은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다. 자민당이 쪼개져 싸우는 상황은 그의 집권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그 또한 이번에 모든 것을 걸었다. 정권 쟁취에 실패하면 대표에서 물러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정권 교체에 성공하더라도 그가 총리 자리를 거머쥔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난해 갑자기 주어진 대표 자리처럼 예고 없이 찾아온 총선은 성실한 노력파인 그를 향해 행운의 여신이 미소 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고이즈미 승부수의 역설

예상 깨고 내각 지지율 껑충 뛰어… 정당간의 합종연횡이 더 복잡해질 듯

일본 열도가 총선 열기로 뜨겁다. 오는 9월11일에 치러질 총선에선 어느 때보다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높아 안팎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지난 8일 참의원 표결에서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된 뒤 곧바로 중의원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데 이어 강공책을 계속 펴고 있다. 중의원에서 반대표를 던진 의원 37명에 대한 공천 배제 방침을 분명히 하고, 이들의 선거구는 당 본부에서 직할해 지방조직의 지원을 차단할 방침이다. 또 반대파 핵심 인물의 선거구에 거물급 인사를 ‘저격수’로 투입해 반대파 죽이기의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하면 퇴진하겠다며 결의를 내보였다. 연립여당의 현재 의석은 283석(전체 480석)으로 반대파 37석을 빼면 절반에서 6석이 웃돈다.
반대파를 개혁 저항세력으로 몰아붙인 고이즈미 총리의 전략은 주효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의원 해산 직후 실시된 언론들의 여론조사에선 내각 지지율이 최고 10% 가까이 껑충 뛰었다. 자민당 지지율도 올랐고, 중의원 해산과 우정민영화에 대한 여론도 우호적이다.
설마 해산이야 하겠냐며 호기를 부리던 반대파에선 당혹감이 역력하다. 이들은 공동 대응을 다짐했으나 의견 결집이 되지 않아 신당 창당도 사실상 무산됐다. 무소속으로 각개약진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법안을 부결시킬 때의 기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동안 선거에서 약진을 거듭해온 제1야당 민주당은 정권교체를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로 보고 총력전 태세에 들어갔다. 공산당이 일부 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고, 사민당 부당수가 민주당으로 옮겨오는 등 호재도 잇따랐다. 그러나 국민들의 눈과 귀가 흥미진진한 자민당 지도부와 반대파의 충돌에 쏠려 민주당이 관심권에서 멀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초조함 또한 적지 않다.
애초 자민당이 패배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으나, 갈수록 전망이 힘들어지고 있다. 연립여당과 민주당 가운데 어느 쪽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연정을 둘러싼 정당간의 합종연횡이 복잡해질 전망이다. 자민당이 독선적인 고이즈미 총리를 주저앉히고 반대파, 공명당과 정권을 꾸리는 것부터 민주당 주도의 연정까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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